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평가만 부르짖다 내가 먼저 죽을 주식.’ ‘희망고문의 끝판왕.’ 개미 투자자들은 현대자동차를 오랫동안 이렇게 불러왔다. 실적과 전망에 상관없이 주가는 늘 박스권이었기 때문이다. 반전이 일어난 건 이달 초 미국 라스베이거스 CES 2026 무대에 차세대 전동형 휴머노이드 ‘아틀라스’가 등장했을 때였다.
“문화적 토양에서 사업 성장”
테이트모던 등 10년간 후원
최근 로봇 혁신과 무관치 않아
투자든 후원이든 길게 봐야
아틀라스가 네티즌 표현대로 “최소 3년 짬밥 직장인의 출근 모습”으로 인간적으로 걷다가 돌연 인간에게 불가능한 360도 회전 관절을 선보이자 사람들은 열광했다. CES 공식미디어 파트너인 C넷은 “가장 자연스러운 보행과 양산 모델에 가까운 완성도”를 언급하며 아틀라스를 ‘베스트 로봇’으로 선정했다. 곧 현대차 주가는 폭등하며 사상 처음으로 40만원 선을 넘겼다. (29일 종가 52만8000원) 시장이 현대차를 ‘자율주행 분야에서 고군분투하는 전통 자동차 제조사’에서 ‘로보틱스와 인공지능을 결합한 피지컬 AI 분야의 선두주자’로 재인식한 결과다.
2014년 시작된 공격적 미술 후원 필자가 현대차의 변화를 감지한 계기는 다소 특이하다. 산업부 기자가 아닌 문화부 기자로서 2014년부터 시작된 현대차의 공격적인 현대미술 후원 프로젝트들을 보며 ‘진부한 자동차 회사가 아니네?’라는 생각을 품기 시작했다. 특히 2021년 현대차가 독일 비트라 디자인 뮤지엄 협업 전시에서 당시에 막 인수한 보스턴 다이내믹스의 로봇 개 ‘스팟’과 초기 아틀라스를 선보였을 때, 그리고 2022년 아트선재센터 전시 ‘서울 웨더 스테이션’에 현대차 로보틱스랩이 참여해 스팟을 뛰놀게 하는 것을 보며 ‘이 회사는 그냥 자동차 제조사로 끝날 것 같지 않다’는 확신이 들었다.
특정 기업을 홍보하거나 주식 매수를 권하려는 것이 아니다. 개미 투자자들의 추격 매수에 의한 단기간 급등은 오히려 불안 요소라고 본다. 또한 피지컬 AI 진검 승부는 이제부터다. 현대차 아틀라스가 하드웨어 완성도에서는 세계 최고 수준임을 인정받았고 소프트웨어는 구글 딥마인드와의 협업으로 보완 중이지만, 라이벌인 테슬라의 휴머노이드 ‘옵티머스’는 자동차 수백만 대에서 수집한 자율주행 데이터로 인공지능을 빠르게 고도화하고 있다. 게다가 “노사 합의 없이 단 한 대의 로봇도 현장에 들어올 수 없다”는 노조와의 협의 및 AI와 인간의 공존에 대한 사회적 책임 등 여러 산적한 과제가 있다.
