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3월 10일 새벽 서울 서초동 아크로비스타. 막 ‘대통령 당선인’이 된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예비 영부인’ 김건희 여사에게 제안했다. (이하 경칭 생략)
김건희는 즉답을 내놓지 않았다. 이런저런 논란과 ‘사고’ 때문에 대선 기간 내내 어둠 속에 숨어있던 그였다. 이제 양지로 나가도 될까? 한참을 고민하던 그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 아무래도 안 되겠어요. 아직은 아닌 것 같아요. "
윤석열은 결국 첫 번째 당선사례를 부인 없이 혼자 해야 했다. 하지만 김건희도 영부인이 된 소회와 각오를 밝히지 않은 건 아니었다. 중앙일보와의 서면 인터뷰를 통해서다.
" 해외에서는 대통령 배우자가 직업을 유지하거나 정치적 메시지를 내는 사례가 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당선인이 국정에만 전념하시도록 내조하겠습니다. "
2021년 12월 15일 허위이력 논란 당시 공개 사과를 통해 “남편이 대통령이 되는 경우라도 아내의 역할에만 충실하겠다”고 밝힌 것과 같은 결의 이야기였다.
그러나 그건 말뿐인 다짐이었다. 김건희에게 ‘내조형 영부인’에 머물 생각이 없음이 확인되는 데 오랜 시간은 필요하지 않았다.
전편에서 언급했듯 이같은 ‘여사’와 ‘여사 라인’의 전횡이 가능했던 건 윤석열의 노골적 비호와 방관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 되돌아봐도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 행보였다.
윤석열은 왜 김건희의 전횡을 방치했을까. 그리고 왜 정권을 건 도박을 감행하면서까지 김건희를 보호하려 했을까. 두 사람의 관계가 도대체 어떤 것이었기에 이런 비상식적인 일들이 가능했던 걸까. 취재팀은 지난 정부 핵심 인사들과 부부의 주변인 등 수십명을 만나 탐문한 결과 두 사람의 관계를 설명해줄 ‘열쇠 말’ 몇 가지를 도출할 수 있었다.
「
‘미안하다, 사랑한다’...윤석열과 김건희
」
먼저 ‘사랑’이다.
2011년의 어느 날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에서 윤석열 당시 대검 중수과장이 진땀을 흘리고 있었다. (이하 경칭 생략) 그는 동료 검사 A의 권유를 누차 거절하고 있었다. 호의에서 비롯된 권유였던 터라 거절은 쉽지 않았다. 게다가 그 권유자는 매우 끈질겼다.
" 아니, 왜 안 만나겠다는 거예요? 그 사람 몰라요? TV에서 많이 봤잖아요. 정말 좋은 처자라니까요! "
A가 윤석열에게 재삼 재삼 권한 건 소개팅이었다.
당시 겨우 부장검사였던 윤석열은 동료들 사이에서 이미 ‘검찰총장’으로 통했다. 다만 그건 검찰 총수의 호칭이 아니라 ‘검찰 총각대장’의 줄임말이었다. 만 51세, 예전 같으면 손주를 볼 수도 있는 나이였지만 그는 그때까지 가정을 꾸리지 못했다.
이성을 만날 기회가 적었던 건 아니다. 친화력 좋은 마당발인 그는 지인이 많았고, 자연스레 그를 ‘구제’하려는 이들이 줄을 섰다.
" 윤 전 대통령이 결혼할 때까지 소개팅이나 선을 통해 여성을 150명 이상 소개받은 거로 알고 있어요. "
젊을 때부터 그를 잘 알고 지낸 법조계 인사 B의 전언이다.
좀처럼 인연이 이어지지 않았지만, 그의 소개팅 행렬은 끊이지 않았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어쩐 일인지 그가 소개팅 제의를 거절하기 시작했다. 노총각이라고 표현하기도 민망했던 50대 미혼자가 ‘감히’ 퇴짜놓은 대상 중에는 이름만 대면 알 법한 유명인들도 적지 않았다. A가 권했던 여성 역시 그중 한 명이었다. 그는 유명 여배우였다.
지난 정부 용산 참모와 윤석열 부부의 측근들은 하나같이 “김건희에 대한 윤석열의 사랑이 각별했다”고 입을 모은다. 전직 용산 참모 D가 일화를 하나 들려줬다.
" 윤 전 대통령 부부를 보면 윤 전 대통령이 김 여사를 더 사랑하는 게 느껴져. 윤 전 대통령이 어느 날 직접 이런 말을 하신 적이 있었어. 농담인지 진담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야. "
다음은 D가 들려준 윤석열의 당시 발언이다.
" 우리가 결혼할 때 혼인 신고를 안 했거든. 사람 일은 알 수 없는 거니까 혹시나 해서 말이야. 혼인신고는 1년쯤 뒤에 하자고 약속했었지. 그런데 어느 날 집사람하고 대판 싸웠는데 집사람이 ‘헤어지자. 혼인신고도 안 했으니 그냥 헤어지면 되지 않느냐’고 하더라고. 그래서 내가 뭐라고 했는지 알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