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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진 '안'축하합니다"…요즘 직장인 사이서 퍼진 '新 포비아'

중앙일보

2026.01.30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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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진 기피, 직장가 신풍속도

“고생했다, 김 부장.” 지난해 말 화제를 모았던 JTBC 드라마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 속 명대사다. 대기업 김낙수 부장은 기대했던 임원 승진에 실패한 후 희망퇴직해 집으로 돌아온다. 그러자 김 부장의 아내는 이 한 마디로 그의 25년 직장인의 삶을 위로한다. 김 부장은 이후 비로소 삶의 의미를 새롭게 찾아 나서지만, 요즘 현실 속 많은 직장인은 김 부장 같은 중간관리직이 채 되기도 전에 직장 내에서 고생하는 것부터 기피하고 있다. 해외에서 직장가의 새로운 세태로 부각되었던 이른바 ‘의도적 언보싱(Conscious Unbossing, 승진을 기피하는 것)’이 한국으로 옮겨 붙어 휘몰아치고 있다.

# 국내 한 중견기업에서 일하는 윤성현(가명)씨는 지난해 회사 인사팀으로부터 승진 대상이라는 연락을 받았다. 그러나 윤씨는 승진으로 얻는 것보다 잃을 것이 많다고 생각해 인사팀에 “승진을 원치 않는데 방법이 없겠느냐”고 문의했다. 인사팀은 고심 끝에 윤씨와 협의해 최근 그의 인사평가 결과를 당초 예정했던 등급에서 한 단계 일부러 강등, 승진이 안 되게 조치했다. 회사 관계자는 “윤씨 같은 승진 기피 사례가 늘어 골칫거리”라고 토로했다.

# HD현대중공업 노조는 2024년에 이어 지난해 사측과의 임단협에서 승진 거부권 인정을 요구했다. 조합원 범위를 벗어나는 승진을 하게 될 경우 당사자에게 이를 거부할 권리를 달라는 것이다. 조선 업계에 따르면 HD현대중공업에서 생산직은 기감(차장급) 이상, 사무직은 책임매니저 이상으로 승진하면 노조 자동 탈퇴가 불가피하다. 업계 관계자는 “노조 규모를 지키면서 향후 임단협에서 계속 유리한 고지를 점하려는 의도”라면서도 “HD현대중공업 같은 대기업은 전체 조합원 수에 비해 승진 대상자 비중이 원래 낮다는 점을 고려하면, 승진 자체를 꺼리는 조합원 요구가 많아진 세태도 의미 있게 반영된 것”이라고 말했다.

유튜버 등 수익창출 경로 확대도 한몫
그래픽=정수경 기자
0.82%. 국내 100대 기업에 입사해 ‘직장인의 꽃’ 임원으로 승진할 확률이다(지난해 기준, 한국CXO연구소 집계). 반기보고서 등에 명시된 100대 기업 임원 수(7028명)를 전체 임직원 수(86만1076명)로 나눠 100을 곱한 결과다. 2011년 0.95%에 비해서도 좁아진 바늘구멍인데, 과거였다면 그래도 대부분이 치열한 경쟁 속에 꿈꿨을 이 임원 자리가 최근 들어서는 대표적 기피 대상으로 바뀌었다. 이뿐 아니라 임원이 되기 전에 맡게 되는 부장·차장 등 중간관리직도 기피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그래픽=정수경 기자
대학내일20대연구소는 지난해 전국 17개 시·도 19~36세 직장인 85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그 결과 직장에서 리더 역할을 맡지 않을 경우 “불안하지 않다”는 응답이 47.3%로 “불안하다”는 응답(22.1%)보다 2배 넘게 많았다. 직장 유형별로 리더 역할을 기피하는 이유도 다양했다. 대기업의 경우 “실제 업무량이 더 많아질 것 같아서”가 47.1%, 중견기업과 중소기업은 “팀·조직의 성과를 책임지는 게 부담돼서”가 각각 48.1%와 42.8%, 공기업은 “팀원의 성장을 책임지는 게 부담돼서”가 48.6%로 가장 많았다. 이들은 36.7%가 앞으로 중간관리직을 맡을 “의향이 있다”고 응답했다. “의향이 없다”고 한 32.5%와 별 차이가 나지 않았다.