그럼에도 현대차의 사례를 주목하는 이유는 기업의 예술 후원이 그 기업의 철학과 정체성을 가늠하는 중요한 척도가 되기 때문이다. 다양한 후원으로 미술 생태계를 지탱해온 기업은 많다. 삼성그룹이 ‘이건희 컬렉션’ 기증으로 한국 문화사의 한 획을 긋기 전부터 다양한 문화사업을 펼쳐온 것이나, BMW가 1970년대부터 ‘아트 카’ 시리즈로 프리미엄 이미지를 구축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럭셔리 패션 그룹인 LVMH(루이비통모에헤네시)는 재단 미술관 및 아티스트 협업을 통해 예술을 제품에 이식하고, 구글은 ‘아트 앤 컬처’ 프로젝트로 인류 문명을 데이터화하고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후원이 장기적이며 기업의 본질적 성격과 일치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현대차의 미술 후원 프로그램에서 눈여겨볼 것은 장기 전략이다. 자체 미술관을 세우는 대신 국내의 국립현대미술관 및 영국 테이트모던, 미국 LA카운티미술관(LACMA) 등 세계적 거점 미술관들과 10년 장기 파트너십을 맺고 전시와 연구를 후원하는 길을 택했다. 2014년 당시 영국 BBC방송 미술 에디터였던 유명 저자 윌 곰퍼츠가 “10년 넘게 장기 계약으로 예술 후원을 하는 건 매우 드물고 리스크가 크다”며 “기대만큼 브랜드 이미지 상승효과를 보기 어려울 것”이라고 썼을 정도였다.
당시 현대차 관계자에게 그 우려를 전하자 이런 답이 돌아왔다. “좋은 자동차 모델 하나 개발하는 데 최소 5년이 걸리듯 우리는 장기 사이클로 움직인다. 우리의 목적은 우리의 아트 컬렉션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 향후 10년간의 세계 미술사를 새로 쓰는 것이다. 비즈니스 결정은 결국 그 시장의 문화적 토양 위에서 이루어지는데, 그 토양 자체에 영향을 미치고자 한다.”
현대차는 지난해 11월, 테이트 미술관과의 파트너십을 2036년까지 추가 연장했다. 브랜드 이미지 등에서 성과를 거뒀다는 방증일 터이다. 이렇게 해외 영토로 스며들어 가 그 지형을 바꾸는 전략이 보스턴 다이내믹스 인수를 감행한 것과 무관하지 않으리라고 본다.
현대미술은 인문학부터 공학까지 아우르는 다학제적 영역이다. 지난 10여년간 실험적인 현대미술 현장을 후원하며 축적한 안목은 현대차의 모빌리티와 로봇 디자인 철학에도 유연한 토양이 됐을 거라고 생각한다. 보스턴 다이내믹스의 잭 재코우스키 부사장이 아틀라스에 대해 “인간의 동작을 단순히 베끼지 않고, 그 장점을 취하되 때로는 인간 이상의 기능을 구현한다”고 밝힌 대목이 특히 인상적이다. 2000년대 이후 현대미술계의 화두인 ‘포스트휴머니즘’ 즉 인간 중심 사고에서 벗어나 AI나 로봇 같은 비인간과의 공존 및 결합을 추구하는 사고와 맞닿아 있다.
물론 장기적인 예술 후원이 계속 실적의 보증수표가 되는 것은 아니다. BMW는 전기차 중심으로 재편되는 시장에서 부침을 겪고 있고, 오랜 기간 디지털 아티스트 생태계를 지원해온 어도비 역시 생성형 AI의 거센 파고 속에서 고군분투 중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이러한 기업들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그들이 지닌 ‘철학의 맷집’ 때문이다. 위기 속에서도 브랜드가 중심을 잃지 않고 다시 일어서게 하는 회복탄력성은 바로 이러한 문화적 자산에서 비롯된다.
미술 투자도 뚝심 있어야 그래서 지인들이 미술 투자를 물어올 때마다 기자는 두 가지로 답한다. “미술사 공부를 할 시간이 없다면, 작품을 사기보다 미술을 제대로 장기 후원하는 기업의 주식을 사세요.” 그리고 덧붙인다. “작품을 사고 싶다면 정말 좋아하고 후원하고 싶은 작가의 것을 사세요. 작가 10명의 작품을 사면 그중 한두 작가의 작품만 가격이 오를 것입니다. 모두 오르지 않는다고 해도 애정을 가진 작품이기에 후회는 없을 것입니다.” 기업 투자든 미술 투자든 그 본질은 같다. 대상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와 애정, 그리고 자신의 가치 판단을 믿고 견디는 뚝심이다. 특히 미술 투자는 기업의 사이클보다 훨씬 긴 호흡으로 움직인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