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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농단' 2심, 양승태 전 대법원장 1심 무죄 뒤집고 징역 6개월

중앙일보

2026.01.29 22:21 2026.01.30 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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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 당시 사법행정권을 남용해 ‘사법농단’ 혐의 등을 받는 양승태(78·사법연수원 2기) 전 대법원장이 항소심에서 징역형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1심에서 전부 무죄 판결이 난 47개 혐의 중 2개 혐의가 유죄로 뒤집힌 결과다. 전직 대법원장과 대법관에게 유죄가 선고된 것은 전례없는 일이다.

서울고법 형사14-1부(고법판사 박혜선·오영상·임종효)는 30일 오후 2시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 등 혐의로 기소된 양 전 대법원장에게 징역 6개월,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다. 법원행정처장 시절 직권남용 등 혐의 공범으로 함께 재판에 넘겨진 박병대(69·12기) 전 대법관은 1심 무죄에서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았다. 박 전 처장 후임이었던 고영한(71·11기) 전 대법관에게는 1심과 같은 무죄가 선고됐다.

검찰은 지난해 9월 결심공판에서 1심과 마찬가지로 양 전 대법원장에게 징역 7년, 박 전 대법관과 고 전 대법관에게 각각 징역 5년과 징역 4년을 구형해달라고 요청했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이 개인적인 이익을 취하려는 부정한 의도에서가 아니라 사법부의 위상을 제고하려는 과정에서 범행에 이르렀다고 해도 재판의 독립이 훼손되고 공정한 재판에 대한 의심과 불신이 초래됐다는 점에 변함이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피고인들이 사법부 내에서 차지하고 있던 지위와 역할, 그에 대해 일반 국민이 가졌던 기대와 신뢰, 피고인들의 의지로 범행을 충분히 저지할 수 있었던 점을 고려하면 죄책은 더 무겁다”고 밝혔다.

양 전 대법원장은 이날 오후 1시37분쯤 남색 정장에 파란 넥타이를 매고 입정했다. 양 전 대법원장은 공판 시작 전 잠시 재판정을 나갔다 오면서 방청석에 앉아있는 사람들과 활짝 웃으면서 악수를 하기도 했다. 시작 전 여유있는 모습을 보였던 양 전 대법원장은 재판부가 입정한 뒤 긴장한 듯 무표정을 지었다. 이후 눈을 감고 재판부 선고를 묵묵히 들으면서는 표정이 굳어갔다.
'사법농단' 의혹을 받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30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직권남용 권리 행사 방해 혐의 2심 선고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뉴스1

양 전 대법원장은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3~2017년 사법부 숙원 사업이었던 상고법원 도입 등을 목적으로 강제징용 손해배상 사건 재판 등에 부당하게 개입한 혐의 등으로 2019년 2월 기소됐다. 헌법재판소 파견 법관을 통해 헌재 내부 정보를 수집한 혐의, 사법행정이나 재판 결과에 비판적인 판사들을 ‘물의 야기 법관’으로 분류해 인사 불이익을 준 혐의, 법관 비위 은폐 혐의도 있다. 다만 세간의 관심을 끌었던 이들 사건에 대해서는 항소심에서도 무죄 판단이 유지되고, 대신에 대법원이 헌법재판소와 위상을 다투는 함의가 깔린 재판에 개입한 혐의만 유죄로 뒤집혔다.



“원심처럼 접근하면 재판 관여 권한 누구에게도 없어”


항소심 재판부는 원심의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직권남용죄)의 법리 구성 자체를 비판하고 재구성해 양 전 대법원장 등의 유죄를 도출했다. 형법 123조에 규정된 직권남용죄란 공무원이 ①직권을 ②남용하여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③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하거나 ④권리행사를 방해해야 한다.

원심은 재판사무를 ‘재판사무의 핵심 영역’‘재판 관련 행정사무’‘재판 관련 사법 지원’으로 세세하게 분류한 뒤 사법행정권자(양승태)에게는 ‘재판사무의 핵심 영역’에 관해선 직권이 존재하지 않아 직권남용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식의 논리구성을 취했다.

반면 항소심 재판부는 ‘직권남용’이란 공무원이 일반적 직무권한(직권)에 속하는 사항에 관해 그 권한을 위법·부당하게 행사하는 것이라고 규정했다. “재판에 제3자가 관여할 권한은 애당초 누구에게도 존재하지 않으므로 (원심과 같이 세부적으로 직권을 구분해 직권남용죄를 판단할 경우엔) 직권남용죄는 (법리적으로) 성립할 수 없게 된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면서 항소심 재판부는 형식적·외형적으로 사법행정사무 수행 관련 요청으로 보여도 실질적으론 재판에 개입하거나 영향을 미치기만하면 사법행정권 남용이라는 단순한 논리구조를 택했다.

