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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까지 ‘하반신 마비’…이 다리로 오를 시상대

중앙일보

2026.01.28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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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동계올림픽 D-8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은 정승기의 두 번째 올림픽 무대다. 사진은 지난 9일 생모리츠에서 열린 월드컵 때 경기 모습. [AP=연합뉴스]
“작년 이맘때는 걷는 것도 어려웠는데, 1년 만에 올림픽에 나가니 기적이죠. 그런데 여기서 멈추면 안 되죠. 내친김에 기적 한 번 더 써서 금메달 따겠습니다.”

하반신 마비를 딛고 돌아온 스켈레톤 국가대표 정승기(27)가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에 나서는 각오를 밝혔다. 평창동계훈련센터에서 만난 그는 “첫 올림픽에선 흥분해서 멘털이 흔들렸다. 0.01초 차로 메달 색이 갈리는 종목에서 실수하니 성적이 나빴다”면서 “이번엔 부담도 중압감도 없다. 컨디션과 경기력을 끌어올려서 승부하겠다”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정승기는 중3 때였던 2014년 ‘아이언맨’ 윤성빈의 레이스를 보고 스켈레톤에 입문했다. 윤성빈은 2018년 평창에서 한국 썰매에 사상 첫 올림픽 금메달을 안긴 레전드다.

정승기는 2022년 베이징(10위)에서 첫 올림픽 출전 꿈을 이뤘다. 이후 윤성빈이 은퇴하면서 에이스 자리를 물려받았다. 한국 스켈레톤의 새 간판이 된 정승기는 거침이 없었다. 2022~23시즌 스켈레톤 세계선수권에서 동메달을 따낸 데 이어 같은 시즌 월드컵에선 세 차례 준우승을 차지했다. 2023~24시즌 월드컵 2차 대회에선 첫 우승까지 일구며 세계 정상급 선수로 우뚝 섰다. 주 무기였던 폭발적인 스피드에 부족했던 힘을 키우면서 스타트 기록에서 경쟁자들을 압도했다. 당시 정승기는 나가는 대회마다 스타트 기록에서 전체 1위를 차지했다. 썰매 종목에선 스타트에서 0.1초 줄이면 최종 기록은 0.3초 단축된다. 초반 스피드의 증폭 효과 때문이다. 당시 전문가들은 정승기가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올림픽의 강력한 금메달 후보가 될 거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전성기로 가는 문턱에서 미끄러졌다. 2024년 10월 웨이트 트레이닝 중 허리를 다쳤다. 오버페이스가 화근이었다. 정승기는 “워낙 컨디션이 좋았다. 조금만 더 하면 최고가 될 것 같았다. 그래서 욕심을 냈고, 무리했다”면서 “평소 들던 것보다 훨씬 무거운 무게의 역기를 들다 허리 디스크가 터졌다. 울면서 수술대에 올랐다”고 털어놨다. 부상은 심각했다. 디스크가 터지면서 하체로 가는 신경이 끊어졌고, 그 영향으로 수술 후에도 하체 마비가 왔다. 의사는 “썰매를 다시 타기는커녕 아예 못 걸을 수도 있다”고 진단했다.

앞이 깜깜했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1년 가까이 힘겨운 재활을 버텨낸 정승기는 올림픽 시즌(2025~26)을 앞두고 트랙으로 복귀했다. 지난해 11월 그가 월드컵 시리즈를 치르기 위해 출국할 때만해도 그의 입상을 기대한 이는 없었다.

그러나 정승기는 모두의 예상을 뒤엎었다. 총 여섯 차례 월드컵 중 네 차례 대회에서 5위권 성적을 냈다. 그중 3차 릴레함메르 대회에서는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번 올림픽이 치러질 코르티나담페초 트랙에서 열린 1차 대회에선 첫 주행에서 2위, 두 번째 주행 합산 성적에선 5위로 입상권에 근접했다. 특히 시즌 종합 성적은 3위로 기복이 없었다. 경쟁자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정승기는 “내가 (메달) 경쟁력이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병원에 누워있을 때가 생각나서 울컥했다”고 말했다.

정승기가 스타트 자세를 취하고 있다. 출발 직전은 경기 중 가장 떨리는 순간이다. 김종호 기자
사실 정승기는 부상 여파로 강점이던 스타트가 느려졌다. 최근엔 평균 10위권 밖이다. 그러나 주행 능력을 끌어올리면서 시간을 단축했다. 정승기는 원래 주행엔 큰 강점이 없던 선수였다.

정승기는 “스타트가 좋았을 땐 스타트로 시간을 단축할 생각만 했는데, 이제는 주행에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스켈레톤 선수들은 몸으로 눌러 썰매를 컨트롤한다. 그는 “주행으로 보완해 나가다 보니까 나도 예상 못 한 유형의 선수가 된 것 같다. 역시 ‘죽으라는 법은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며 웃었다. 그렇다고 스타트를 포기한 건 아니다. 정승기는 “스타트를 끌어올리고 있다. 현재 주행 실력을 유지하며 스타트가 6~8위권으로 올라온다면 메달, 그 이상이면 금메달도 가능하다”라고 말했다.





피주영([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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