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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0원 티셔츠 '그림자 물류'에 숨은 쉬인...유럽을 흔들었다 [비크닉]

중앙일보

2026.01.27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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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HV에 쉬인 반대.” “쉬인은 부끄러운 줄 알아라.”

지난해 11월 6일, 중국 패스트패션 기업 쉬인이 프랑스 파리 중심부 BHV 마레 백화점(BHV Marais)에서 첫 오프라인 매장을 열자 개점 전부터 백화점 앞은 두 풍경으로 갈렸다. ‘오픈런’을 노린 소비자들이 길게 줄을 선 가운데, 다른 한쪽에서는 파리 시의원과 소매업계, 환경단체 관계자들이 피켓을 들고 입점 반대 시위를 열었다. 쉬인의 유럽 진출은 유럽 패션 산업이 마주한 현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중국산 초저가 상품이 유럽 시장으로 빠르게 밀려들며 유통·제조 생태계가 흔들리고 있다.

쉬인의 유럽 진출 배경에는 미국이 있다. 미국이 강력한 관세 장벽을 쌓아 올리자, 갈 곳을 잃은 중국산 저가 물량의 ‘쓰나미’가 유럽으로 방향을 틀었다. 중국산 저가 물량의 대이동이 세계 경제의 물줄기를 바꾸고 있는 거다.

2025년 10월 16일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쉬인이 주최한 어반 리추얼 패션쇼에서 모델이 런웨이를 걷고 있다. 패션 산업이 국내총생산(GDP)의 약 5%를 차지하는 이탈리아에서도 쉬인은 이미 이탈리아인들의 옷장에 깊숙이 자리 잡은 모습이다. AFP=연합뉴스

사태의 발단은 미국의 대중(對中) 무역 규제다. 2018년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시절 도입된 고율 관세에 더해, 지난해 미국 정부가 800달러 이하 소포에 적용되던 ‘드 미니미스(de minimis·소액 면세)’ 규정을 사실상 폐지하면서 중국산 상품의 가격 경쟁력이 급격히 나빠졌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지난해 5월 이후 중국발 저가 소포의 미국 수출은 40% 이상 감소했다.

그러나 중국의 수출 엔진은 멈추지 않았다. 규제 문턱이 상대적으로 낮은 유럽으로 물량을 돌리면서 헝가리·덴마크로 향하는 중국산 저가 상품은 4배로 늘었다. 독일·프랑스로 향한 수출 물량도 50% 이상 증가했다. 유럽이 중국 수출의 ‘거대한 배출구’이자 ‘새로운 기회’가 된 셈이다.

공식 통계 밖에서 커지는 ‘그림자 물류’
2025년 6월 프랑스 디종에서 한 고객이 쉬인의 팝업 스토어를 나서며 쇼핑백을 들고 있는 모습. AFP=연합뉴스

유럽으로 쏟아지는 중국산 수출 물량은 기존 물류 질서마저 흔들고 있다. WSJ은 “유럽에 거주하는 중국 이민자들이 자택의 뒷마당이나 빈방을 창고처럼 활용해 중국 판매자들의 상품을 보관·포장·배송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공식 물류망을 거치지 않으면서도 배송 시간을 줄이고 비용을 낮출 수 있는 구조다.

영국에 거주하는 40대 전업주부 쉐 씨는 뒷마당에 약 30㎡ 규모의 창고를 짓고 중국 판매자들이 보낸 의류와 가방, 소형 가구 등을 보관한다. 주문이 들어오면 직접 포장해 배송한다. 건당 수수료는 70센트 안팎이다. 이런 ‘가정 창고’들은 공식 통계에 잡히지 않지만 유럽 전역에 퍼지며 중국 전자상거래의 숨은 인프라로 작동하고 있다. 단순한 해외 직구를 넘어, 현지 유통 생태계를 잠식하는 ‘그림자 물류망’이 현실이 된 것이다.

