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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백의 아트다이어리] 사람이세요?

중앙일보

2026.01.29 07:10 2026.01.29 0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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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백 홍익대 교수 미술사·시각철학
“사람이세요?” 이 속도로 간다면 머지않아 이런 질문을 하게 될 것만 같다. AI는 갈수록 사람을 닮아가고 사람은 점점 AI처럼 말해서 어떨 땐 실제로 혼동되기도 한다. 얼마 전 AS 수리를 해주러 온다는 기사가 통화 중에 하도 AI처럼 말해서 “혹시 사람이세요?”라고 묻고 같이 웃음을 터뜨린 적이 있다. 연초부터 머잖아 휴머노이드 로봇이 상용화된다는 뉴스가 나오고 있는데, 곧 기계들이 가사 노동에서부터 의료 행위, 그리고 각종 산업의 제작이며 설비에 이르기까지 우리 사회 전반의 일을 도맡을 기세다. 말은 안 하지만 너나없이 예측 불가로 시시각각 압도해 오는 이 신(新)문명 앞에 전전긍긍인 것 같다.

AI가 거장 화풍 복제하는 시대
‘아직도 그리느냐’는 자조도
그럴수록 원작의 가치 귀해져

로버트 카파 ‘몽마르트르, 파리’(1952) 사진.
얼마 전 교외의 한 널찍한 카페에 들렸다가 사람이 하도 많아 바로 나오려다가 문득 호기심이 들어 굳이 자리를 얻어 앉았다. 삼삼오오 모여 앉아 소소한 이야기에 여념 없는 사람들로 꽉 차 있는 공간. ‘특별할 것도 없는 평범한 교외 카페에 왜들 저리도 붙어 앉아 있는 걸까?’ 하는 의문과 함께, 문득 ‘외로우니까 사람이다’라는 시구가 머리를 스쳤다, 웅얼거리는 소리, 36.5도의 체온들, 낮게 깔린 커피 향…. 동종의 인간들 속에 들어와 있다는 기이한 안도감과 함께, 언젠가 저런 광경도 그리울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장차 어떻게 되는 걸까. AI는 우리에게 적일까, 아군일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앞으로의 사회는 AI를 잘 다룰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으로 나눠질 것이란 사실이다. 물론 AI를 잘 다루는 방법이 ‘질문을 잘하는 것’이라는 것쯤은 이제 누구나 안다. 문제는 앞으로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은 대체 무엇인가?’이다. 혹자는 골치 아프고 고된 일은 모두 AI에 맡기고 사람은 봉사와 상담, 그리고 문화와 예술 등의 일에 주로 종사하게 될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을 내놓기도 한다. 과연 그럴까?

예술 영역의 하나인 미술에서도 이미 AI의 영향력은 확산 일로에 있다. 생성형 AI가 거장들의 화풍을 단 몇 초 만에 복제해 내는 광경은 이제 신기하지도 않다. 사진을 보여주면 즉각적으로 초상화가 그려져 나오게 되는 것이니 몽마르트르 언덕 같은 관광지에서 거리의 화가 앞에 앉아 그 화가의 손놀림 따라 그려지는 자신의 얼굴을 바라보며 즐거워하던 일은 이제 추억으로만 남겨지게 되었다. 오죽하면 미술가들 사이에서 “아직도 그리세요?”라는 자조적인 농담이 생겨났을까.

인류는 이제껏 이러한 규모와 속도의 테크놀로지를 대면한 적이 없다. 물론 컴퓨터 출시, 인터넷 발명 등 문명의 분기점은 여러 번 있었고 그때마다 충격의 여파가 있었다. 20세기 전반 발터 벤야민만 하더라도 기술 복제 시대를 맞아 미술에 있어서 원작의 아우라는 소멸할 것이라고 예고한 바 있다.

하지만 대량 복제가 벤야민의 예상과는 달리 미술작품의 아우라를 소멸시키기는커녕 오히려 그에 대한 대중적 열망을 더 키웠다는 점은 아이러니하다. 예컨대 모나리자의 진품은 루브르에 있지만, 그 이미지가 엽서·가방·티셔츠 등에 복제되어 대중화되면서 사람들로 하여금 진품을 직접 본다는 것에 대한 열망을 증폭시켰다. 가짜가 많아질수록 진짜의 가치가 상승되는 현상인 것이다.

이와 유사한 효과를 AI 시대를 맞고 있는 우리도 어느새 겪고 있는 듯하다. AI 테크가 할 수 있는 역량에 대해 우리는 계속 경탄하고 있지만, 동시에 AI로 대체 불가한 일들과 그 가치를 찾고 있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아우라의 소멸을 예측한 벤야민의 분석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그의 예측대로 소수 특권층의 향유물이었던 미술작품이 그 신화의 옷을 벗고 대중에게도 널리 보여지게는 되었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손맛이 나고 체온이 느껴지는 원작의 아우라는 여전히 귀하게 여겨졌을 뿐 아니라 더욱 공고해졌던 것이다.

작가의 삶에서 우러나는 진정성과 독창성, 그리고 유일무이한 인간적 자취는 그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고 이는 AI라고 해서 결코 다르지 않을 것이다. 기술이 완벽에 가까워질수록 역설적으로 우리는 기계로는 결코 도달할 수 없는 고유 영역을 찾아 출구 전략을 짜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AI는 AI, 인간은 인간인 것이다. 그런 면에서 화가에게는 “아직도 그리세요?”가 아니라, “이제부터 그려야 합니다”라는 전제가 필요해질지도 모른다.

가끔 자동기계 응답과 채팅으로 넘어가는 방식이 이젠 너무 익숙해져서 상담원과의 연결에 도리어 놀란다. 그러면서 속으로 묻는다.

“사람이세요?”

전영백 홍익대 교수 미술사·시각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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