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 전 대표의 제명이 확정되면서 국민의힘이 한 치 앞을 예상하기 어려운 격랑 속으로 빠져 들었다. 6·3 지방선거를 124일 앞두고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 찬반을 두고 대립했던 주류와 비주류가 다시 정면 충돌하는 형국이다. 여기에 지방선거 이후까지 내다본 당내 주도권 다툼이 결부되면서 양측의 싸움이 격화할 전망이다.
국민의힘 최고위원회의는 29일 오전 한 전 대표 제명을 확정했다. 장동혁 대표가 전날 당무에 복귀해 “절차에 따라 진행될 것”이라 예고한 대로였다. 지난 14일 새벽 윤리위원회가 ‘당원 게시판 의혹’으로 한 전 대표에 대한 제명을 기습 결정한 지 15일 만의 징계 절차 종결이었다. 한 전 대표는 29일 최고위 의결 즉시 당적 박탈과 함께 향후 5년 간 복당이 금지된다. 이번 지방선거와 국회의원 재·보궐선거뿐 아니라 2028년 총선과 2030년 대선까지 국민의힘 간판을 달고는 출마가 불가능해졌다.
최고위에서 찬반 거수로 진행된 제명안 표결에는 지도부 9명이 참여했다. 장 대표를 비롯해 송언석 원내대표, 정점식 정책위의장, 김민수·김재원·신동욱·조광한 최고위원 등 당권파 7명이 찬성했다. 그간 당내 통합을 강조했던 양향자 최고위원은 기권했고, 반대 입장은 친한계 우재준 청년 최고위원이 유일했다. 회의장을 먼저 나온 우 최고위원은 “한 전 대표 제명은 (윤 전 대통령) 탄핵 찬성에 대한 보복이자 당내 갈등에 정점을 찍는 장면”이라고 했지만 주류의 입장은 달랐다.
표결 전 진행된 공개 회의에선 강경파의 제명 찬성 발언이 이어졌다. 김민수 최고위원은 “제 가족도 많은데 다 동원해서 (당원 게시판에) 107명 국회의원을 음해해도 놔둘 것이냐”고 했다. 장 대표가 지명한 조광한 최고위원도 한 전 대표를 ‘고슴도치’와 ‘악성 부채’에 비유하며 “우리 당의 악성 부채는 내일을 위한 변화와 발전에 큰 걸림돌”이라고 했다.
한 전 대표는 최고위 결정 이후 약 4시간 뒤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저를 제명할 수는 있어도 국민을 위한 좋은 정치의 열망을 꺾을 수는 없다”며 “절대 포기하지 말라. 저는 반드시 돌아온다”고 했다. 친한계 의원 16명은 별도 기자회견을 통해 “개인적 이익을 위해 당을 반헌법적이고 비민주적으로 몰아간 장동혁 지도부는 즉각 물러나야 한다”며 장 대표의 사퇴를 요구했다. 함경우 전 경기 광주갑 당협위원장 등 친한계 전·현직 원외 당협위원장 24명도 장 대표 사퇴 요구 성명서를 발표했다.
주류의 제명 강행과 친한계의 반발은 예정된 수순이었지만 이날 오후 오세훈 서울시장이 참전하며 싸움의 판은 커졌다. 한 전 대표 제명을 둘러싼 갈등이 보수 진영 전체로 번진 것이다.
오 시장은 페이스북에서 “장 대표가 기어이 당을 자멸의 길로 몰아넣었다”며 “대표 자리에서 물러나 그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장 대표를 직격했다. 이번 제명에 대해선 “장 대표 개인과 홍위병 세력을 위한 사당화”라고 주장했다. 제명에 반대해온 오 시장은 전날까지도 “장 대표와 한 전 대표가 만나라”며 정치적 해결을 요구했다.
하지만 중재 노력이 전혀 통하지 않자 오 시장은 전격적으로 싸움에 뛰어드는 길을 택했다. 오 시장 측에 따르면 오 시장은 밤새 고민한 뒤 참모진과도 미리 상의하지 않고 페이스북에 메시지를 썼다고 한다. 오 시장 측 관계자는 “윤 전 대통령과 절연을 하지 못한 상황에서 강성 보수만 뭉쳐 선거를 치르겠다는 장 대표 구상으로는 선거에서 필패할 것”이라고 했다. 또 다른 오 시장 측 인사는 “장동혁 지도부가 현재의 분열을 수습할 능력이 없다는 게 오 시장의 판단”이라며 “이대로 선거를 치르면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식물 후보처럼 있다가 지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정치권에선 이번 싸움을 단순한 내부 충돌이 아닌 보수 야권의 헤게모니 싸움으로 보고 있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장 대표와 주류는 ‘한동훈 제거’를 바라는 강성 지지층의 요구를 따른 것이고, 비주류는 강성 지지층에 끌려다니는 장동혁 지도부를 넘지 못하면 앞으로 국민의힘에서의 활동 공간이 사실상 사라진다”고 말했다.
영남 중진 의원은 “설 연휴가 지나서도 지지율 반등이 없고, 외연 확장이 안 된다면 관망하는 중립 성향의 의원들까지 지도부 사퇴에 대한 요구가 나올 수 있다”고 했다. 초·재선 의원 모임인 ‘대안과 미래’는 이날 장 대표에게 “비상계엄을 옹호해 온 정치 세력, 부정선거 음모론자들과의 단절을 선언하고 당의 통합과 화합, 연대를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하라”고 촉구했다.
실제 친한계는 벌써부터 ‘지방선거 이후’를 거론하고 있다. 박정훈 의원은 이날 제명 의결 전 출연한 SBS 라디오에서 “장동혁 지도부를 다 제명해야 한다”며 “이렇게 가면 지방선거에서 분명히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에 대한 책임을 분명히 물어야 한다. 그런 시간이 반드시 올 것”이라고 강조했다.
당초 장 대표는 한 전 대표 제명을 계기로 당내 갈등 요인을 제거한 뒤 개혁신당과의 연대 등 외연 확장과 당 쇄신에 전력한다는 구상이었다. 다음달에는 당명 교체와 당 정강·정책 개정을 토대로 분위기 반전에도 나서겠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친한계가 아닌 오 시장 등 찬탄파(탄핵 찬성파)까지 개입하면서 당초 구상이 실행되는 데 큰 장애물을 만나게 됐다.
당장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는 이날 국민의힘과의 선거 연대에 대해 “선거 연대를 할 요소가 없다. 서로 너무 잘 알고 있는 집단이기 때문에 어떤 생각을 하는지 뻔히 알고 있고, 그런 논의에 들어갈 생각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