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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빙판 위 순간이동"…컬링 '5G' 훈련장에 뜬 비밀병기

중앙일보

2026.01.29 07:01 2026.01.29 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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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동계올림픽 D-7

VR 장비를 활용해 현지 적응 훈련을 하는 여자 컬링 국가대표팀. 왼쪽부터 설예은, 설예지, 김은지, 김민지, 김수지. 김성태 객원기자
“우와, 진짜 신기해! 여기가 진천이야, 이탈리아야?”

지난 27일 충북 진천 국가대표선수촌 내 한국스포츠과학원(KISS) 훈련장. 차가운 얼음판도 없는 맨바닥 지상 훈련장에 한국 여자 컬링 국가대표 5인방의 탄성이 울려 퍼졌다. 이름과 별명 끝 자가 모두 ‘지’로 끝나 ‘5G’라 불리는 이들은 지금 가상 세계 속에 서 있다. 다음 달 동계올림픽 컬링 경기가 열릴 코르티나담페초의 ‘컬링 올림픽 스타디움’을 진천으로 고스란히 옮겨온 디지털 트윈 훈련 현장이다.

선수들이 고글 형태의 VR(가상현실) 장비를 착용하자, 8000㎞ 이상 떨어진 이탈리아의 현지 경기장이 눈앞에 입체적으로 펼쳐졌다. 스톤이 미끄러지는 시트의 긴 직사각형 모양부터 수천 개의 관중석 거리감까지 실제처럼 생생하다. 이는 KISS 연구원들이 지난해 4월 올림픽 테스트 이벤트를 직접 찾아 경기장 곳곳을 고성능 액션캠과 드론으로 정밀 촬영해온 결실이다. 세컨드 김수지(33)는 “실제 코르티나 경기장에 선 것처럼 현장감이 압도적이라 발을 떼기가 조심스러울 정도”라며 감탄했고, 얼터 설예지(30)는 “시트를 기준으로 경기장의 모든 시야를 미리 둘러볼 수 있어 벌써 올림픽이 개막한 기분”이라며 설레는 표정을 지었다.

컬링 국가대표팀 김수지가 아이트래커를 끼고 훈련하고 있다. 김성태 객원기자
이번 훈련은 단순한 시각적 체험을 넘어선 치밀한 ‘환경 적응’ 전략이다. 사실 이들은 2년 전 이곳에서 경기를 치른 적이 있는데, 당시 경기장은 아름다운 외관과 달리 통유리 구조 탓에 빛 반사가 극심했다. 선수들이 “선글라스를 써야 하나” 고민할 정도로 눈부심이 심했지만, 이번 KISS의 사전 조사를 통해 현재는 검은색 막을 설치해 빛 반사 문제를 해결했다는 사실을 VR로 미리 확인하며 심리적 안정까지 얻었다. 스킵 김은지(36)는 “예선만 9경기를 치러야 하는 대장정인데, 실제와 흡사한 환경을 미리 경험하며 관중의 시선이 집중되는 압박감 속에서도 평소와 같은 호흡과 템포로 투구하는 법을 익히고 있다”고 설명했다.

훈련장 한편에서는 서드 김민지(27)가 영화 ‘007’ 시리즈를 연상시키는 특수 안경 ‘아이트래커’를 쓰고 전략을 가다듬었다. 선수의 눈동자 움직임과 시선이 머무는 위치를 실시간으로 측정하는 이 장비는 팀워크의 차원을 한 단계 높였다. 2022년 베이징 올림픽 당시의 특정 경기 상황을 설정해두고 김민지가 공격 지점을 바라보면, 동료 4명은 모니터를 통해 그 시선의 궤적을 실시간으로 공유하며 토론한다. 김민지는 “내가 어디를 보고 있는지 팀원들이 즉각 파악하니, 승부처에서 말하지 않아도 서로의 마음을 읽는 데 효과적”이라고 강조했다.
VR 장비로 훈련하는 김은지(가운데). 설예은(오른쪽 둘째)은 아이트래커를 착용하고 있다. 김성태 객원기자

이 모두 적지 않은 예산과 시간을 필요로 하지만, 훈련의 효과를 인지한 대한체육회와 대한컬링연맹이 적극적으로 후원하면서 순조롭게 올림픽 출격이 준비되고 있다. KISS 장태석 박사는 “지난 2024 파리 하계올림픽 당시 사격 대표팀도 생소한 샤토루 경기장을 VR로 미리 살피며 낯선 환경에 완벽히 적응했고, 그것이 결국 금메달 3개와 은메달 3개라는 역대급 성과로 이어졌다”며 “올림픽은 결국 환경과의 싸움이며, 누가 더 빨리 낯선 곳을 안방처럼 느끼느냐가 승패의 관건이다. 훈련의 바탕을 마련해주는 대한체육회와 대한컬링연맹에도 감사드린다”고 밝혔다.

이제 올림픽은 체력과 기술의 대결을 넘어 VR, AI(인공지능), 빅데이터가 총동원되는 첨단 정보전의 장이다. 국가대표 스포츠과학지원센터의 든든한 지원 속에 스피드스케이팅 대표팀은 VR 이미지 트레이닝에 매진하고 있으며, 쇼트트랙 선수들은 몸의 좌우 밸런스를 정밀 수치화해 훈련 강도를 미세 조정하고 있다.





고봉준.박린([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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