쉬인은 무엇이고, 왜 유럽은 분노하는가
초고속 패션 기업 쉬인을 둘러싸고 윤리성·지속가능성·시장 질서에 대한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중앙포토, AFP

이 흐름의 상징이 바로 쉬인(Shein)이다. 쉬인은 2008년 중국에서 설립돼 현재는 싱가포르에 본사를 둔 글로벌 초저가 패션 플랫폼이다. 수천 개의 중국 중소 제조업체를 연결해 초소량·초단기 생산 구조를 갖추고 있다. 판매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반영해 잘 팔리는 상품만 빠르게 재생산하면서 재고 부담을 최소화하고 가격을 극단적으로 낮춘 게 쉬인의 전략이다.

문제는 쉬인의 비즈니스 모델이 유럽의 규범과 정면으로 충돌한다는 점이다. 유럽 내 패션 소매업계는 쉬인의 경쟁력이 디자인이나 품질이 아니라, 초소형 다건 배송 구조를 통해 관세·환경·안전 규제의 적용을 피해갈 수 있는 데서 나온다고 본다. 프랑스 신발 브랜드 오다쥬(Odaje)를 운영하는 기욤 알캉 대표는 “우리는 정당하게 세금을 내며 사업을 운영하는 반면, 쉬인은 면세 제도의 허점을 이용한 초저가 공세로 시장을 교란할 뿐만 아니라 환경 파괴까지 일삼고 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불공정 경쟁 상황이 계속된다면 쉬인이 입점한 곳과 같은 공간에서 장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BHV 마레 백화점 매장 철수와 협업 중단을 놓고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쉬인의 유럽 진출을 놓고 “명품 브랜드도 중국이나 베트남에서 생산하지 않느냐”는 반론도 제기된다. 그러나 유럽연합(EU)은 쟁점이 생산국이 아니라 ‘책임 구조’에 있다고 본다. 전통 브랜드는 문제가 발생할 경우 본사가 품질·안전·보상에 대한 법적 책임을 지지만, 쉬인은 수많은 판매자와 플랫폼 구조 뒤에 놓여 있어 책임의 주체가 불분명하다는 것이다.

안전성 논란은 이런 비판에 불을 붙였다. 유럽 소비자 단체들의 공동 조사에서 쉬인과 테무 제품의 약 70%가 규정 부적합 판정을 받았다. 일부 장난감은 질식 위험이 있었다. 기준치의 수천 배에 달하는 카드뮴이 검출된 액세서리와 102도까지 과열되는 전자기기 등은 단순한 품질 논란을 넘어 소비자 안전을 위협하는 수준이었다.

유럽의 현재형 논쟁, 한국의 분기점
중국 직구 플랫폼 알리익스프레스·테무·쉬인, 일명 알·테·쉬 모바일 앱 화면. 사진 알리익스프레스·테무·쉬인 앱 화면 캡처

유럽에서 먼저 불붙은 논쟁은 한국에서도 다른 형태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고물가 속에서 “한 철 입을 옷에 비싼 돈을 쓸 필요는 없다”는 실용주의가 힘을 얻으며 쉬인·알리익스프레스·테무 등 중국발 초저가 플랫폼은 빠르게 확산하는 중이다. 지난해 8월 기준으로 쉬인의 월간활성사용자수(MAU)는 약 206만명을 기록하며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중국산 패션 플랫폼에 대한 반감과 함께 저렴한 상품을 찾는 수요가 맞서고 있다. “국내 플랫폼의 저가 의류도 결국 중국산인데 해외 직구만 문제 삼는 것은 역차별”이라는 게 주장의 핵심이다. EU가 2028년 소액 소포 면세 제도의 전면 폐지를 예고한 것처럼, 한국 역시 해외 직구 플랫폼을 둘러싼 규제 논의에 속도를 내고 있다. 5000원짜리 티셔츠의 즉각적인 만족 뒤에 규제를 피해 흐르는 유통 구조와 안전의 사각지대가 있다는 거다. 값싼 선택이 늘 합리적인 선택은 아니다. 유럽의 논쟁은 이제 한국에도 같은 질문을 던지고 있다.






이지영([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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