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5일(현지시간) 스위스 곰스에서 열린 국제스키연맹(FIS) 크로스컨트리 월드컵 매스스타트 20㎞ 현장. 숨 가쁘게 눈길을 가르던 노르웨이 선수 한 명이 팀 동료 요하네스 클레보(30)에게 다가가 말을 건네는 모습이 중계 화면에 포착됐다. “이봐 클레보, 시상대는 넓으니까 조금만 페이스를 낮춰 주게나.” 크로스컨트리의 ‘살아있는 전설’로 통하는 클레보의 압도적인 기량을 단적으로 보여준 장면이다. 클레보가 앞장서며 레이스를 이끈 노르웨이는 이날 매스스타트에서 1위부터 7위까지 순위표를 싹쓸이하는 기염을 토했다.
클레보는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에서 역사적인 대관식을 이미 예약해두고 있다. 그의 앞에는 동계올림픽 사상 최다 금메달이라는 왕관이 기다린다. 클레보는 동계올림픽 데뷔전이었던 2018년 평창에서 금메달 3개를 따내며 당시 22세의 나이로 크로스컨트리 사상 최연소 금메달 기록을 세웠다. 4년 뒤 베이징에서도 금메달 2개를 추가한 그의 현재 통산 금메달은 5개다. 종전 역대 최다 기록은 노르웨이의 전설적인 여성 선수 마리트 비에르겐이 보유한 8개로, 이제 불과 3개 차이다.
스키를 신고 언덕을 오를 때도 평지를 내달리듯 전진하는 그의 질주에는 ‘클레보 런(Run)’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2018 평창 올림픽 당시 그가 가파른 오르막에서 수많은 경쟁자를 순식간에 추월하자, 해설진은 해당 구간을 아예 ‘클레보 언덕’이라고 칭했을 정도다. 폭발적인 막판 스퍼트도 압권이다. 이러한 기량을 바탕으로 클레보는 커리어 초기에는 주로 단거리인 스프린트에서 성과를 올렸으나, 2022 베이징 올림픽 이후 지독한 훈련을 거듭하며 50㎞ 매스스타트 같은 장거리 종목에서도 압도적인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지난해 열린 세계선수권에서 클레보가 보여준 모습은 그야말로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스프린트와 장거리 종목을 가리지 않고 무려 6개의 금메달을 거머쥐는 위업을 달성했다. 이를 육상에 비유한다면 단거리 황제 우사인 볼트가 100m는 물론 중거리인 800m와 최장거리인 마라톤까지 동시에 석권한 셈이다. “크로스컨트리의 왕”, “세계선수권 6관왕은 다시는 나오지 않을 불멸의 기록”이라는 찬사가 쏟아졌다. 현재 그는 크로스컨트리 월드컵에서 통산 107승을 거두며 최다승 기록을 매 경기 경신하고 있다. 월드컵 통산 우승 2위(46승)와는 이미 까마득한 차이다. 이달 초에는 해발 1000m가 넘는 알프스 스키 슬로프를 거꾸로 타고 올라가는 지옥의 레이스 ‘투르 드 스키’에서 통산 5번째 종합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
단거리의 폭발력과 장거리의 지구력 사이에서 완벽한 균형을 맞췄다는 평가를 받는 클레보는 이번 올림픽에서 남자부 6종목 전관왕 석권을 노리고 있다. 만약 이 도전에 성공한다면 그의 통산 금메달은 11개로 늘어나며, 동계올림픽 최다 금메달 기록을 가뿐히 갈아치우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