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만요”
“좀 지나갈게요!”
지난 28일 오후 서울 종로구 동대문종합시장 5층 액세서리 상가. 통로에 사람이 가득했고, 곳곳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매장 마감 시간인 오후 6시가 다가올수록 사람들의 손과 발은 더 바빠졌다. 원하는 볼펜 액세서리를 하나라도 더 장바구니에 담기 위해서였다. 잠시 후 한 점주가 “영업 마감합니다. 담은 것까지만 계산대로!”라고 외치자 바구니 가득 액세서리를 담은 손님들이 계산대로 몰려들었다.
최근 소셜미디어(SNS)를 중심으로 불고 있는 ‘볼꾸(볼펜 꾸미기) 열풍’이 빚어낸 풍경이다. 볼꾸는 기본 볼펜 몸통에 구슬·캐릭터·이니셜 같은 파츠(parts)롤 붙이거나 각종 장식을 끼워 자신만의 개성 있는 모양을 가진 볼펜으로 바꾸는 것을 말한다. 이날 시장에서 만난 대학생 장모(20)씨는 “여기 오면 직접 여러 파츠를 바꿔 붙이며 꾸미는 재미가 있어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벌써 30분째 구경 중”이라고 말했다.
최근엔 많은 사람들이 몰리고, 매대 앞에 오래 서서 구경하거나 더 마음에 드는 조합을 찾기 위해 여러 가게를 옮겨다니는 손님들도 많다 보니 시장 측에서 곳곳에 안전요원을 배치하기도 했다. 이날도 손님들이 한순간 몰려 질서가 흐트러질 때마다 안전요원이 “안쪽으로 들어가 달라”고 소리치며 인파 관리에 나섰다. 그만큼 많은 ‘볼꾸족’들이 시장을 찾고 있는 것이다.
볼꾸 유행의 배경엔 ‘가성비’가 있다. 고물가 시대에 비교적 적은 비용으로 할 수 있는 접근성이 낮은 취미 생활 중 하나라 젊은 층을 중심으로 특히 인기를 끌고 있다는 것이다. 볼펜과 파츠 가격은 보통 개당 500~1000원 선이다. 약 3000원 정도만 쓰면 누구나 취향에 맞게 볼펜을 꾸밀 수 있다. 퇴근길에 동대문을 찾은 직장인 최미경(37)씨는 “장바구니에 액세서리 담아서 볼펜 만드는 게 나만의 힐링”이라며 “가게마다 파는 파츠가 다 달라 새로운 걸 발굴하는 재미도 있다”고 말했다.
이영애 인천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청년세대의 맞춤화를 선호하는 성향과 가성비에 대한 욕구 등이 맞물린 현상으로 보인다”면서 “예쁘게 꾸민 볼펜도 중요하지만, 시장을 찾아 직접 재료를 고르고 친구들과 경험을 나누는 과정이 흥미로워서 인기를 끄는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한편 한동안 큰 침체를 맞았던 시장 상권도 볼꾸를 즐기는 손님들 덕분에 활기를 되찾고 있다고 한다. 동대문패션타운 관광특구협의회에 따르면 동대문종합시장 인근 의류상가의 공실률은 2024년 기준 86%에 달할 정도였다. 하지만 볼꾸 유행 덕에 액세서리 상가나 문구·완구 상가로 젊은 층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고, 또한 SNS를 보고 볼꾸 유행에 동참하는 외국인 관광객들의 방문까지 늘어났다. 시장에서 부자재를 판매하는 배씨는 “30년 넘게 장사하면서 이렇게 손님이 많은 건 처음 본다”면서 “외국인 사이에서도 입소문이 난 것 같다. 유행이 한동안 지속될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