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수로 올림픽 포문을 열게 돼 영광이다. 기수로 함께 뽑힌 차준환 선수는 여자인 저보다 더 아름다운데, 전 개성으로 밀고 나가겠다.”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올림픽 개회식 한국 선수단 기수로 뽑힌 스피드스케이팅 국가대표 박지우(28)가 웃으며 말했다. 박지우는 다음달 7일(한국시간) 이탈리아 밀라노 산시로 스타디움에서 열리는 개회식에 차준환(남자 피겨스케이팅)과 태극기를 들고 한국 대표팀을 이끈다.
4년 전 베이징 동계올림픽 기수로 앞장섰던 쇼트트랙의 곽윤기와 김아랑은 남녀 계주에서 나란히 은메달을 획득했다. 이번에도 매스스타트와 1500m에 출전하는 박지우에게 거는 기대가 크다. 이승훈 스피드스케이팅 해설위원은 최근 이수경 대한빙상경기연맹 회장에게 “지우가 요즘 (매스스타트 경기력이) 확 올라왔다. 기대해도 좋다”고 말했다. 박지우는 지난달 월드컵 매스스타트 동메달을 땄고, 지난해 11월 월드컵 여자 1500m에서 12년 묵은 한국신기록을 깼다.
박지우의 빙속 인생은 지독히도 운이 따르지 않았다. 그러나 불운 속에서도 늘 감사를 잃지 않고 재기했다. 인터뷰 때도 “스케이트판에서 흔치는 않은 인생같다”고 푸념했지만 싱글벙글 웃음을 잃지 않았다.
‘왕따 주행’으로 논란이 됐던 2018 평창 올림픽 여자 팀추월 8강에서 김보름, 노선영 사이에서 스케이트를 탄 게 박지우였다. 당시 김보름은 물론 10대였던 박지우도 국민적 ‘마녀사냥’의 표적이 됐다. 이후 고의적인 따돌림이 없다는 결론이 나오면서 여론도 바뀌었고, 억울함도 벗었다.
악연이 될 수도 있었지만 김보름과는 여전히 친하다. 박지우는 “며칠 전 보름 언니와 브런치를 먹었다. 내 경기에 대해 여러 전략을 피드백해줬다”며 고마워했다. 매스스타트는 쇼트트랙처럼 정해진 자리 없이 순위 싸움을 한다. 그래서 ‘스피드스케이팅 경기장에서 진행하는 쇼트트랙’으로 불린다. 직선에선 강하지만 코너링이 약한 박지우는 쇼트트랙 경험이 있는 김보름에게 살뜰한 조언을 들었다.
박지우는 2022 베이징 올림픽 매스스타트에 출전했지만 국제대회에서 처음으로 넘어지면서 준결승에서 탈락했다. 그간의 노력이 한순간 물거품이 됐지만 발을 건 러시아 선수를 일으켜 세워 박수를 받았다. 두 달 전에는 월드컵 매스스타트에서 어이없는 심판 실수로 절호의 우승 기회를 놓쳤다. 가장 먼저 들어왔다고 환호했지만, 바퀴 수를 착각해 마지막 바퀴를 알리는 종을 잘못 친 심판 실수로 순위가 밀렸다. 그런데도 박지우는 “더 잘되려고 그러나 봐요”라며 껄껄 웃었다.
박지우는 ‘나중에 어떤 선수로 기억되고 싶은가’라는 질문에 “우여곡절이 많았는데 예쁜 꽃을 피워낸 선수”라며 눈을 반짝였다. 이어 “난 재능이 있는 선수는 아니다. 스피드스케이팅은 노력한 만큼 기록이 나온다. 다리가 터질 것처럼 훈련했다. 포기하지 않고 하니까 여기까지 왔다. 올림픽은 제 국가대표 10년을 보여줄 수 있는 무대”라고 했다. 박지우는 매스스타트 남자 국가대표 정재원 등과 강원도 양양에서 사이클을 5시간씩 타며 맹훈련했다.
박지우는 지난해 10월 절친인 스피드스케이팅 500m 국가대표 김민선(27)과 서울 종로에서 오륜기 모양의 우정 목걸이 맞췄다. 그는 “세공사가 밀라노에서 기술을 배웠다고 해서, ‘어머 이건 운명이야’라고 했다. 피부톤에 맞춰 민선이는 금빛, 난 화이트골드(은빛)으로 맞췄다. 나도 민선이도 꼭 메달을 땄으면 좋겠다”며 끝까지 환하게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