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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 스타들 LIV 탈출 러시는 ‘사이공 함락’의 전조인가

중앙일보

2026.01.30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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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트릭 리드는 지난 25일 DP월드투어 두바이 데저트 클래식에서 우승하며 녹슬지 않은 실력을 과시했다. EPA=연합뉴스
"1975년 사이공 함락 당시, 마지막 탈출 비행기에 매달리던 긴박한 풍경이 떠오른다."
LIV 골프와 PGA 투어의 치열한 전쟁을 취재한 《LIV and Let Die》의 저자 앨런 쉽넉 기자는 브룩스 켑카와 패트릭 리드 등이 이탈한 LIV의 상황을 이렇게 묘사했다. 골프계의 판도를 흔들었던 LIV 골프가 창설 이래 최대의 존립 위기에 직면했다는 진단이다. 단순한 선수 이동을 넘어 시스템 전체가 흔들리는 징후가 느껴지는 가운데, 쉽넉은 현장을 관통하는 서늘한 분위기를 "시신을 앞에 두고 차를 마시는 장례식"에 비유하기도 했다.

▶‘캡틴 아메리카’ 패트릭 리드의 투항
‘메이저 사냥꾼’ 브룩스 켑카에 이어 패트릭 리드가 던진 PGA 투어 복귀 선언은 LIV 내부 분위기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혔다. ‘캡틴 아메리카’로 불리는 리드는 실력 못지않게 화제성과 강력한 안티 팬덤을 동시에 거느린 흥행 카드다. 쉽넉은 "리드는 찬사든 야유든 시청률을 만들어내는 인물"이라며, "그의 이탈은 LIV에는 핵심 ‘티켓 파워’의 상실을, PGA 투어에는 강력한 '흥행 기폭제'를 의미한다"고 분석했다.
리드는 최근 "나는 뼛속까지 PGA 투어 선수이며, 내 경력의 시작점인 그곳이 그리웠다"는 호감 발언을 쏟아내며 복귀 의지를 다졌다. 비록 이번 이탈은 계약 연장 조건에 대한 이견 때문일지라도, 전문가들은 이를 LIV의 위상 하락에 따른 구조적 문제로 보고 있다. 일부 선수들이 LIV가 난파할 것을 예상하고 배에서 뛰어내린다는 것이다.

▶ 주력 선수 3분의 1의 회군
50대 중반의 필 미켈슨을 제외하고, LIV가 초기에 막대한 자본으로 영입한 '6인의 주력 선수(더스틴 존슨, 브룩스 켑카, 패트릭 리드, 캐머런 스미스, 브라이슨 디섐보, 존 람)' 중 33%가 PGA 투어로 복귀했거나 복귀 절차를 밟고 있다.
이러한 반전은 PGA 투어의 새로운 CEO 브라이언 롤랩의 과감한 작전이 적중했음을 시사한다. 롤랩이 취임 후 도입한 '복귀 멤버 프로그램'은 LIV 선수들의 심리적 지지선을 무너뜨리는 역할을 했다. 켑카가 이를 통해 복귀했고, 리드는 이 프로그램의 수혜조차 입지 못해 1년의 자격 정지 기간을 감수해야 함에도 전향을 택했다. ‘아이언헤즈’의 캡틴이었던 케빈 나 역시 조건 없는 복귀를 선택했다. 쉽넉은 이를 두고 "롤랩이 LIV의 목을 전략적으로 짓누르며 완벽한 판정승을 거두고 있다"고 평가했다.

브룩스 켑카가 PGA 투어 복귀 경기인 파머스 인슈어런스 오픈 대회를 앞두고 미디어센터에서 이야기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AI 혁명과 유가: 에너지 패권이 바꾼 골프 지형도
LIV의 위기 뒤에는 경제적 지각변동이 자리 잡고 있다. 전 세계가 AI 혁명에 따른 ‘전력 확보’를 국가적 과제로 삼은 시대, 전통 자원인 유가는 배럴당 60달러대까지 하락하며 사우디아라비아 국부펀드(PIF)의 자금줄을 압박하고 있다. 오일 머니 시대에는 골프 리그 투자에 부담이 없었으나 지금은 야심작인 ‘네옴 시티’ 프로젝트조차 예산 문제로 축소되는 상황이다.

▶ 마지막 분수령: 디섐보의 '10억 달러' 베팅과 LIV의 운명
시선은 LIV의 최고 스타 브라이슨 디섐보에게 쏠려 있다. 2026년 계약 만료를 앞둔 그는 최근 재계약 조건으로 5억 달러에서 최대 10억 달러(약 1조 3400억 원)에 달하는 천문학적인 금액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는 이를 ‘LIV의 생사를 가를 마지막 시험대’로 보고 있다. 일부 스타를 잃은 사우디 PIF가 디섐보의 무리한 요구를 수용할 것인지가 골프계 권력 지형의 마지막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만약 디섐보마저 탈출 대열에 합류한다면, LIV라는 거대한 실험은 동력을 잃고 사실상 마침표를 찍게 될 가능성이 높다. 리드의 이탈을 ‘사이공 함락’에 비유하는 것이 지금은 과할지 몰라도, 디섐보까지 떠난다면 그 비유는 현실이 되고 LIV는 결국 주류에서 밀려난 ‘마이너 리그’로 전락하게 될 것이다.
성호준 골프전문기자

성호준([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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