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남원시가 전국적 명성을 가진 ‘남원 추어탕’의 정체성을 복원하고 지방 소멸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실험에 나섰다. 단순히 음식을 파는 단계를 넘어 원료인 ‘미꾸리’ 대량 생산 체계를 구축해 청년과 귀어인을 불러 모으겠단 전략이다.
남원시는 다음 달 6일까지 주생면 중동리 미꾸리 양식단지(4㏊) 부지에 1만5000여㎡ 규모로 조성 중인 ‘미꾸리 공유 양식 플랫폼’ 입주자를 모집한다고 30일 밝혔다. 이번 사업은 지자체가 양식 시설을 완비해 미꾸리 양식 창업 희망자에게 저렴하게 임대하는 ‘공유형’ 모델이다. 2017년 해양수산부 내수면 양식단지 조성 사업 공모 70억원, 행정안전부 지방소멸대응기금 56억원 등 총사업비 126억원이 투입된 대규모 프로젝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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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투자비 0원…연간 임대료 400만원
미꾸리 공유 양식장은 오는 4월 총 20동이 준공된다. 이 중 18동을 1인 1동(약 860㎡)씩 임대한다. 입주자가 5년간 운영 후 퇴거하는 방식이다. 개인이 비슷한 규모의 시설을 만들려면 최소 3억~4억원의 초기 자본이 필요하지만, 남원시 플랫폼에 입주하면 연간 400만원(잠정)의 임차료만 내고 운영할 수 있다. 이후 추어 식품 가공, 체험 관광 등 관내 창업을 원하는 입주자는 남원시 ‘청년 스마트 미꾸리 양식 창업 사관학교’에 추가로 지원할 수 있다.
특히 시는 지방소멸대응기금 취지에 맞게 전체 양식장 중 50%를 타 지역 거주자에게 배정할 방침이다. 45세 이하 청년에겐 가점을 준다. 입주자로 선정되면 남원시가 보유한 특허 기술을 전수받고, 시가 직접 운영하는 종자 생산시설을 통해 안정적으로 치어(어린 물고기)를 공급받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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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추어탕 95% 중국산 미꾸라지
남원시에 따르면 국내 추어탕 원료의 95%는 중국산 미꾸라지다. 연간 유통량 약 9000t 중 직수입 중국산이 8400t이고, 나머지 국내산도 중국산 치어를 들여와 국내에서 3개월 이상 키운 미꾸라지가 대부분이라고 한다. 가격은 중국산 직수입 미꾸라지가 ㎏당 7000~8000원, 중국산 치어를 국내에서 키운 미꾸라지는 1만2000~1만3000원, 남원 노지 양식 미꾸리는 1만7000~1만8000원 수준이다.
이에 남원시는 미꾸리에 주목했다. 생김새가 비슷한 미꾸리와 미꾸라지는 같은 ‘미꾸릿과’에 속하지만, 형태·서식지·수염 수 등이 다른 종이다. 뼈가 억세고 식감이 거친 미꾸라지에 비해 미꾸리는 뼈가 부드럽고 감칠맛이 뛰어나다고 한다. 과거 남원은 섬진강 상류 지역 특성상 미꾸리가 많이 나와 이를 원료로 추어탕을 끓였다는 기록도 있다는 게 학계의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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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꾸리 복원…출하 기간 2년→10개월
남원시는 2007년부터 미꾸리 복원에 매달렸다. 시 농업기술센터는 대형 수조(지름 5.5m·높이 1m) 8개를 갖춘 미꾸리 종자 생산시설을 통해 연간 200만~400만 마리 치어를 생산·공급하고 있다. 공유 양식 플랫폼이 본격 가동되면 최대 1500만 마리가 필요할 것으로 보고, 기존 시설 외에 주생면 플랫폼 인근에 추가 종자 생산시설을 조성했다.
이 사업을 20년째 이끌고 있는 정의균 시 농업기술센터 내수면산업팀장은 “관내 하천에서 수집한 미꾸리를 인공 부화하거나 자연 수정을 통해 치어를 생산한다”며 “국립수산과학원 바이오플락(Biofloc) 기술을 개량해 미꾸리 실내 양식 기술을 독자적으로 개발, 2021년 특허 등록까지 마쳤다”고 했다. 바이오플락은 미생물을 활용해 양식장의 배설물·사료 찌꺼기 등 오염물을 분해하고, 그 미생물을 다시 양식 생물 먹이로 이용하는 친환경 기술이다. 노지(지붕 따위로 가리지 않은 땅) 양식에서 2년 이상 걸리던 출하 기간을 10개월 정도로 단축한 것은 물론, 고밀도 대량 생산 길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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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 지역과 차별화된 내수면 산업 모델”
현재 남원 지역 추어탕 업소는 전문점 약 30곳으로 메뉴 취급점까지 포함하면 50곳 안팎이다. 전국적으로 ‘남원 추어탕’ 간판을 단 업소는 약 700곳으로 추산된다. 남원 지역 추어탕집 역시 대부분 국내산 미꾸라지를 사용하고 있으며, 미꾸리 공급량은 극히 제한적이라고 한다.
남원시는 이번 플랫폼 사업을 통해 남원산 미꾸리 공급량을 점진적으로 늘릴 계획이다. 이와 함께 공유 양식 플랫폼에서 키운 미꾸리는 추어탕 업소·가공 공장과 계약 생산 방식으로 공급해 가격을 낮추고, 장기적으로 중국산 미꾸라지 중심 시장 판도를 바꾸겠다는 구상이다.
앞서 남원시는 20~30대 젊은 층을 겨냥한 추어 식품 통합 브랜드인 ‘미꾸야’를 출시해 한입 먹거리(간단히 먹기 좋은 음식) 4종과 신제품 8종을 개발하기도 했다. 유수경 시 농업기술센터 현장지원과장은 “미꾸리 공유 양식은 단순한 수산 정책이 아니라 남원 추어탕의 원형을 복원하고 청년·귀어인 창업과 인구 유입을 함께 겨냥한 사업”이라며 “타 지역과 차별화된 내수면 산업 모델로 키워 남원을 세계적인 K푸드 메카로 만들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