그래픽=정수경 기자
이처럼 승진을 두려워하는 ‘리더 포비아’는 민간 기업 중 분위기가 자유로운 정보기술(IT) 업종에서도 급증하고 있다. 예컨대 카카오는 개발자 가운데 프로젝트 리더를 연공서열보다 본인 의사와 역할 위주로 정해 상대적으로 하급자가 프로젝트를 이끌고 상급자가 보조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런 유연한 조직문화 덕분에 회사의 급성장이 가능했다는 시각도 적잖았다. 하지만 근래 들어서는 젊은 개발자가 이를 기피하는 경우가 급증해 경영진 고민이 깊다는 후문이다.

저성과자도 정년이 보장되는 공공부문 역시 승진 기피 급증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감사원이 지난 19일 공개한 35개 공공기관 직원 5471명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의 57.1%는 “승진 기피 현상이 있다”고 했다. 간부가 아닌 직원 중 “승진 의사가 없다”는 응답이 70%를 넘은 기관은 한국전력공사 등 7곳에 달했다. 한전KPS는 2024년 초급간부 승진시험 경쟁률이 0.2대 1이었다. 승진할 자리는 10개인데 가려는 사람은 2명이라는 얘기다.

이 같은 세태 확산의 이유는 다각도로 해석된다. 설문조사 결과처럼 업무량과 실적에 대한 부담 가중으로 ‘워라밸(work-life balance, 업무와 개인 삶의 균형)’이 나빠지는 것에 대한 반감이 첫째다. 이면에선 과거 경제 고성장기와 달리 승진이 큰 폭의 임금 인상 등 실질적 이득으로 돌아오는 측면이 약해진 것도 크다. 많은 기업이 승진 때 임금 추가 인상을 약속하지만, 기본 인상률 자체가 높지 않으므로 조기 퇴직 위험 등 늘어난 변수에 비해 약한 보상이라는 인식이 강해진 것이다.

그래픽=정수경 기자
퇴근 후나 쉬는 날에 할 수 있는 배달 라이더와 유튜버 등 부업(副業) 경로가 다양해진 데다 국내·외 증시 호조 등으로 재테크를 통한 수익 창출 가능성이 커진 것도 이유 중 하나다. 시장 조사 업체 비즈니스리서치인사이트에 따르면 부업을 뜻하는 ‘긱(Gig) 이코노미’의 글로벌 시장 규모는 지난해 5822억 달러(약 839조원)에서 2034년 2조1784억 달러(약 3138조원)로 10년간 연평균 약 16% 성장할 전망이다. 이외에 강성 노조가 있는 기업의 경우 구성원이 노조의 보호를 받기 위해 전략적으로 승진을 기피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임원 등으로 승진하면 조합원 자격을 잃어서다.

일부 공기관 승진시험 경쟁률 0.2대 1
재계는 세태 변화를 반영한 인사제도 개편으로 어려움을 줄이는 데 나서고 있다. 두산그룹은 젊은 인력도 승진에 적극적일 수 있는 활기찬 조직문화를 만들자는 취지로 근속 연수와 무관하게 스스로 승진을 요청할 수 있는 제도를 2024년부터 운영 중이다. 두산그룹 관계자는 “동료와 상급자의 피드백 내용이 안 좋으면 승진 요청이 거절될 수도 있다”며 “직원 스스로 역량 개발에 힘쓸 동기부여가 되는 제도”라고 설명했다. LG이노텍·LIG넥스원 등도 비슷한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반면 현대차그룹과 SK그룹 일부 계열사는 직원이 희망하는 경우 승진을 미룰 수 있는 제도를 운영 중이다. 직원과 조직의 부담을 줄이는 게 중요하다는 취지에서다. 전이영 한국고용노동교육원 교수는 “직장인의 승진 기피는 경제 성장 정체기에 승진에 따른 보상이 약해지고 평생직장 개념도 사라지면서 두드러지고 있는 현상”이라며 “개인의 선택이라 존중은 필요하지만 기업의 생산성 저하를 심화시킬 수 있어 각 기업이 공정하면서도 합리적인 보상 체계 강화 등 대책 마련에 힘써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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