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고유의 정형시 ‘시조’가 프랑스 정형시의 한 장르로 자리를 잡게 됐다. 프랑스시인협회 장-샤를 도르즈 회장은 지난 26일 협회 기관지인 ‘아고라’(L’agora·사진)를 통해 “프랑스에서의 공식적인 시조 규칙을 확정했다”고 공표했다. 시조 규칙이 해외 현지 시인들에게 통용되는 규칙으로 제정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프랑스시인협회는 프랑스에서 가장 오래된 시인단체로, 1901년 노벨문학상 초대 수상자인 쉴리 프뤼돔 등 3인의 프랑스 아카데미 회원을 중심으로 1902년 창설됐다. 도르즈 회장은 시조 규칙 제정 배경에 대해 “한국의 정형시 시조는 일본 하이쿠에 비해 시행이 더 길고 형식에도 유연성이 있어 시인들이 보다 높은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는 프랑스 파리 소재의 한불문화교류센터가 올해 한불 수교 140주년을 앞두고 프랑스시인협회와 함께 기획한 ‘한국 시조 프랑스 토착화 사업’의 일환으로 진행됐다. 조홍래 한불문화교류센터 이사장은 “2023년부터 시 교류를 진행했다. 일본 정형시 하이쿠가 프랑스 정형시의 한 장르로 자리잡은 사실을 알게 되어, 프랑스 시단에 우리의 시조를 알려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이에 지난해엔 『시조 100선』을 번역 출간해 프랑스 시단에 배포했고, 프랑스 한국학과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한국어 시조 콩쿠르도 개최했다.
이번에 제정된 ‘프랑스 시조 규칙’은 ‘3장, 6구, 12음보’의 규칙으로 쓴다는 한국 시조의 구성 형식을 따른다. 초장과 중장을 3자·4자·3자·4자로 쓰고, 종장은 3자·5자·4자·3자로 쓴다는 기본 형식은 물론, 음보에 따라 한두 자의 가감을 허용하는 변이형도 인정한다. 다만 기본 형식 43자를 기준으로 최소 42자, 최대 45자를 허용한다. 3장 전체를 ‘45자 내외’로만 허용하는 한국 시조보다 엄격한 규정이다.
프랑스에 현지화된 해외 정형시로는 말레이시아의 ‘팡툼’(pantoum)과 일본의 ‘하이쿠’(俳句)가 있다.
조홍래 이사장은 “프랑스 시조 창작을 고무하기 위해 프랑스 시인 단체들과의 협의를 통해 올해부터 진행하는 주요 시인협회 콩쿠르에 한국 유명 시인들의 이름을 새긴 상을 제정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프랑스시인협회 콩쿠르에는 한국 현대시조를 대표하는 이병기(1891~1968) 시인의 이름을 딴 ‘이병기 상, 시조’ 부문을, 프랑스어권 작가 시인협회 콩쿠르에는 세계전통시협회 창설자인 유성규(1930~2024) 시인의 이름을 딴 ‘유성규 상, 시조’ 부문을 신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