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이인환 기자] 한국 대표팀 감독 후보로도 거론됐던 스페인 출신 로베르트 모레노 감독이 ‘AI 중독’이라는 전례 없는 이유로 클럽에서 경질됐다는 폭로가 나왔다.
러시아 프리미어리그 소치의 전 스포츠 디렉터 안드레이 올로프는 지난 27일(한국시간) 러시아 매체 ‘스포츠 러시아’를 통해 모레노 감독 재임 시절의 내부 상황을 상세히 공개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모레노 감독은 인공지능 플랫폼이 생성한 전술과 일정, 훈련 계획을 사실상 ‘절대 매뉴얼’처럼 받아들였고, 이를 현장 판단보다 우선시했다.
모레노 감독은 축구 팬들에게 낯선 인물이 아니다. 그는 2019년 루이스 엔리케 감독의 사임 이후 스페인 대표팀 임시 사령탑을 맡았고, 이후 정식 감독으로 승격됐다. 그러나 성적 부진과 내부 신뢰 붕괴 속에 불과 5개월 만에 지휘봉을 내려놨다. 지도력에 대한 의문은 그때부터 이어져 왔다.
이름이 다시 한국 팬들 사이에서 언급된 건 2023년 2월이었다. 위르겐 클린스만 전 감독과 함께 한국 대표팀 차기 사령탑 후보군에 올랐다. 결과적으로 선택은 다른 방향으로 흘렀지만, 만약 결정이 달랐다면 ‘인공지능 전술’을 앞세운 감독이 한국 대표팀을 이끌었을 가능성도 있었다.
소치에서의 시간은 더 극단적이었다. 올로프의 증언에 따르면 모레노 감독은 하바롭스크 원정을 앞두고 선수단에 이해하기 힘든 훈련 일정을 제시했다. “경기 이틀 전 오전 7시에 훈련을 실시한 뒤, 28시간 동안 잠을 자지 않는다”는 계획이었다. 새벽 5시 기상, 7시 훈련. 선수단은 목적을 이해하지 못했고 현장은 즉각 혼란에 빠졌다.
문제는 그 일정이 감독 개인의 철학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올로프는 “프레젠테이션 자료를 확인했는데, ‘선수들은 28시간 동안 수면을 취하지 않는다’는 문구가 그대로 들어 있었다”고 밝혔다. 그는 모레노 감독에게 “그렇다면 선수들은 언제 잠을 자느냐”고 물었지만, 명확한 설명은 돌아오지 않았다고 했다.
회복과 컨디션 관리라는 스포츠 과학의 기본 원칙은 어디에도 없었다. 결과는 냉혹했다. 모레노 감독은 지난해 9월 해임되기 전까지 리그 7경기에서 승점 1을 얻는 데 그쳤다. 볼 점유율을 중시한 전술은 숫자만 남겼고, 경기력은 무기력했다. 데이터는 넘쳤지만, 상대 분석과 경기 흐름, 선수 컨디션이라는 ‘현장의 맥락’은 사라졌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논란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이적시장에서도 인공지능 의존은 반복됐다. 올로프에 따르면 모레노 감독은 스트라이커 후보들의 각종 수치를 인공지능에 입력해 ‘최적값’을 도출했고, 그 결과를 근거로 아르투르 슈셰나체프 영입을 강행했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슈셰나체프는 10경기 동안 단 한 골도 기록하지 못했다.
숫자는 맞았을지 모른다. 그러나 리그 적응, 팀 전술과의 궁합, 심리적 요소는 계산되지 않았다. 내부 평가는 급격히 악화됐고, 구단 수뇌부는 물론 외국인 선수들 사이에서도 감독의 방식에 대한 불신이 커졌다. 결국 소치는 강등이라는 최악의 결말을 맞았다.
이 사례가 던지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축구는 점점 데이터의 스포츠가 되어가고 있지만, 여전히 사람의 스포츠다. 인공지능은 참고서일 수는 있어도, 결정을 대신하는 주체가 될 수는 없다. 현장의 판단과 책임을 내려놓는 순간, 기술은 혁신이 아니라 위험이 된다. 모레노 감독의 사례는 그 경계가 얼마나 쉽게 무너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경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