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일은 언제나 갑작스럽다. 지난 여름 불거진 ‘시진핑 실각설’도 그렇지만 최근 그 실각설을 낳은 장본인 장유샤 낙마도 그렇다. 지난해 10월 4중전회(중국공산당 20기 중앙위원회 4차 전체회의) 이후 시·장 두 사람 간 형성된 ‘공포의 균형’은 결국 3개월을 넘기지 못했다. 군권을 틀어쥐었다는 장은 어떻게 갑자기 몰락했나, 또 장유샤 숙청은 중국의 앞날에 어떤 파장을 낳을까 그 궁금증에 대한 답 찾기에 나선다.
먼저 이번 사태를 이해하기 위해선 집안 대대로 돈독했던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장유샤 중앙군사위 부주석 사이가 어떻게 틀어지게 됐는가를 아는 게 중요하다. 많은 추측이 난무한다. 장이 미국에 핵무기 정보를 유출했다, 거액의 뇌물을 받았다, 시진핑의 대만 무력침공 주장에 반대했다 등. 모두 정답은 아닌 듯싶다. 의외로 단순하지만 심각한 잘못을 장이 저지른 것으로 보인다.
물러나야 할 때 물러나지 않았다. 2022년 10월 20차 당대회 때 시진핑은 총서기 3연임에 성공했다. 당시 시 주석 나이 69세. 과거 중국 지도부엔 ‘칠상팔하(七上八下, 67세는 정치국 상무위원이 될 수 있지만 68세는 은퇴한다)’라는 잠규칙이 있었다. 그러나 시 주석은 능력이 있으면 올리고 능력이 없으면 내린다는 능상능하(能上能下) 잣대를 도입해 이 연령 잠규칙을 무력화시켰다.
한데 이는 시 주석과 시 주석이 용인하는 사람에게만 허용되는 것이다. 장유샤는 이를 잘못 읽었다. 장은 당시 72세. 시 주석은 그런 장의 퇴진을 바랐지만 장은 거부했다. 이게 문제의 씨앗이었다. 게다가 시 주석 자신은 왜 은퇴하지 않는지 반문까지 했다고 한다. 아버지에 이어 자신도 상장(上將)으로 부자가 상장인 홍이대(紅二代) 가문에 베트남전 영웅 출신의 사실상 군 최고 실력자란 지위가 장의 판단을 흐리게 한 듯하다.
장유샤 체포, 회의 참석 틈타 전격 집행설
해를 넘긴 2023년 여름 장은 측근 리상푸 국방부장이 부패 혐의로 체포되며 위기감을 느낀다. 리는 장비발전부 부장 시절 잘못이 적발됐는데 리의 그 자리 전임이 바로 장이었기 때문이다. 전전긍긍하던 장은 2024년 여름 시 주석 건강이 잠시 나빠진 틈을 타 반격에 나선다. 장 파벌에 사정의 칼날을 들이대던 먀오화 중앙군사위 정치공작부 주임을 역시 부패 혐의로 엮는데 성공한 것이다.
이게 가능했던 건 시 주석의 장기 집권에 불만이던 일부 원로와 홍이대, 공청단 파벌 등의 지지가 있었기 때문으로 알려진다. 장은 여세를 몰아 2025년 봄엔 중국군 서열 3위로 먀오화와 같은 푸젠방(福建幇) 출신의 군사위 부주석 허웨이둥마저 쳐낸다. 이후 적어도 군에선 장이 시 주석보다 더 힘이 세다는 말이 나온다. 여기에 국내외에서 시진핑 퇴진을 바라는 사람들이 살을 보탰다.
조만간 당대회가 열리면 시진핑이 은퇴 수순을 밟을 것이라 주장했다. 지난해 6월 말에서 7월 초 시진핑 실각설이 불거지게 된 배경이다. 그러나 시 주석은 살아남았다. 일부 원로가 당의 안정을 위해선 시진핑 중도 퇴진은 불가하며 은퇴는 다음 당대회가 열리는 2027년 가을에 이뤄지는 게 맞다는 주장을 폈다고 한다. 후진타오 전 국가주석이 그런 말을 한 대표적 인물로 알려진다.
이는 시 주석에 기회였다. 변곡점은 지난해 가을 4중전회로 보인다. 당시 시 주석은 큰 수모를 겪었다. 4중전회 개최 3일전 먀오화 등 시 주석의 측근 9명이 무더기로 당적을 박탈당했다. 장유샤의 서북 무기장비 파벌이 허웨이둥의 동남 정치공작파를 박살냈다는 평가가 많았다. 시 주석은 사실상 권력은 빼앗긴 채 자리만 지키고 있다는 양권불양위(讓權不讓位) 상태라는 말이 돌았다.
그러나 시 주석은 4중전회에서 장성민 중앙군사위 기율위원회 서기를 장유샤 다음의 중앙군사위 부주석으로 올리는 데 성공했다. 중국에서 부패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없다. 관건은 부패를 단속하는 기율위원회를 누가 잡느냐 문제인데 이를 시 주석이 차지한 것이다. 시 주석은 측근 9명을 희생하는 대신 잘 드는 칼 한 명을 확보했다. 왼팔을 내주고 오른팔을 지켰다고 해야 하나. 그 결과가 장유샤 몰락이다.
