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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 아이들 필수 코스"…'월100만원' 예약 두 달 꽉 찬 이 주사

중앙일보

2026.01.28 00:52 2026.01.28 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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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남 지역에 있는 한 성장클리닉에 학부모와 청소년이 들어가는 모습. 임성빈 기자

서울 서초구에 있는 한 유명 성장클리닉. 평일 오후에도 번호표를 손에 든 부모와 아이들로 대기실이 가득찼다. 진료를 마친 아이들과 함께 클리닉 밖으로 나오는 학부모들은 저마다 손에 보냉가방을 들고 있었다. 성장호르몬 주사제가 담긴 가방이었다. 지난 9일 초등학생 남매를 데리고 이곳을 찾은 한 학부모는 “다른 지역에 살지만 아이들 키 때문에 걱정이 많아서 멀리서 소문을 듣고 찾아왔다”고 했다. 같은 날, 인근의 다른 성장클리닉 역시 아이들 손을 잡은 부모들로 로비가 붐볐다.

서울 강남구 등지에서 이처럼 자녀의 키 성장을 위한 치료제를 처방하는 ‘성장클리닉’이 크게 성업 중이다. 일부 학부모 사이에서는 ‘성장 검사는 필수 코스’라는 이야기가 유행처럼 돌거나, 키가 그리 작지 않은 아이에게도 클리닉을 권하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고 한다.



월 100만원대 비용에도, “5㎝ 더 큰다길래…”

28일 한 유명 성장클리닉에 문의하니, 자녀 성장 검사를 받으려면 1개월 이상 대기해야 한다고 안내했다. 엑스레이 촬영으로 성장판 등을 검사하는 데 약 10만원, 여기에 혈액‧초음파 검사를 추가하면 50만원대 후반의 비용이 든다고 한다. 검사 비용만 이 정도며, 실제 성장호르몬 주사 치료를 시작하면 월 최대 100만원 이상의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28일 서울 강남구에 있는 한 성장클리닉 모습. 류효림 기자

선뜻 치료를 선택하기 부담스러운 가격이지만, 자녀의 ‘최종 키’를 더 키울 수 있다는 희망을 자극하는 마케팅 때문에 클리닉을 찾는 학부모는 계속 늘어나는 추세다. 9세 남자아이 학부모 정모씨는 “클리닉에서 5~9세가 ‘골든타임’이라고 안내하고, 우리 아이는 늦게 왔다고 했다”며 “엄마들 사이에선 초등학교 입학 전 겨울에 검사를 받으란 얘기가 많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주사를 안 맞으면 160~165㎝까지 크고, 주사를 맞으면 170㎝ 이상 큰다는 식으로 말하는 사람도 많다”고 했다.

10세 남아 학부모 안모씨는 “유명한 클리닉은 진료 예약까지 너무 오래 걸려서, 급한 마음에 덜 유명한 곳을 찾기도 했다”며 “주변 부모들은 성장호르몬 주사를 자녀에게 맞히는 걸 자랑삼아 얘기하고, 다들 돈만 있다면 맞히고 싶다고 한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성장호르몬 치료가 마치 대세처럼 여겨지며 키가 또래보다 큰 어린이가 치료를 받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안씨는 “키가 큰 아이들은 치료 비용도 더 비싸다”고 귀띔했다.

신재민 기자

키 성장 클리닉 시장의 성장세는 통계로도 확인된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19세 이하 미성년자에 대한 성장호르몬 처방 건수는 2020년 89만5011건에서 2024년 162만1154건으로 4년 사이 2배 가까운 수준으로 증가했다. 같은 기간 처방액은 596억8100만원에서 1592억5400만원으로 2.6배가 됐다. 처방 건수보다 더 크게 늘어난 것이다.

문제는 처방 건수 증가와 함께 부작용 사례도 늘었다는 것이다. 성장호르몬 주사제의 중대 부작용(폐렴 등) 사례는 2020년 9건에서 2024년 165건으로 급증했다.

게다가 ‘10㎝ up(업)’이나 ‘부모들이 절대 알 수 없는 키 성장의 비밀을 공개한다’는 등의 과장 광고도 늘면서, 키 성장 효과를 명확하게 확인하기 어려운 자세·체형 관리 업체들도 덩달아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한다. 또한 온라인에선 ‘6개월 만에 15㎝가 컸다’ 등과 같이 먹기만 하면 단기간에 키가 크는 것처럼 홍보하는 식품 광고들도 난립하고 있다.

서울 강남 지역에 있는 한 키 성장 관리 업체 광고문. 임성빈 기자

전문가들 역시 정상적인 성장 흐름에 있는 아이까지 분위기에 휩쓸려 주사를 맞는 남용 사례가 많아 대책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서병규 서울성모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성장호르몬 결핍증이나 터너 증후군 등 명확한 병에는 성장호르몬 주사를 권장하지만, 상당수의 아이에게 이를 권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주사를 맞으면 무조건 키가 큰다고 알려져 있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현재 키가 작아도 잘 크고 있는 아이에겐 주사 효과가 크지 않아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정부 역시 과대광고 등으로 인한 문제를 인지하고 대응 중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 관계자는 “지난해 병·의원, 약국의 과대광고 여부 등을 점검했고, 올해도 성장호르몬 제제의 안전 관리를 강화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임성빈.류효림([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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