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의 한 친명(이재명)계 의원이 정청래 대표에 대한 경계심을 필자에게 나타냈다. 그가 의도를 의심한 일은 지난 22일 정 대표의 조국혁신당 합당 발표. 주가지수 5000을 달성한 정부의 호재가 정치 뉴스에 덮였다고 본 친명계는 정 대표가 야속했을 것이다. 설마 축제를 망치려고 의도한 건 아니었을 테니, 그렇다면 정 대표와 이재명 대통령의 궁합에 문제가 있다는 ‘원초적 의심 본능’에 도달한 것이다. 정 대표에 대한 친명계의 근본적인 불신을 표출한 완곡 화법인 셈이다.
정청래 합당 발표에 분노 폭발
대표 연임 노린 ‘빌드업’ 의심
공익 빙자한 사심이 갈등 키워
최근 친명계는 정 대표의 일거수일투족을 못 미더워 한다. 당의 공익적 목표를 빙자해 사적인 자기 정치를 꾀하는 ‘빙공영사(憑公營私)’로 보는 것이다. 오는 8월 당 대표에 연임하려는 ‘빌드업’이 진행 중이라는 얘기다. 전격적인 합당 발표에 친명계 최고위원(이언주·강득구·황명선)들이 “조국혁신당 지도부에는 미리 알렸으면서 민주당 최고위원들에게는 발표 20분 전 통지로 끝냈다”고 분노한 것도 그런 맥락이다. “청와대와 조율했다”는 정 대표의 말에는 “정 대표가 대통령과 논의한 바 없다”며 ‘대통령팔이’라고도 했다.
청와대는 일단 거리를 두고 있다. “사전에 논의된 것이 없다”(강유정 대변인)고 했다가 “민주당과 혁신당의 합당은 이재명 대통령의 지론”(홍익표 정무수석)이라는 원론적인 입장을 유지했다. 하지만 분위기는 미묘하다. 이후 정 대표의 경쟁자로 평가받는 김민석 국무총리가 인터뷰에서 “발표 방식이나 시기가 적절했는지에 대해 여러 의견이 있다”고 말하면서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친명계의 불만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정 대표는 한·미 관세협상 타결과 APEC의 성과를 누려야 할 타이밍에 재판중지법을 추진해 찬물을 끼얹었고, 당원 주권 시대라는 키워드로 1인 1표제를 추진해 당권 장악 속내를 감추지 않았다. ‘궁합이 맞지 않는’ 상황이 누적됐다가 조국혁신당 합당 발표가 트리거가 된 상황이다. 지난 19일 이 대통령과 민주당 지도부가 만찬을 하며 갈등설을 잠재웠던 것과 극명하게 대비된다. 당시 이 대통령은 정 대표에게 “반명입니까”라고 묻고, 정 대표가 “우리는 모두 친명이고 친청(청와대)입니다”라며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지금 보니 서로 뼈 있는 농담을 했던 셈이다.
전격적인 합당 발표로 6월 지방선거와 8월 전당대회의 유불리까지 계산해야 할 상황이 되자 계파는 물론 족보와 궁합까지 따지게 된 것이다. 화석이 된 줄 알았던 모든 갈등 바이러스는 되살아날 것이다.
일촉즉발의 위기는 이해찬 전 총리 애도 기간으로 잠시 휴전 상태다. 정 대표는 지난 26일 위험 신호를 의식한 듯 ‘애도 기간 중 언행 주의, 정쟁적 논평 자제’ 등의 지시를 내렸다. 같은 날 민주당 초선의원 모임 ‘더민초’의 총회가 연기되지 않았더라면 ‘정쟁적 언행’은 분출했을 것이다. 더민초에선 “장례가 끝난 뒤엔 전쟁”이라는 말도 나온다. 콩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정 대표 말은 안 믿는 분위기라고 한다. 앞서 “절차적 정당성 없는 독단적 합당 추진”이라는 반대 성명도 발표했다.
친청 유튜버 김어준씨도 친명계의 경계심을 높이고 있다. 그가 설립한 여론조사 기관(여론조사꽃)이 차기 서울시장 여론조사에서 김 총리를 제외해 달라는 총리실 요청을 거절한 게 뒷말을 낳고 있다. 김 총리의 당 대표 출마를 막으려고 시장 후보에 김 총리를 넣는다는 주장에 김씨는 “너무 유치해서 무시할 이야기”라고 했다. 하지만 민주당 안팎에선 김씨가 당권은 정청래, 대권은 조국을 염두에 둔 시나리오를 짜고 있다는 음모론이 돈다.
조국혁신당의 청구서까지 더해지면 범여권의 계파 갈등은 더 첨예해질 것이다. 공적인 명분을 빙자해 벌어질 수 싸움을 생각하니 벌써 뒷골이 쑤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