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고인은 청탁과 결부된 고가의 사치품을 뿌리치지 못하고 자신을 치장하는 데 급급했다. 검이불루 화이불치(儉而不陋 華而不侈·검소하되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나 사치스럽지 않다)란 말처럼 굳이 값비싼 재물을 두르지 않고도 품위를 유지할 수 있다.”
28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311호 법정에서 재판장인 우인성 부장판사가 김건희 여사에게 “영부인 지위를 영리 추구에 오용했다”고 질타하며 한 말이다. 김 여사는 우 부장판사의 말에 고개를 더욱 숙였다. 우 부장판사가 징역 1년8개월의 선고를 끝내자 김 여사는 재판부를 향해 손을 모은 채 두 차례 고개를 숙였다. 김 여사는 곁에 선 변호인단과 대화를 나누고 서류를 들여다본 뒤 이윽고 교도관 두 명에게 양팔이 잡힌 채로 천천히 걸어 퇴정했다. 전직 영부인에 대한 첫 선고 공판 생중계는 40여 분 만에 종료했다.
김 여사는 이날 오후 2시10분 교도관들에게 양팔이 잡힌 채로 법정에 들어섰다. 뿔테 안경에 흰 목폴라 티셔츠, 남색 정장 차림이었다. 머리를 한 갈래로 모아 묶고, 흰 마스크를 했다. 표정을 읽기 어려울 만큼 무표정을 유지했다. 자본시장법 위반 및 정치자금법 위반, 특정범죄 가중처벌법상 알선수재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김 여사에게 특검이 구형한 총 형량은 징역 15년이었다. 당시 김 여사는 “억울한 점이 많다”고 최후진술했다.
우 부장판사는 선고 시작과 함께 “옛말에 형무등급(刑無等級), 추물이불량(趣物而不兩)이라는 말이 있다”며 “법의 적용에는 권력자든, 권력 잃은 자든 예외나 차별이 없어야 하고 무죄추정의 원칙과 ‘불분명할 때는 피고인의 이익으로’ 같은 법의 일반 원칙도 권력자 혹은 권력을 잃은 자에게 다르게 적용될 수 없다”고 말했다. 중계를 지켜보던 한 법조계 관계자는 “주요 혐의에 대한 무죄가 예상되던 발언”이라고 했다.
고개를 숙인 채 미동도 없이 앉아 있던 김 여사가 처음으로 고개를 든 건 우 부장판사가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과 관련해 “무죄를 선고한다”고 말했을 때였다. 김 여사는 옆자리에 앉은 변호인단을 쳐다보며 귓속말을 했고, 변호사는 김 여사에게 미소 지으며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이후 김 여사는 크게 안도의 한숨을 내쉰 후 왼손으로 머리카락을 쓸어 넘겼다.
변호인단은 우 부장판사의 말마다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 지었다. 특히 우 부장판사가 “주식 조종 세력과 공동정범으로 (주가 조작을) 시행한 것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말하자 크게 끄덕이는 모습이 포착됐다. 재판 중간에 김 여사를 바라보며 입 모양으로 ‘무죄’라고 말하기도 했다. 반면 특검팀 측 검사들은 굳은 표정을 한 채 정면만 바라봤다.
우 부장판사가 “피고인은 미래한국연구소 여론조사와 관련해 명태균씨와 계약을 체결한 바가 없다”고 말했을 때 김 여사는 다시금 고개를 들었다. 재판부가 도이치모터스에 이어 명태균 관련 혐의도 “정치자금법 위반 사실은 범죄 증명이 없다”고 내리 무죄를 선고하자 김 여사는 본인의 좌우에 앉은 변호인들을 쳐다보며 귓속말을 나눴다. 김 여사는 간간이 뿔테 안경을 추켜올리기도 했다.
재판부가 건진법사 전성배씨를 통해 윤영호 전 통일교 세계본부장으로부터 금품을 받은 혐의 중 일부를 유죄로 인정할 때는 김 여사 측 변호인이 깊게 한숨 쉬며 책상에 얼굴을 잠시 파묻었다. 우 부장판사가 “고가 사치품을 뿌리치지 못하고 수수해 자신의 치장에 급급했다”고 비판하자 김 여사는 역시 고개를 떨어뜨릴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