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김종우 선임기자 = '지구종말시계(Doomsday Clock)'는 지구 멸망까지 남은 시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경보등이다. 시곗바늘이 자정에 근접할수록 재앙이 그만큼 다가왔다는 신호다. 이는 1947년 원자폭탄 개발에 참여한 과학자들이 핵무기 파괴력을 환기하고자 고안한 것이다. 핵전쟁 발생 시 인류의 파멸을 공감각적으로 체감하게 하려는 시도였다. 이후 핵무기 외 기후위기와 첨단기술 오용 등 인류 생존을 위협하는 요소들을 종합해 조정돼 왔다.
미국 핵과학자회(BSA)는 28일(현지시각) 지구종말시계를 '자정 85초 전'으로 앞당겼다고 밝혔다. 이 시계는 2021년과 2022년 자정 100초 전을 유지하다가 2023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90초 전으로 앞당겨졌다. 2025년엔 89초 전으로 1초가 줄었다가 올해 다시 4초가 당겨져 85초 전에 도달했다. 1947년 시계가 설정된 이후 자정에 최근접한 것이다. 냉전 시기 핵 대치가 극에 달했을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가장 안전했던 시점은 냉전이 막을 내린 직후인 1991년이다. 당시 시계는 자정 17분 전까지 늦춰졌다.
지구종말시계가 변경된 주된 이유는 핵전쟁 위험 때문이다. 핵보유국 간 군축 체제가 약화하고, 핵무기는 경쟁 대상으로 재부상하고 있다. 기후위기는 상수가 됐다. 폭염과 홍수, 산불은 일상화됐지만, 온실가스 감축은 진전이 없다. 통제되지 않은 첨단기술도 위험 요인으로 지목됐다. 인공지능(AI) 기술의 진화 속도를 규범과 제도가 따라가지 못한다. 허위정보는 판단 능력을 흐리고, 위기 상황에서 오판 가능성을 키운다. 이 요소들은 상호작용하면서 악순환의 나선을 그리고 있다.
이런 흐름 속에 국제 질서의 불안정성도 겹쳐 있다. 미·중 대결은 이제 구조적 단계로 접어들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와 전쟁 와중에 전술핵 사용 가능성을 반복적으로 언급하면서 핵 공포를 불러일으켰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재집권으로 국제법과 협력의 규범이 흔들리고, 각국은 공동의 안전보다 자국의 생존을 중시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북한의 핵 개발도 큰 위협 요인이다. 핵탄두 소형화와 운반 수단의 고도화는 한반도를 상시적 불안정 상태로 몰아넣고 있다.
지구종말시계가 전하는 메시지는 공포가 아니라 경고다. 위기는 갑자기 다가오는 게 아니라 위험을 방치한 시간이 쌓인 결과다. 이는 한국에도 예외 없이 적용된다. 북한 핵 위협이라는 안보 리스크는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동시에 양극화와 경기침체, 저출생·고령화라는 내부 과제도 녹록지 않다. 대응을 늦출수록 선택의 폭은 좁아진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점은 지구종말시계가 예정된 운명이 아니라는 것이다. 시곗바늘은 인간의 선택에 따라 언제든 뒤로 후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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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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