발표는 24일 있었지만 체포는 16~20일 사이라는 추측이 분분하다. 장은 경호가 삼엄한 사무실이나 집에서 붙들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장의 체포는 청의 강희제가 권신 아오바이(鰲拜)를 붙잡을 때와 비슷하다고 한다. 경호원과 무기 소지가 불가한 궁으로 불러들인 뒤 태감을 동원했다고 하는데 장유샤 체포 또한 회의 참석을 계기로 전격적으로 이뤄졌다는 소문이다.
고위 관료 숙청의 경우 보통은 해당 인물의 신병을 먼저 확보하고 이어 측근 세력마저 진압한 뒤 어느 정도 국면이 안정되면 그 사실을 공표한다. 여론 예열 시간을 갖는 것이다. 허웨이둥도 지난해 3월 중순 모습이 사라졌지만 공식 숙청 소식은 10월에야 있었다. 한데 이번엔 소문이 돈 지 4일만에 발표했다. 장유샤 체포를 서둘러 기정사실화한 것이다.
밤이 길면 꿈이 많다(夜長夢多). 자칫 장유샤 수하 부대가 정보가 충분치 않은 상황에서 행여 장 구하기에 나설까 우려한 조치로 여겨진다. 장유샤 숙청이 1월에 이뤄진 건 지난해 7월 신장 당서기에서 물러난 마싱루이 사건이 시 주석에 커다란 위기 의식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마싱루이 부인은 시 주석 부인 펑리위안 여사와 절친으로 알려진다.
시 주석으로선 3월의 양회(兩會, 전국인민대표대회와 정치협상회의)나 5중전회 등을 앞두고 상황을 하루빨리 정리할 필요가 있었겠다. 장유샤 숙청을 전하는 중국 당국의 언사는 매섭다. 일곱 가지의 죄상을 열거하는 데 가장 중요한 건 군사위원회 주석책임제 파괴 부분이다. 군사위 주석책임제는 군의 최고 지휘권을 시진핑 주석이 책임지고 행사한다는 것으로 2014년 확립돼 2017년 19차 당대회 때 당장에까지 삽입됐다.
권력은 총구에서 나오는 법인데 이 총구를 시 주석이 틀어쥐겠다는 것이다. 장은 여기에도 이의를 제기했다. 2024년 말 해방군보에 ‘집단 지도’를 강조하는 글을 싣게 한 것이다. 그래서인가. 장을 꾸짖는 언사가 매우 강경하다. 장이 시진핑의 군사위 주석책임제를 ‘파괴했다’가 정도가 아니라 ‘짓밟아(踐踏) 파괴했다’는 격렬한 표현을 썼다. 장에 대한 시 주석의 분노가 읽히는 듯하다.
군 지도부 붕괴, 대만 침공 당분간 힘들 듯 장유샤 숙청의 파장은 크다. 우선 중국군 지도부의 대붕괴다. 2022년 출범한 중앙군사위원회 7명 중 서열 1위 시 주석과 7위 장성민 두 명만 남게 됐다. 훈련과 작전을 담당하던 5명은 모두 숙청됐다. 또 최고 계급인 상장의 경우 보통 30여 명이 있는데 현재 4명 만 남았다. 육군 상장은 하나도 없다. 장성민은 로켓군 출신, 둥쥔 국방부장은 해군 출신, 한성옌 중부전구 사령관과 양즈빈 동부전구 사령관은 공군 출신이다.
앞으로 이어질 장유샤와 류전리 측근을 솎아내는 정풍 운동을 통해 수백, 수천의 고위 장교가 낙마할 운명이다. 중국군 지휘부 전멸이란 표현이 이상하지 않다. 자연히 짧은 시간 안에 대만을 침공할 개연성은 낮다. 일각에선 충성심을 드러내기 위한 무모한 공격을 점치기도 하나 글쎄다. 최근 중국은 장유샤 숙청에 따른 국내외 여론 관리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내부적으론 ‘반부패 투쟁의 또다른 성과’로 선전한다. 대외적으론 중-러 국방부장 통화 등 이해를 구하는 모양새다. 장유샤 숙청을 보며 많은 이들이 린뱌오 사건을 떠올린다. 마오의 가장 친밀한 전우(戰友)로 불렸던 린뱌오는 1971년 마오와의 갈등 끝에 비행기를 타고 도망치다 추락사했다. 마오는 퇴진 압력을 덜었지만 고립됐다. 덕성(德性)이 그것밖에 안 되냐는 소리에 위축되고 우울해졌다.
장유샤는 시 주석의 2015년 군 개혁을 앞장서 돕는 등 군권 확립에 큰 역할을 했다. 장의 몰락으로 시 주석은 장기 집권의 큰 걸림돌을 제거했다. 그러나 장의 빈자리 또한 크다. 많은 원로가 장에게 접근한 건 그가 눈치보지 않고 시 주석에 말을 전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런 장의 몰락은 시 주석을 더 외딴 정보의 섬으로 몰고갈 위험이 크다.
중국은 이제 시진핑 한 사람의 눈치만 보는 시대를 맞았다. 전문가는 입을 닫고 예스맨과 충성파의 목소리만 득세할 전망이다. 겉으론 일사불란해 보여도 속으론 복지부동 만연이다. 중국의 통치 위험 또한 그만큼 커졌다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