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일각과 여당에서 유엔군사령부(유엔사)의 승인 없이 비무장지대(DMZ)를 출입할 수 있도록 하는 ‘DMZ법’을 추진하는 데 대해 유엔사가 28일 “DMZ법이 통과되면 이는 정전협정에 대한 정면 충돌(direct conflict)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정치적 입장 표명 자제를 원칙으로 삼는 유엔사가 특정 사안에 대해 이처럼 강도 높은 우려를 표명한 건 이례적이다. 그만큼 이번 사안을 매우 엄중하게 인식하고 있다는 뜻으로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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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MZ법, 한국이 정전협정 벗어나겠다는 선언”
복수의 유엔사 관계자는 이날 오후 서울 용산기지 드래곤힐로지 호텔에서 기자들과 만나 “DMZ법이 통과되면 법적으로나 논리적으로 한국 정부가 정전협정의 적용 대상이 되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만약 한국 정부가 유엔사의 승인 없이 DMZ 내 민간인 출입을 허가한다면 정전협정 위반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정부와 각을 세우는 것 자체를 꺼려 온 유엔사가 ‘위반’, ‘충돌’ 등의 용어로 사실상 DMZ법을 반박한 셈이다. 다만 유엔사 관계자는 “정부 정책에 관한 것이나 DMZ법에 대한 우려 표명도 아니며, 법적 해석에 관한 문제”라는 점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그러면서도 이 관계자는 “정전협정과 DMZ법이 충돌할 소지”가 상당하다고 설명했다. 1953년 체결된 정전협정의 제9조 등에 따라 유엔군사령관이 DMZ 남측 지역의 민사 행정을 책임졌고, 실질적으로 관할권을 행사온 걸 “지난 70여년 간 한국 정부 측에서도 인정하고 준수해왔다”면서다.
정전협정은 “군사정전위의 특정한 허가를 얻고 들어가는 인원을 제외하고는 어떠한 군인이나 민간인이나 DMZ에 들어감을 허가하지 않는다”고 규정했다. 이에 따라 DMZ법이 통일부 장관 등 한국 정부에 임의로 DMZ 출입 허가권을 부여하려는 건 정전협정 위반이라는 게 유엔사의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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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사 권한 빼앗으면 심각한 여파”
다른 유엔사 관계자는 “DMZ 남측 지역이 대한민국의 주권적 영토라는 점은 논란의 여지가 없다”면서도 “1953년 한국 정부는 정전협정을 적용받기로 주권적 결정을 내린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대목은 지난해 조원철 법제처장이 유엔사 관계자들을 비공개 면담했을 때 조 처장도 동의한 부분이라고도 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DMZ 남측 지역에 대해 한국 정부가 주권을 행사해 유엔사의 관할권을 빼앗아 갈 수는 있을 것”이라면서도 “그런 상황이 발생하면 정전협정과 정면으로 충돌하는 게 되고, 한국이나 유엔사 뿐 아니라 다른 이해 관계자들까지 심각한 여파(significant consequences)를 초래할 것”이라고 부연했다.
유엔사는 DMZ법 추진에 관해 사전에 통일부 등 한국 정부로부터 사전 설명을 받지 못 했다고 설명했다. “언론 보도가 되기 전에 협의가 있었으면 좋았을 것 같다”고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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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MZ 내 적대 행위, 韓대통령이 책임지지 않아”
또 다른 유엔사 관계자는 “DMZ 내부에서 어떤 사건이 양측 간 적대 행위로 귀결된다면, 이에 대한 책임은 현재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아닌 유엔사 사령관에게 있다”면서 유엔사의 권한 뿐 아니라 관리 책임도 부각했다. 그는 책자로 만든 정전협정을 들어 보이며 “제62조 등에 따라 정전협정은 평화협정으로 명시적으로 대체되기 전까지 효력을 유지하며, DMZ는 양측을 분리하고 적대 행위 재개를 막기 위해 마련됐다”며 “평화적 합의(평화협정)가 아직 이뤄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도 했다.
이날 유엔사는 DMZ 출입이 유엔사에 의해 가로막혔다는 정부 일각의 주장도 부인했다. 지난 몇 달간 문재인 전 대통령이 두 차례 DMZ를 방문하는 것을 승인했다고 공개하면서다.
앞서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문제 제기했던 김현종 국가안보실 1차장의 백마고지 유해발굴 현장 출입 불허와 관련해선 “11월 말 백마고지에서 매일매일 지뢰·수류탄 등이 발견되는 등 돌발 사고가 있었고, 실제 한국 군인이 폭발 사고로 부상을 입어 안정상의 이유로 다른 시기를 제안한 것”이라며 구체적인 근거를 밝히기도 했다.
앞서 정 장관은 지난해 12월 DMZ법 공청회에 참석해 “우리의 영토 주권을 마땅히 행사해야 할 DMZ에 출입조차 통제당하고 있다. 주권 국가로서 체면이 말이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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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부 “DMZ법, 한·미 관계 부정적 영향 우려”
DMZ법과 관련해선 정부 안에서도 입장이 크게 엇갈린다. 통일부는 DMZ 관련 사항을 포괄적으로 규율하는 법안이 원칙적으로 필요하다는 입장이고, 국방부와 외교부는 정전협정과 대북제재 위반 소지에 대해 우려를 표명했다.
국방부는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법안소위에 제출한 답변서에서 “유엔사와 사전 협의 없이 DMZ 이용을 국내 법률로 규정할 경우 정전체제 관리에 불필요한 혼선을 초래할 우려가 있고, 한·미관계와 유엔사 회원국들과의 국제적 신뢰 및 안보 협력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