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권력 주변에선 현실이 뒤틀린다. 블랙홀의 거대한 중력이 시공간의 왜곡을 만들어내는 것과 유사한 이치다. ‘이렇게 열심히 일하는 대통령 못 봤다’ ‘대통령이 가장 많이 안다’ 등등, 그러려니 해야 한다.
물론 경악할 때가 있긴 하다. 총선을 앞둔 2024년 1월 말의 경우다. 김건희 특검법과 의대 증원에 따른 파업으로 혼란이 가중되고 있었다. 마침 윤석열 전 대통령의 측근을 만나 세간의 목소리를 전했는데 그는 당혹스러울 정도로 확신에 찬 채 반박했다.
“지난 한 달 (대통령 국정 수행) 지지율이 10%포인트 올랐다. 모든 여론조사에서 오르고 있다. 선거에서 이긴다.” “김건희 여사는 잘못한 게 없는 피해자다. 설명은 해도 사과는 못 한다. 공인이라 더 사과를 못 한다.” “국정 동력을 달라는 선거다. 대통령은 계속 (선거전 때 전면에) 나올 것이다.”
윤어게인파 영입하고 반대파 축출
동류들끼리 뭉친들 더 극단화할 뿐
집권 포기하나…결국 나라엔 불행
다른 우주에 사나 했다. 그 만남 전후 지지율이 한국갤럽에선 33%에서 29%, 전국지표조사(NBS)는 32%에서 31%가 됐다. 아무리 좋게 봐도 횡보였다. 이후 좀 오르긴 했다. 하지만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의 호주 출국, 윤 전 대통령의 4월 1일 대국민 담화로 다 까먹었다.
반년 정도 지나 다른 참모로부터 “이러다 100석도 안 될 수 있으니 조치를 하자고 설득했는데 윤 전 대통령이 ‘져도 상관없다’고 했다더라”란 말을 들었다. 당시엔 “져도 상관없다”고 곧이곧대로 받아들였다. 윤 전 대통령의 ‘곤조’라고 여겼다. 이젠 아닐 수도 있겠다 싶다. 간언을 뿌리치기 위해 내뱉었을 뿐, 속으론 “선거에서 이긴다”고 믿었을 것이라고 말이다. ‘필터 버블’(정보 여과)은 그렇게 무서운 것이다.
이런 극화(極化)는 다양한 목소리가 경합하는 게(team of rivals) 아닌, 동질한 목소리만 있는 팀(team of unrivals)에서 발생한다. 실제 윤 전 대통령에게 현실을 주입하려던 참모들은 밀려나거나 떠났다. 그 참담한 종착지를 우리는 안다. 윤 전 대통령 측은 그러나 종착지 전까진 문제가 있다고 인정하지 않았다. 어쩌면 지금도 인정하지 않는지도 모른다.
캐스 R 선스타인이 정리한 바 있듯(『우리는 왜 극단에 끌리는가』), 이들 안에선 이런 동역학이 작용한다.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의 내부 유대감은 극단주의를 키운다. 온건론자들이 밀려나고 열렬한 신봉자들만 남는 ‘자발적 분류(voluntary sorting)’와 ‘자기선택(self-selection)’이 이뤄지고 집단 내에선 애정과 연대감으로 뭉친 사람들끼리 토의하니 더 극단적으로 흐른다. 선스타인은 “구성원들끼리 ‘반향실(echo chamber)’ 역할을 해서 자기들이 가진 우려나 신념을 키워 결국 다른 사람들에 대한 증오심으로 발전시킨다”며 “(집단을) 쉽게 떠날 수 있는 길이 있으면 집단 내 반대 목소리의 수가 줄어들어 더 심한 과격주의가 등장하게 된다”고 했다. 이들에 대한 내외부의 비판은 외려 생각을 강화하는 역효과를 내곤 한다.
당시 용산에서뿐 아니라 지금 국민의힘에서도 벌어지는 일이다. 당 주요직을 ‘윤어게인’파로 채우는 거로 모자라 “당 대표는 당원 개개인의 '자유 의지의 총합'이기 때문에 당 대표를 비난하면 안 된다”(이준석·김기현을 내쫓은 건 친윤 아닌가)거나 “당의 지지율이 낮게 나오는 특정 여론조사만 소개한다”(공신력 있는 조사 아닌가)는 논리로 반대파들을 내쫓고 있다. 누군가의 말대로 “이렇게까지 미워할 수 있다면 영원히 행복해질 수 있겠다”는 태세다. 이로 인해 멀쩡한 이들도 떠나고 있다. 얼마 전 당 원로에게 인터뷰를 요청했더니 “탈당하려 한다”며 입을 다물었다.
국민의힘이 달라질까. 당분간 어려울 것이다. 극화된 사람들을 설득하려면 이들이 신뢰하는 사람이 해야 한다. 이들이 신뢰하는 사람이라면 극화된 일부일 가능성이 크다. 이대로면 만년 야당이니, 여당엔 행운이나 나라엔 불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