재판부는 이를 통해 양 전 대법원장 등에게 ‘일반적 직무권한’이 존재하기 때문에 ①직권이 존재한다고 보고, 뒤이어 ②재판 개입을 통해 남용을 했다고 판단했다.

양 전 대법원장 등의 직권남용 과정에서 ③법관들이 의무없는 일을 하게 되거나 ④권리행사 방해 행위가 발생했다고도 인정했다. 재판부는 “재판 공정성을 인정받으려면 그 내용이 실질적으로 공정한 것으론 부족하고 공정한 외관을 갖추는 것 역시 마찬가지로 중요하다”며 “재판 개입으로 재판 결과가 영향받지 않았더라도 사건 관계인이나 일반인 입장에서는 재판이 사법행정권으로부터 독립해 공정히 이뤄졌는지 의심하고 불신을 초대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한정위헌 취지 위헌제청결정·통진당 소송 관여 유죄


재판부는 이런 법리적 전제 아래에서 양 전 대법원장과 박 전 대법관이 한정위헌 취지 위헌제청결정 사건 재판에 개입한 혐의를 유죄로 바꿨다.

한정위헌 취지 위헌제청결정 사건은 서울남부지법 판사가 헌법재판소에 사립학교 교직원 연금법에 관해 한정 위헌 취지의 위헌 제청을 하자, 대법원 소속 판사가 개입해 이를 취소하고 단순 위헌 취지 결정을 해 달라고 재판에 개입한 사건이다. 대법원은 법률 해석권이 사법부에 있다는 근거에서 헌법재판소가 법 조문은 그대로 둔 채 특정한 법해석의 경우에 제한적으로 위헌을 선언하는 한정위헌의 효력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그런데 양 대법원장 재직시절에 일선 법원이 헌법재판소의 한정위헌 권한을 인정하는 듯한 행동을 보이자 법원행정처가 개입한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양 전 대법원장이 사전 보고를 받은 점을 근거로 들어 공모가 인정된다고 했다.

통합진보당 행정소송에 관여한 혐의 역시 유죄를 선고했다. 통합진보당이 위헌정당으로 인정돼 해산된 이후 소속 국회의원의 의원직 상실 여부에 대한해 일선 법원이 의원직 상실 판단 권한은 헌법재판소에 있다고 판단을 하려고 했다. 그러자 판단권한이 대법원에 있다는 식으로 판결 내용을 변경하려한 데에 법원행정처가 관여했고, 이 과정을 양 전 대법원장이 묵시적으로나마 승인했다고 항소심 재판부는 인정했다.

강제징용 피해자 민사소송, 위안부 피해자 손해배상소송,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법외노조 소송, 국가정보원 댓글 사건 등 재판에 개입한 혐의나 다른 혐의에 대해서는 원심 무죄 판결이 유지됐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은 공모해 한정위헌 취지 결정 사건 등 재판에 개입해 법관의 정당한 재판권 행사를 방해했고, 박 전 처장은 법원행정처 심의관에게 재판 개입하는 내용의 보고서를 작성하게 했다”고 지적했다.

다만 “피고인들이 개인적 이익을 취하는 등 부정한 의도에서 이 사건 범행에 이른 것은 아니고, 수십 건의 공소사실로 기소돼 장기간 재판을 받았는데 대부분 무죄로 판단되고 유죄로 인정된 부분은 극히 일부”라며 “특히 수사 및 재판 과정에서 사회적 비난에 노출돼 적지 않은 불이익을 겪은 점을 고려했다”고 양형 사유를 설명했다.



양승태 측 “즉각 상고”

사법농단 사태로 재판에 넘겨진 총 14명의 전·현직 법관 중 하급심에서 일부라도 유죄가 선고된 사람은 3명뿐이었으나 5명으로 늘었다. 사법농단의 실무 책임자로 지목된 임종헌(67·16기) 전 법원행정처 차장은 항소심에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 이민걸(65·17기) 전 법원행정처 기조실장과 이규진(64·18기) 전 상임위원은 항소심에서 각각 벌금 1500만원과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양 전 대법원장 측은 재판을 마친 직후 “즉각 상고하겠다”고 밝혔다. 양 전 대법원장 변호인은 “오늘 선고된 판결은 직권남용죄에 대한 확립된 법리에 반하는 판단이고, 사실인정을 1심과 달리 판단하려면 절차법에 따라 심리를 해야 함에도 전혀 그러한 심리가 없었다”며 “대법원에서 당연히 무죄로 결론이 바뀔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김보름([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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