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정승우 기자] 프리미어리그가 유럽 무대에서 존재감을 과시했다. 레알 마드리드와 파리 생제르맹(PSG)이 플레이오프로 밀려난 가운데, 잉글랜드 클럽들은 대거 상위권을 장악하며 챔피언스리그 판도를 흔들었다.
영국 'BBC'는 29일(한국시간) "왜 잉글랜드 팀들이 유럽 최상위 무대에서 이토록 강세를 보이고 있는가"를 주제로 프리미어리그의 압도적인 성과를 분석했다. 이번 시즌 챔피언스리그 리그 페이즈에서 잉글랜드 팀 5개가 나란히 상위 8위 안에 들며 16강에 직행했다. 아스날이 1위, 리버풀이 3위, 토트넘이 4위, 첼시가 6위, 맨체스터 시티가 8위를 차지했다.
여기에 뉴캐슬 유나이티드까지 더해질 가능성도 남아 있다. 뉴캐슬은 리그 페이즈 12위로 플레이오프에 나섰고, PSG와의 1차전 원정에서 1-1로 비기며 유리한 고지를 점했다. 만약 뉴캐슬이 플레이오프를 통과하면, 챔피언스리그 역사상 처음으로 프리미어리그 6개 팀이 16강에 진출하는 장면이 연출된다.
토마스 프랭크 토트넘 감독은 "이건 지배적이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다. 프리미어리그가 세계 최고의 리그라는 말은 몇 년 전부터 나왔고, 이번 결과가 그걸 다시 증명했다"라고 평가했다.
BBC는 그 배경으로 가장 먼저 '자금력', 즉 돈을 꼽았다. 프리미어리그의 재정 규모는 타 리그를 압도한다. '딜로이트 풋볼 머니리그' 기준 상위 10개 구단 중 6개가 잉글랜드 클럽이며, 상위 30개 구단의 절반이 프리미어리그 소속이다. 막대한 중계권 수입을 바탕으로 지난 여름 이적시장에서는 프리미어리그 구단들의 총 지출이 30억 파운드를 넘겼다. 이는 분데스리가, 라리가, 리그1, 세리에A를 모두 합친 금액보다 많았다.
재정력은 곧 스쿼드 뎁스로 이어졌다. 아스날은 두터운 선수층을 앞세워 리그 페이즈 1위를 차지했고, 리그에서도 선두를 달리고 있다. 전 리버풀 수비수 스티븐 워녹은 BBC를 통해 "잉글랜드 클럽들이 지배적인 가장 큰 이유는 프리미어리그의 자금력이다. 여기에 리그 내부 경쟁이 극도로 치열해지면서 서로를 끌어올리는 구조가 만들어졌다"라고 설명했다.
전술적·신체적 특성도 영향을 미쳤다. 뉴캐슬 공격수 앤서니 고든은 "챔피언스리그에서는 팀들이 비교적 열려 있고, 축구 자체를 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반면 프리미어리그는 내가 경험한 적 없을 정도로 피지컬이 강하고, 전환이 빠르다"라고 말했다. 그는 "프리미어리그는 때로 농구 경기처럼 쉼 없이 뛰어야 한다. 세트피스와 경합, 순간 싸움이 승부를 가르는 경우가 많다"라며 잉글랜드 팀들이 유럽 무대에서 상대적으로 여유를 느낄 수 있는 배경을 짚었다.
다만 일정 운도 일부 작용했다는 분석도 있다. 시즌 초 '옵타Opta'가 분석한 챔피언스리그 일정 난이도에서 아스날은 세 번째로 쉬운 대진을 받았고, 토트넘 4위, 리버풀 7위, 첼시 8위로 평가됐다. 맨시티는 14위였으며, 뉴캐슬은 PSG를 만난 탓에 32위로 가장 험난한 일정 중 하나로 분류됐다.
기록 경신 가능성도 거론된다. 과거 챔피언스리그에서 한 나라가 4팀을 8강에 올린 적은 잉글랜드뿐이었다. 이번 시즌에는 최대 6팀까지도 가능하다. 다만 워녹은 "프리미어리그와 챔피언스리그를 병행하는 부담은 결국 발목을 잡을 수 있다. 매주 리그에서 극한의 경쟁을 치러야 하는 구조는 결코 쉽지 않다"라고 경고했다.
한편 잉글랜드를 제외한 나라들은 상대적으로 고전했다. 독일에서는 바이에른 뮌헨, 스페인에서는 바르셀로나, 포르투갈에서는 스포르팅만이 16강 직행에 성공했다. PSG와 레알 마드리드는 플레이오프로 밀려났다. 레알은 벤피카와의 난타전 끝에 수적 열세 속에서도 극적인 경기를 펼쳤지만, 결국 플레이오프를 피하지 못했다.
이탈리아의 유벤투스와 인터 밀란, 독일의 도르트문트, 스페인의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도 모두 플레이오프에 나선다. 특히 아틀레티코는 보되/글림트에 충격패를 당했다. 보되/글림트는 맨체스터 시티에 이어 아틀레티코까지 잡아내며 이번 대회의 최대 이변 팀으로 떠올랐고, 1996-1997시즌 로센보르그 이후 처음으로 챔피언스리그 리그(조별) 페이즈를 통과한 노르웨이 클럽이 됐다.
프리미어리그의 힘은 이미 숫자로 증명됐다. 이제 관건은 그 숫자가 어디까지 살아남느냐다. 유럽 무대의 중심이 다시 잉글랜드로 이동하고 있다.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