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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미·중 AI 패권의 열쇠, 한국이 쥐고 있다

중앙일보

2026.01.27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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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연 서울대 석좌교수·경제학부
인공지능(AI) 혁명이 일어나고 있다. 18~19세기에는 증기기관이 인간의 근육을 대체하기 시작했다면, 지금은 AI가 인간 두뇌를 대신해 일하는 새로운 산업혁명의 초입부다. 1차 산업혁명을 완수해 독보적인 경제발전을 이룬 영국이 한 세기 동안 세계 패권을 쥐었듯이, 미·중 패권의 향배 역시 AI 혁명을 통해 양국의 경제력 차이가 확대될지 아니면 역전될지에 달려 있다. 우리는 역사의 중차대한 분기점에 서 있다. 여기서 한국의 미래도 결정될 것이다.

AI 기술이 경제성장 견인할 때
제조업이 약한 미국은 대중 열세
한미 간 제조업 발전의 선순환이
미국이 패권을 유지할 핵심 열쇠

산업혁명은 세 단계로 경제성장에 영향을 미친다. 첫째는 신기술의 발명과 일차적 응용 단계다. 이 시기의 성장률은 이전보다 높지만, 증가 폭은 제한적이다. 증기기관에 기반한 기계화 혁명에도 불구하고 1700년부터 1820년까지 세계 경제는 연평균 0.5% 정도의 성장에 그쳤다. 최근 국제통화기금(IMF)의 보고서도 AI로 인한 성장률 제고 효과를 올해는 최대 0.3%, 중기적으로 연평균 0.1~0.8% 정도로 추정한다. 기술의 경이로움에도 불구하고 기업과 사회가 이를 전방위적으로 수용하는 데는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둘째는 산업 전반에 새로운 기술이 적용됨으로써 성장률이 급등하는 단계다. 창조적 파괴가 일어나면서 새로운 기술이 전면적으로 도입되고 신산업이 기존 산업을 대체하는 과정에서 성장률이 치솟는다. 1차 산업혁명의 둘째 단계가 끝날 무렵이었던 19세기 말 세계 경제성장률은 첫째 단계보다 4배나 높아졌다. 하지만 사람과 사회의 적응 고통도 훨씬 심각해진다. 수용하면 살아남고, 적응하면 성공하지만, 실패하면 도태된다. 이 과정에서 셋째 단계인 제도 혁신이 중요해진다. 정치·행정·사법 등의 시스템을 유연하고 공정하게 전환하면 성장이 가속화되지만, 실패하면 사회 붕괴까지 초래된다. 영국은 부패한 세력을 제압하고, 변화를 거부하는 집단을 설득하는 동시에 공정하고 포용적인 제도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무역 독점으로 지대를 추구하던 중상주의를 혁파하고, 공장법을 제정해 노동 인권을 보호했다. 러다이트운동(노동자들이 기계를 파괴해 일자리를 지키려 했던 운동)의 폭력성은 엄격히 다루면서도 참정권을 확대하고 노동조합 결성의 길을 열어주었다. 반대로 독일과 러시아는 제도 혁신에 실패한 결과 각각 나치와 사회주의라는 혹독한 대가를 치렀다.

미국과 중국 중 어느 나라가 AI 혁명으로 성장의 결실을 더 크게 누릴까. 첫째 단계에서는 미국이 앞서 있다. 세상에 없었던 신기술의 발명은 주로 순수한 호기심과 좋은 세상을 만들겠다는 고상한 동기에서 비롯된다. 하지만 아직도 중국의 젊은 연구자 다수는 ‘잘살아보세’의 후예다. 20~30대에 큰돈을 벌어 40대에 은퇴하겠다는 문화에선 ‘따라잡기’는 가능하지만 ‘넘어서기’는 힘들다. 셋째 단계인 제도 혁신 가능성에서도 미국이 우위다. 중국 정치제도의 경직성과 높은 부패는 시스템 개혁의 아킬레스건이다. 미국 정치가 우려스럽지만 그래도 민주주의는 자기 수정력이 있다. 그러나 둘째 단계에서는 중국이 결정적으로 유리하다. 중국이 피지컬 AI를 개발해 산업에 적용함으로써 광범한 성장 효과를 누릴 때 제조업이 취약한 미국의 성장률은 중국에 뒤처질 확률이 높다.

바로 이 지점에서 미국은 한국의 도움이 필요하다. 제조업 강국인 한국은 미국과 필수적 이익을 주고받을 수 있다. 미국의 제조업 발전을 한국이 돕고, 한국의 제조업 강화를 미국이 지원하는 ‘보완적 연대’를 구축한다면 미국은 둘째 단계에서의 대중 격차를 좁힐 수 있다. 반대로 한국이 미국 대신 중국과 제조업 협력을 강화한다면 미국은 패권 경쟁에서 크게 불리해진다. 이는 중국과 제조업에서 경쟁해야 하는 한국의 이익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한국은 무엇을 해야 할까. 먼저 한미 제조업의 보완성 강화가 미국의 국익에 직결된 사활적 사안임을 미국 정책결정자에게 각인시켜야 한다. 한국뿐 아니라 일본과 독일 등도 합류하여 제조업 공급망을 더 넓고 안전하게 만들 필요를 미국에 설명해야 한다. 특히 관세 협정에 따라 대미 투자를 실행해야 하는 한·일은 미국과 양자 협의를 각각 진행하기보다 한미일 공동으로 투자 대상과 방법을 정하는 것이 좋다. AI 협력에서 중국을 배제하는 것은 현명하지 않다. 의료나 교육처럼 비(非)군사·비(非)범용 분야에서의 협력 아이템을 발굴해 각국의 비교 우위를 살리는 방법도 있다. 국내적으로는 소버린 AI와 피지컬 AI 사이에 균형을 잡아야 한다. 정부 지원이 소버린 AI에 치우치면 첨단 제조업이라는 한국 최고의 공격수를 잃을 수 있다. 고령화되고 있는 숙련공의 기술과 암묵지를 데이터로 만들어 AI에 학습시키고 로봇과 결합하는 제조업 도약 정책이 시급하다.

한국은 세계 질서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나라로 성장했다. 지금은 첨단 제조업 기반의 자강과 우방국과의 연대를 결합하여, 강하고도 선한 영향력을 펼치는 강선국(强善國)으로 발돋움할 결정적 시기다.

김병연 서울대 석좌교수·경제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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