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22일 발효된 ‘AI 기본법’(‘인공지능 발전과 신뢰 기반 조성 등에 관한 기본법’)에 대한 해외 언론의 반응을 보면, ‘EU AI Act’의 핵심 의무가 본격 적용되기 전에 한국이 발 빠르게 AI 규제와 진흥을 함께 다룬 법률을 발효했다는 긍정적 평가가 눈에 띈다. 한편 스타트업의 혁신 위축이 우려되며, 기본법에 AI 시스템의 에너지 소비와 효율, 전력망 계통 연계, 데이터센터 냉각수 등을 담지 않아 향후 법적·제도적 연계가 과제라는 지적도 있다.
AI 경쟁, 전력망 병목에 직면
빅테크, 24/7 CFE로 전환 동향
태양광 제약 요인 극복과 함께
전력·산업인프라 통합 접근해야
어느새 AI 경쟁은 연산(반도체·데이터·알고리즘·GPU)과 인재 경쟁을 거쳐 전력 인프라 병목에 직면해 있다. 글로벌 빅테크의 CEO들은 줄곧 “AI를 안정적으로 운영할 전력과 전력망, 에너지믹스, 무탄소 전원이 확보되지 않는다면 AI 경제의 확장과 상용화, 국가 전략도 설 자리가 없다”고 경고해 왔다. AI 모델의 학습과 추론, 냉각 시스템과 AI 서비스에 필요한 전력은 실로 엄청나다. 그렇다 보니 구글(알파벳)·메타·애플·아마존(AWS)·마이크로소프트는 전력 소비자에서 벗어나 전력의 구매자·개발자·시스템 플레이어로 변신하고 있다. 데이터센터의 전력 수요 급증, 전력 확보 불확실성, 전력 계통 연계 지연과 병목에 대응해야 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대형 변압기 부족 사태로 데이터센터 전력 인입과 계통 접속이 여러 해 지연되는 사례도 늘고 있다.
데이터센터는 365일 밤낮없이 24시간 정전·변동·지연 없는 고품질 전력을 공급받아야 한다. AI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빅테크는 RE100(재생에너지 100%) 기준 대신 24/7 CFE(24시간/일주일 Carbon Free Energy)로 전환하기 시작했다. RE100은 간헐성으로 인해 시간대 부족분을 전통 에너지로 메워야 하기 때문이다. 구글은 이미 2030년 24/7 CFE 사용 목표를 선언했고, 국제기구(유엔 24/7CFE Compact)가 관련 기술과 인증, 운영 기준을 개발하고 있어 국제표준이 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현재로선 RE100이 기업 지표에서 사실상 글로벌 표준이다. 10여 년 사이에 태양광은 세계 전력의 7%(2024년)로 올라섰고, 균등화발전원가(LCOE)도 90%나 가파르게 하락했다. 중국이 규모의 경제, 자본 투입, 산업 정책, 금융비용 하락 등의 공세로 초저가 공급망을 구축해 세계 태양광 밸류체인(폴리실리콘-잉곳(Ingot)-웨이퍼-셀-모듈)의 80∼95%를 장악한 결과다(2023 IEA). 한국 시장에서도 2020년대 중반 중국산 비중이 90% 내외로 상승했다는 분석이다.
태양광의 LCOE 값 자체는 저렴하다. 그러나 실제로는 간헐성을 보완하는 확정전원(Firm Power), 출력 변동성 보완, 송전망 구축, 주파수 제어, 에너지저장시스템(ESS)에 막대한 비용이 들어가서 훨씬 비싸진다. 에너지믹스에서 재생에너지 비중이 커질수록 주파수 유지와 전압 안정, 계통 보호·제어 체계, 송전망과 배전망의 병목을 기술적·제도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부담이 커진다(IEA). 발전시설의 ‘실제 발전량’과 ‘설비용량’은 전혀 별개의 개념이다. 실제 발전량을 ‘설비용량×시간’으로 나눈 값이 발전설비 이용률(Capacity Factor)인데, 태양광은 13∼17%고 원자력 발전소는 75∼85%로 큰 차이가 난다.
태양광 발전단지 입지에서는 대규모 토지 수요, 지형·일사량·송전망·수용성이 변수가 된다. 이런 제약 조건으로 한국의 태양광 산업은 만만치 않다. 우선 한국의 평균 일사량(4.0kWh/㎡/일)은 세계 중위권 정도에 들지만, 태양광 자원의 시간·공간 분산이 낮아 저장·계통 안정 비용 부담이 크다. 국토의 동서 폭이 300㎞ 정도로 짧아 하나의 기상권에 들어 태양광 출력 변동이 동시에 발생하기 때문이다. 리튬 기반 배터리는 시간 단위 단기 저장에는 적합하나 장주기 저장 기술은 아직 미흡하다.
국토의 동서 폭이 4500㎞가 넘는 미국은 아침에 뉴욕에서 발전을 시작하고 오후에는 캘리포니아가 이어받아 태양광 생산 시간대가 분산된다. 따라서 광역 계통과 시간대 분산 효과로 인해 저장장치, 예비력, 계통 투자 부담이 상대적으로 적다. 동서 폭이 5000㎞가 넘는 중국도 서부의 풍부한 태양·풍력 전력을 초고압 직류(HVDC) 송전망을 통해 동부로 송전하고 있다.
세계 최고 수준의 통신망과 반도체 산업 보유국인 한국이 AI 강국이 되려면 조속히 전력과 계통 인프라를 확충해야 한다. 재생에너지, 원자력(특히 SMR), 수소, 장주기 저장, HVDC(초고압 송전), 에너지 수요관리, 데이터센터 에너지 효율 개선 등 전방위 에너지 정책을 산업 정책과 연계해 데이터센터, 전력, 산업입지, 에너지 안보를 한데 엮는 통합적 접근이 필요하다. 원전 건설은 허가 단계부터 10년 이상 걸리고 험로가 예상되지만 미래를 위해 해야 할 일이다. SMR의 조기 건설도 서둘러야 한다. 단기적으로는 안전성을 전제조건으로 기존 원전의 운영 기간을 늘리는 것이 불가피하다. AI 강국이 전력 인프라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