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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독일 제친 한국 증시, 혁신·성장으로 내실 다져야

중앙일보

2026.01.30 0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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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천피’ 돌파에 ‘삼천닥’ 기대…연기금 동원



1%대 저성장 고착화 땐 상승세 지속 어려워



규제 혁신·성장 이어져야 경제 선순환 가능


코스피 5000과 코스닥 1000이 동시에 달성되면서 한국 증시의 시가총액이 독일 증시를 추월, 세계 10위에 진입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코스피와 코스닥을 합한 한국 증시 시총은 지난 28일 3조2500억 달러로, 3조2200억 달러인 독일을 넘어섰다. 한국 시총이 세계적 제조업 강국으로 꼽히는 독일을 앞선 데에는 인공지능(AI) 주도의 반도체 수퍼사이클 영향이 컸다. 이런 흐름 속에 외국인 투자자들이 국내 증시에서 반도체 기업을 폭발적으로 매수하며 증시를 달구고 있다. 여기에 배당 확대, 자사주 소각 유도 등 증시 밸류업 정책이 잇따르자 개인투자자들까지 가세하며 사상 처음 코스피 5000, 코스닥 1000을 함께 돌파했다.

AI 기술경쟁 심화로 고대역폭메모리(HBM)는 물론 D램 수요까지 급증하면서 한국 반도체 산업이 전례 없는 호황을 맞고 있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가 증시 상승을 견인하고, 최근 바이오·이차전지로 매수세가 확산되자 이들 종목이 둥지를 튼 코스닥 지수를 3000까지 올리는 ‘삼천닥’도 거론된다. 이에 기획예산처는 29일 국민연금·고용보험 등 67개 정부 연기금 운용 기본방향에 코스닥 및 벤처 투자 확대 지침을 제시했다. 연기금이 운용 중인 여유자금 1400조원 가운데 현재 3.7% 수준인 코스닥 투자 규모를 5%까지 확대한다는 구상이다. 예·적금을 깨고 신용융자로 빚투에 나선 개인투자자도 늘면서 고객예탁금은 100조원을 넘어섰다. 증시 과열 우려가 그래서 나온다.

문제는 내실이다. 증시는 달아오르고 있지만, 상승 랠리를 이끄는 반도체의 ‘착시 효과’만 빼면 경제 체력은 한계를 드러낸다. 성장률은 지난해 간신히 1%를 기록했고, 그 중 0.9% 포인트는 반도체 수출에 의존했다. 반도체를 빼면 수출은 마이너스였고, 내수 침체는 심각하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한국은 올해 성장률도 1.9%에 그친다. 이 경우 4년 연속 미국보다 성장률이 낮아진다. 한·미 간 성장률 격차가 지속하면 원화 가치도 불안해질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오천피·삼천닥’은 언제든 신기루가 될 수 있다. 한국은 독일과 대만에서 교훈을 찾을 만하다. 독일은 중국 의존을 줄이지 못해 자동차 산업이 타격을 입었다. 탈원전 고집으로 전기요금이 급등해 산업 경쟁력을 약화한 점도 실책이었다. 반면 대만은 반도체를 국가 주력 산업으로 키우며 과감한 정책 지원으로 경제 체질을 강화했다. 그 결과 수년간 고성장을 이루며, 지난해 1인당 국내총생산(GDP)에서 22년 만에 한국을 앞질렀다. 시총 역시 세계 9위로 한국을 앞선다.

한국은 지금 증시 활황에 취해 있을 때가 아니다. 저성장 탈출에 실패하면 한국은 13년째 국민소득 3만 달러의 벽에 갇힌다. 영국·프랑스 등 인구 5000만 명 이상 선진국 6곳은 3만 달러에서 4만 달러로 오르는 데 평균 4년밖에 걸리지 않았다. 독일처럼 4만 달러에 진입해도 시장 다변화와 혁신이 주춤하면 경제 체력이 약화할 수 있다. 7% 안팎의 성장률을 기록 중인 대만은 올해 4만 달러 대열에 합류한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28일 외국기업 대표들을 만나 국내 투자를 촉구했다. 그러나 이들은 “한국이 역내 경제 허브로 도약하려면 세제·노동 개혁이 필요하다”며 규제 혁파를 강조했다. 노란봉투법으로 노사 분쟁이 늘고, 근로자추정제 도입으로 고용 부담이 커지며 한국은 기업하기 어렵다는 점을 호소한 것이다. 그제 국회는 91개 법안을 처리하면서도 반도체법 ‘주52시간 예외’는 끝내 외면했다. 달아오른 증시가 내실을 다지려면 기업 투자와 고용 환경이 함께 개선돼야 한다. 혁신과 성장을 위한 실용적 정책 뒷받침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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