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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아이] ‘푸른 하늘’의 그림자

중앙일보

2026.01.29 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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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성 베이징 특파원
“비싸도 너무 비싸요! 아예 켜지도 못하겠다니까요!”

지난 20일 중국 허베이성 랑팡시 한 농촌 마을에서 만난 노인이 소리쳤다. 기자와 대화를 나누며 손으로는 주방에 설치된 가스 난방기를 가리켰다. 안방에선 어린 손녀가 낮잠을 자고 있었다. 집안에서도 두꺼운 점퍼 차림으로 생활한다는 그는 “낮에는 난방기를 틀 엄두조차 않는다”면서 “밤에 켜두더라도 동이 트자마자 곧바로 끈다”며 한숨 쉬었다. 곁에 있던 그의 부인은 기자를 향해 멋쩍은 듯 웃어 보였다.

100가구 남짓 사는 이 마을 입구에선 석탄금지구역(禁煤區)이라고 적힌 파란색 표지판이 외지인을 맞는다. 허베이성 당국은 2017년부터 석탄 연료 사용을 줄이는 정책을 폈다. 대기 환경을 보호한다는 이유에서다. 그 이후 집마다 노란색 가스관이 외벽에 달라붙었다. 투박하게 구멍을 낸 뒤 시멘트를 발라 마무리한 흔적도 보였다. 온 마을을 돌아봐도 배기관에선 온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고작 2~3곳에서만 뽀얀 연기가 흘러나왔다. 이날은 낮에도 기온이 영하 10도를 오갔다.

중국 허베이성 랑팡시의 한 농촌 마을 입구에 붙은 ‘석탄금지구역’ 표지판. 이도성 특파원
혹한에도 가스난방은 언감생심이다. 돈 때문이다. 익명으로 인터뷰에 응한 한 농민은 “겨우내 가스비로만 4000위안(약 82만원)을 넘게 내야 한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허베이성 농가의 연 소득은 400만원 정도다. 당국 정책 비판에 인색한 관영 매체들마저 비판에 나선 이유다. 한 매체는 “돈을 태워 난방하는 격”이라고 꼬집었다. 드론까지 띄워 단속하는 터라 예전처럼 석탄을 쓸 수도 없다.

불만은 중국 수도이자 ‘높은 분들’이 몰려 사는 베이징으로 향한다. 허베이는 베이징을 동서남북으로 둘러싸고 있다. 농가가 앞장선 ‘푸른 하늘’ 정책에 힘입어 베이징 공기는 관측 이래 가장 맑은 수준을 기록했다. 고생은 허베이가, 혜택은 베이징이 본다는 주장에 힘이 실린다. 도시와 농촌 간 소득 격차, 공공 서비스 차별 문제로까지 확산한다.

그러나 고작 며칠 사이 아이러니함을 짚어낸 관영 매체 기사는 연이어 사라지고 일부 지방 정부가 보조금 지급을 확대하기로 발표했다는 보도가 ‘허베이 난방’ 키워드를 뒤덮었다. 베이징 특파원으로선 익숙한 장면이다. 하지만 가리고 지운다고 사라지는 건 아니다. 비싸고 좋은 반창고를 붙인다고 근본적 치료가 될 순 없는 노릇이다.

비단 중국만의 문제일까. 희망 회로를 돌리는 한국 경제는 무엇을 가리고 있을까. 새파란 베이징을 하늘을 올려다보며 “멀리서 왔으니 식사하고 가라”던 노인의 입김 섞인 미소를 떠올린다.





이도성([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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