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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산 9만원, 가게는 망했다…그때 300만원 건네준 천사 정체

중앙일보

2026.01.30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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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천사' 기부금으로 가정 형편이 어려운 이웃을 위해 반찬을 만들고 있는 주민들. 사진 울산 남구
울산 남구 신정동에 사는 50대 A씨는 통장을 보는 일이 두려웠다. 잔고는 9만원. 코로나 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이후 운영하던 가게를 닫고 파산 신청까지 했다. 치아 통증이 있었지만, 치료비 부담에 병원 문턱을 넘지 못했다. 일자리 면접조차 쉽지 않아 생계와 건강이 함께 무너지는 악순환이 이어졌다. A씨가 다시 일어설 수 있었던 건 동네 복지 사업 '나눔천사'를 통한 이웃들의 도움 덕분이었다. 그는 이웃들이 건넨 300만원으로 치과 치료를 받았고, 일자리도 새로 찾았다. A씨는 "생활이 안정되면 동네 이웃을 돕는 기부에 꼭 참여하고 싶다"고 전했다.

도움받은 이웃이 다시 이웃을 돕는 울산 남구 '나눔천사' 사업이 10년을 맞았다. 남구가 2016년 시작한 이 사업은 기초생활수급자나 차상위계층에는 해당하지 않지만, 당장 도움이 필요한 복지 사각지대 이웃을 동네에서 발굴해 지원하자는 취지로 출발했다.




10년 누적 모금액 42억원

도움 받은 이웃이 다시 이웃을 돕는 울산 남구 '나눔천사' 사업이 10년을 맞았다. 사진 울산 남구
10년간의 성과는 눈에 띈다. 지난해 말 기준 누적 모금액은 42억원이다. 해마다 평균 4억원 안팎의 기부금이 모였다. 이 가운데 29억원 이상이 벌써 이웃을 위해 쓰였다. 남구청 측은 "전체 기부자 3096명 가운데 76%가 동네 주민이고, 전체 모금액의 54.8%(23억원)가 동네 가게 이름으로 나왔다"며 "이웃이 이웃을 돕는 풀뿌리 나눔 문화가 자리 잡았다"고 설명했다.

나눔천사가 내민 도움의 손길은 다양하다. 갑작스러운 사고로 생계가 막막해진 40대, 치료비 부담으로 치과 치료를 미뤄 온 50대, 어려운 가정에서 취업 등 홀로서기를 시작한 20대 청년, 거동이 불편해 외출조차 힘든 70대 노인의 인공관절 수술비까지 챙겼다. 최근에는 저장 강박(물건을 버리지 못하고 쌓아두는 증상)으로 어려움을 겪던 독거노인을 발굴해 청소와 방역을 돕기도 했다.



1004원 5계좌, 5020원씩 기부

저장강박(물건을 버리지 못하고 쌓아두는 증상)으로 어려움을 겪던 이웃 발굴해 청소와 방역을 돕기도 한다. 사진 울산 남구
이렇게 나눔천사가 꾸준히 이어질 수 있었던 배경에는 '크지 않은 기부'가 있다. 개인 기부자인 '천사구민'은 매달 1004원씩 5계좌, 총 5020원을 자동 이체한다. 동네 가게가 참여하는 '착한가게'는 매달 3만원 이상을 보탠다. 생일이나 결혼기념일에 맞춰 1만원을 기부하는 '착한출발', 주민 단체가 참여하는 '착한모임'(월 2만원)도 있다.

기부금은 다시 각자의 동네로 돌아간다. 남구는 14개 동별로 기부금을 나눠 해당 지역에서만 사용하도록 하고 있다. 이에 각 동에 꾸려진 지역사회보장협의체가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이웃을 발굴하고, 필요한 지원 내용을 논의한다. 기부금 관리는 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맡고 있다.



우수 기부자, 명예의 전당 운영

울산 나눔천사 캠페인 장면. 사진 울산 남구
남구는 올해부터 구청 홈페이지에 우수 기부자의 이름을 올리는 '명예의 전당'을 운영한다. 기부 물품을 활용한 '천사마켓' 등 주민들이 일상에서 나눔을 체감할 수 있는 시도도 이어간다. 주민이 동네에 필요한 복지 사업을 제안하고, 그 제안에 기부자로 참여하는 참여형 모금도 확대할 계획이다.

남구청 관계자는 "나눔천사 기부금은 주민들이 함께 만들어온 동네의 착한 약속"이라며 "복지 제도 밖에 놓인 이웃을 위해 꾸준히 사업을 이어가겠다"고 말했다.




김윤호([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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