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선 아일린 구(Eileen Gu), 중국에선 구아이링(谷爱凌)이라 불리는 스타가 있다. 2003년 샌프란시스코에서 미국인 아버지와 중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2022년 베이징 올림픽 당시 중국 국적을 선택하며 단번에 세계적인 아이콘으로 부상했다. 프리스타일 스키 2관왕을 차지한 그는 당시 19세의 나이로 역대 최연소 프리스타일 스키 올림픽 챔피언이라는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구아이링은 만화 속에서나 존재할 법한 ‘완벽한 캐릭터’다. 스탠퍼드 대학교에서 양자물리학을 전공하는 수재인 그는 대입 예비고사(SAT)에서 1600점 만점에 1580점이라는 경이로운 점수를 받았다. 훈련 중에도 운동 신경 세포 활성화나 축 회전 같은 전문적인 물리학 용어를 쏟아내는 그의 모습은 대중에게 지적인 ‘이과 언니’라는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화려한 미모를 지닌 그는 은반 밖에서도 전 세계 패션쇼를 누비는 톱모델이다. 뉴욕과 파리를 오가며 루이뷔통, 빅토리아 시크릿의 런웨이에 섰다. 학업과 운동을 병행하면서도 레드불, 티파니, 포르쉐 등 글로벌 브랜드와 안타 스포츠 등 중국 대기업들의 후원을 받는 그의 가치는 상상을 초월한다. 베이징의 한 호텔 창밖으로 자신의 광고판 5개를 동시에 발견했을 만큼 중국 내 인기는 절대적이다. 2024년 포브스가 발표한 여자 선수 수입 순위에서 그는 약 320억 원으로 세계 3위에 올랐다.
미국에서 나고 자랐지만, 그는 16세에 “어머니 나라의 소녀들에게 영감을 주고 싶다”며 중국 국적 출전을 선언했다. 베이징 올림픽이 다가오자 일부 미국 평론가들은 “미국 시스템에서 성장하고도 나라를 저버린 배신”이라며 날 선 비판을 퍼부었다. 4년이 흐른 지금도 미·중 갈등이 깊어지면서 그를 바라보는 시선은 더욱 복잡해졌다.
이중국적을 허용하지 않는 중국의 법적 테두리 안에서 특혜 의혹도 제기된다. 구아이링은 미국 시민권 포기 여부에 대해 “그게 왜 중요한지 모르겠다”며 즉답을 피했다. 대신 자신을 향한 비난에 “지정학적 요소가 작용하고 있다”고 항변하며,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고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음을 강조했다. 실제로 중국 정부는 베이징 올림픽 이후 3억 명 이상의 인구가 빙상 및 설상 스포츠를 접하게 됐다고 발표했다.
국제 정치적 현안에 대해서는 선을 긋는 모습이다. 그는 “그 분야의 전문가는 아니며, 기사 하나를 읽고 그것이 진실이라고 믿지는 않는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밀라노 올림픽에서도 대중 관세 정책 같은 질문이 쏟아질지 모르지만, 그는 이미 단호한 답변을 준비해둔 듯하다. “내가 언제 무역부 장관으로 승진했느냐고 되묻겠다. 특정 의제의 대변인이 되어달라는 요구는 무책임하다”는 것이 그의 논리다.
현란한 영광 뒤에는 숨 가쁜 희생이 있었다. 비행기 안에서 과제를 해결하고 몇 년간 영화 한 편 제대로 보지 못할 만큼 자신을 채찍질해왔다. 2023년에는 공황장애 증세를 겪기도 했으나, 이 모든 압박을 이겨내고 그는 다시 밀라노를 조준하고 있다. 월드컵 통산 20승으로 역대 최다 우승 기록을 갈아치운 그의 기량은 나날이 진화 중이다. 이번에도 하프파이프, 빅에어, 슬로프스타일 세 종목에서 3관왕에 도전한다.
“운동을 아주 잘하는 풀타임 학생”이라는 구아이링의 유니폼에는 두 개의 라틴어 문구가 새겨져 있다. ‘Non Ducor, Duco(나는 이끌리지 않는다, 내가 이끈다)’와 ‘Veni, Vidi, Vici(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 이 문장들은 그가 밀라노에서 보여줄 행보를 예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