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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시장 이기는 정부 없다

중앙일보

2026.01.28 0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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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이재명 대통령의 특기는 아무도 생각지 못했던 기발한 정책이나 정치적 주장을 들고나오는 것이다. 지지자들은 열광하는지 모르겠지만 전문가들이 보기에는 아찔할 때가 많다. 대선공약이었던 기본소득은 몇몇 나라에서 소규모 실험만 해보았을 뿐 세계 어느 나라도 전면적으로 시행한 적이 없는 정책이다. 당 대표 시절 내세웠던 직접민주주의는 세계 어느 나라도 하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적이 된다는 것이 정치사상 연구의 변치 않는 결론이다. 이재명 당대표의 기발한 정책을 정청래 당대표가 이어받아서 탈탈 털어 활용하는 중이다. 기발한 시리즈의 최신판은 부동산 양도세 중과유예를 연장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며 내놓은 “정부 이기는 시장 없다”는 주장이다.

역대 정부가 시장과 싸운 결과
집값 두배로 뛰고 서민만 피해
역사적 경험과 충돌하지 말고
검증된 정책을 꾸준히 실행해야

현실에서 일어나는 모든 거래를 전적으로 시장원리에 맡기는 경제체제가 자유시장경제이다. 그 반대쪽 끝에는 현실에서 일어나는 모든 거래를 전적으로 정부가 결정하는 사회주의 계획경제가 있다. 현실 속의 경제체제는 이 중간 어딘가에 존재한다. 정부 이기는 시장이 없다면 구소련이 몰락하는 게 아니라 미국이나 한국 같은 자본주의 국가들이 몰락했을 것이다. 지금쯤 동유럽 국가들을 탈사회주의(post-socialist) 국가라고 부르는게 아니라 한국을 탈자본주의(post-capitalist) 국가라고 부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다행히도 세계사의 경험은 시장이 정부를 이긴다는 것이었다.

한정된 자원의 배분을 시장에 맡길 것인가 정부에 맡길 것인가는 사회과학의 핵심 연구주제라서 이 분야는 시장실패와 정부실패에 대한 연구들로 가득차 있다. 이 수많은 연구들의 압도적인 결론은 정부가 시장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이다.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다. 정부 정책은 몇몇 사람들의 제한된 합리성과 종종 왜곡된 정치적 목적 등에 따라 움직이는데, 시장은 최소 몇천만 명의 부단한 실천으로 움직인다. 정부가 시장을 이기겠다는 것은 손바닥에 물을 담아두겠다는 것과 다름없어서 아무리 조심해도 결국 물은 새나가는 허망한 노릇이 된다.

예외적이기는 하지만 정부가 시장을 이기는 사례가 없지는 않다. 투자업계의 유명한 격언인 “연준(Fed)과 싸우지 말라”는 말이 그것이다. 연준의 정책방향을 거슬러서 투자전략을 세우면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다. 하지만 연준의 정책 수단은 금리와 유동성이다. 연준이 원하는 방향으로 사람들이 투자하고 싶게끔 인센티브를 유도하는 것이다. 부동산에 몰리는 자금을 다른 곳으로 유도하고 싶다면 더 매력적인 투자처를 만들어줘야 하는데, 한국은 그게 아니라 부동산에 투자한 사람들을 세금으로 혼내주는 정책을 한다는 차이가 있다. 차이는 또 있다. 금리와 유동성은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적용되는데 세금은 똘똘한 한 채 소유자나 다주택자에게만 차별적으로 적용된다. 국민의 일부만 특정해서 세금으로 혼내주는 정책을 하려니 그 사람들은 나쁜 사람들이어야 앞뒤가 맞는다. 그런데 이재명 정부가 온갖 부양책을 동원하고 있는 자본시장 투자는 안 나쁘고 부동산 투자는 나쁜 이유가 무엇인지 설명하기는 궁색하다. 다주택 보유가 그렇게까지 나쁜 일이라면 두 마리 치킨도 처벌해달라는 처절한 조롱에 문재인 정부는 아무 답도 하지 못했다. 자신과 같은 자산가들의 세금을 인상해달라고 요구하고 세계적으로 존경받는 투자자였던 워렌 버핏도 3주택자였다. 그는 나쁜 사람인가 좋은 사람인가.

한국 부동산 정책의 흑역사는 정부가 철저하게 시장에 패배해왔음을 말해준다. 서울지역 아파트 평균 매매가를 기준으로 보면, 노무현 정부가 시장과 싸운 결과 2억5천이 5억이 되었고, 문재인 정부가 시장과 싸운 결과 6억이 12억이 되었으며, 이재명 정부가 1년 남짓 시장과 싸운 결과 12억이 15억이 되었다. 이 과정에서 압도적인 피해자들은 내 집 마련을 꿈꾸는 서민들이었다. 아무리 열심히 일하고 저축해도 정부가 시장과 싸워서 두 배씩 올려놓는 집값을 따라가는 건 불가능하다. 시대착오적인 대출규제에 묶이니 현금부자에게만 유리한 돈 놓고 돈 먹기 야바위판이 되었다. 원펜타스 36억을 현금으로 완납해서 35억 차익을 얻었다는 어느 장관 후보자 같은 사람들 말이다. 전세 매물이 사라지니 월세에 허리가 휜다. 징벌적인 양도세를 피하려 일찌감치 어린 자식에게 매도하는 세상이 되었으니 흙수저가 금수저를 따라가는 건 언감생심이다.

대통령의 철학이 정말로 “정부 이기는 시장 없다”는 것이라면 아찔한 일이다. 세계사의 경험과 충돌하고, 수많은 전문가들의 연구 결론과 충돌하며, 지나간 부동산 정책의 실패 경험과 충돌한다. 하늘 아래 새로운 정책은 없다. 기발한 정책도 없다. 역사적이고 학문적으로 검증된 교과서적 정책을 꾸준히 실행해야 한다. 정책의 성과는 복리로 계산되는 적금과도 같이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늘어나는 것이지, 기발하게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장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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