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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혜수의 시선] 원하는 쪽에서 값을 치러라

중앙일보

2026.01.27 07:26 2026.01.27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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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혜수 스포츠선임기자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이 다음 달 6일(현지시간) 개막한다. 채 열흘이 남지 않았다. 이번 대회 관련 기획 기사를 준비하며 국제올림픽위원회(IOC) 홈페이지 등을 훑어보는데 이런 설명이 눈에 띄었다. “(이번 대회는) 동계올림픽 역사상 최초로 두 개 도시가 공식적으로 공동 개최하는 대회”라는 설명이다. 사실 동계올림픽은 경기 시설 입지 문제 때문에 빙상 경기장이 위치한 도시 지역과 설상 경기를 진행하는 산악 지역으로 나눠서 대회를 여는 게 대부분이다. 2010 밴쿠버 때는 밴쿠버와 휘슬러에서, 2018 평창 때는 강릉과 평창에서 각각 빙상과 설상 경기를 진행했다. 밀라노와 코르티나담페초도 그와 마찬가지일 텐데 굳이 ‘역사상 최초’라는 수식어까지 붙였나 했다. 구글맵으로 찾아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밀라노와 코르티나담페초 간 거리는 408㎞, 자동차로 5시간이다. 같은 생활권이라 할 인접 지역이 아니다. 대회명에 두 지역 이름이 다 들어간다.

시설 사후활용과 유지비용은 짐
밀라노는 가설 빙상장서 올림픽
한국선 너도나도 짓겠다고 깃발

스피드·쇼트트랙·피겨 등 스케이팅과 컬링, 아이스하키 등의 빙상장이 있는 밀라노는 세계적 패션 도시다. 그래도 스포츠 팬에게는 패션보다 이탈리아 프로축구 명문 AC 밀란과 인테르 밀란의 연고지로 더 익숙하다. AC 밀란 홈구장은 ‘산 시로’, 인테르 밀란 홈구장은 ‘주세페 메아차 경기장’이다. 이름만 달리 부를 뿐 KBO리그 두산 베어스와 LG 트윈스처럼 같은 경기장을 홈으로 쓴다. 런던 지역 7개 연고 구단(토트넘·아스널·웨스트햄·첼시·크리스털 팰리스·풀럼·브렌트퍼드)이 제각각 홈구장을 지어 쓰는 잉글랜드와 대비된다. 둘 중 한쪽이 더 낫다는 건 아니다. 이번 동계올림픽 개막식은 산 시로(또는 주세페 메아차 경기장)에서 열린다. 별도의 개막식장을 새로 짓지 않았다.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 개막식이 열리는 산시로 스타디움. AFP=연합뉴스

이번 올림픽에서 스피드스케이팅 경기가 열릴 빙상장은 ‘밀라노 스피드스케이팅 경기장’이다. 근사한 이름을 기대했다면 실망스러울 수 있다. 밋밋한 이름을 붙인 데는 이유가 있다. 이 빙상장은 ‘피에라 밀라노’에 임시로 만든 가설 경기장이다. 올림픽이 끝나고 철거한다. 피에라 밀라노는 지난 2015년 밀라노 엑스포를 열기 위해 만든 대형 전시·컨벤션 시설이다. 동계올림픽조직위원회는 당초 밀라노 인근 바셀가 디 피네의 야외 빙상장을 리모델링해 사용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막대한 예산이 소요되고 사후활용 전망도 어두워 계획을 접었다. 대신 피에라 밀라노 13·15번 홀을 연결해 400m 트랙을 만들고 6500석 관중석을 설치했다. 기존 시설을 재활용해 스피드스케이트장을 만든 건 이번 동계올림픽이 ‘역사상 최초’다.

지난 25일 프로배구 올스타전을 취재하러 춘천 호반체육관을 찾았다. 체육관 한쪽에서 온라인 서명을 진행하고 있었다. 안내판에 ‘국제스케이트장 춘천 유치 지지를 위한 서명’이라고 적혀 있었다. 한동안 중단됐던 지방자치단체의 태릉 국제스케이트장 대체 빙상장 유치전이 재개됐다. 2009년 태릉 등 조선왕릉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면서 태릉 선수촌과 사격장, 국제스케이트장을 이전하게 됐다. 선수촌이 가장 먼저 충북 진천으로 옮겼다. 2023년 대한체육회는 스케이트장 이전 후보지를 공모했다가 이듬해 중단했다. 양주시·동두천시·김포시·춘천시·원주시·철원군·인천 서구 등 7곳이 유치전에 나섰다. 최근 문화체육관광부가 공모 재추진 뜻을 비쳤다. 오는 6월 지방선거까지 겹쳐 유치전은 다시 달아오를 판이다.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이 열린 강원도 강릉 스피드스케이팅 경기장의 모습. 연합뉴스
평창동계올림픽 유치 직후인 2011년쯤 “스피드스케이트장을 새로 짓지 말고 기존 태릉 국제스케이트장을 활용하자”는 제안이 나왔다. 강원도가 반발했다. 결국 1300억원을 들여 강릉에 새로 지었다. 올림픽이 끝나고 시설은 애물단지가 됐다. 사후 활용은커녕 매년 수십억 원 운영비 적자로 골머리를 썩인다. 강릉스피드스케이트장을 태릉 대체 빙상장으로 쓰면 안 될까. 강원도와 강릉시도 한때 추진했던 방안이다. 대한체육회 등이 “학생 선수는 주로 수도권에 거주해 강릉에서 훈련하면 학습권을 침해당한다” “강릉은 웨이트 훈련 시설을 갖춘 진천선수촌에서 멀다” 등의 이유로 반대한다. 최근 강릉에서는 기막힌 시설 사후활용 제안을 내놨다. 내친김에 2048 동계올림픽을 유치하자는 거다.

누군가에게 비난 화살을 쏴 문제가 해결된다면 그를 벌집으로 만들어 해결하면 된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문제가 풀리지 않는다. 돈이 문제 해결의 열쇠다. 뭔가를 원하는 이가 있다면 그에게 그 값을 온전히 치르게 해야 한다. 그래야 남의 호주머니를 넘보는 몰염치가 발을 붙이지 못한다.





장혜수([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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