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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의 적은 내 편…이란 학살 눈감은 美좌파 민낯

중앙일보

2026.01.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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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윤호의 아메리칸 오딧세이] 미국인들이 보는 ‘이란 사태’

지난 18일 미국 LA의 다운타운에서 이란계 주민들이 하메이니 정권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란 국기와 함께 현재 이란 정부가 불구대천의 원수로 여기는 이스라엘 국기가 등장했다. [로이터]
편을 갈라 싸우는 순간 맨 먼저 거추장스러워지는 게 윤리의식이다. 요즘 미국 좌파 진영에서 두드러진다. ‘트럼프의 적은 우리 편’이라는 단세포적 도식에 빠져 이란의 반정부 시위에 침묵한다. 트럼프 정부와 미 제국주의에 맞서 싸우느라 고상한 윤리 따위는 버리고 가야 할 짐이 됐다.

좌파는 약자와 강자, 피해자와 가해자 구도로 선악을 단순화하곤 한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전쟁을 보는 시각이 전형적이다. 그런데 이란 사태는 잘 들어맞지 않는다. 좌파는 이란을 미 제국주의의 피해자로 분류하지만, 자국민을 살육하는 정권을 약자로 포장하긴 어렵다. 그래서 침묵과 무관심으로 대응하고 있다.

헤이그 국제형사재판소 검사 출신인 페이암 아크하반(60)은 지난 23일 유엔 인권이사회에서 이란의 시위 진압을 ‘말살(extermination)’로 규정했다. 그는 1995년 7월 몇 주에 걸친 세르비아군의 보스니아 무슬림 학살에 비해 이란의 학살은 절반 정도의 시간에 두 배 규모로 일어났다고 고발했다. 이 증언은 진보 성향 주류매체들의 외면 속에 인권이사회 홈페이지에 머물렀다.

민주당을 비롯한 진보 진영 정치인들은 대부분 침묵을 택하고 있다. 좌파가 트럼프 못지않게 혐오하는 테드 크루즈 공화당 상원의원은 이란을 자주 비난하는데, 좌파 중의 좌파 버니 샌더스는 조용하다. 여론을 의식해 뒤늦게 반정부 시위를 지지하는 사례가 드물게 있긴 하다. 민주당 대선 주자 개빈 뉴섬 캘리포니아 주지사는 지난 11일에서야 시위대 지지를 표명했다. 이란 당국의 유혈 진압으로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한 뒤였다.

뉴욕시장 조란 맘다니를 배출한 민주사회주의연맹(DSA)은 노골적으로 이란 정권 편을 든다. DSA 간부 미라 우드는 SNS에 ‘이란 군경이 미국과 이스라엘의 방해 공작으로부터 주권을 지키고 있다’고 썼다. 자국민을 학살하는 정권을 옳다고 하니, 도덕적으로 실명했다. 또 급진파는 팔레스타인과 이란에 대한 지지가 모순되지 않는다며 ‘민중적 연대’라는 말을 쓰기도 한다. 계속되는 정권의 범죄를 어떻게 막느냐가 시급한 상황에서 공허한 말장난 아닌가.

팔레스타인을 지지하며 캠퍼스에서 농성하던 학생들도 다를 바 없다. 이란 정권의 학살엔 눈을 가린다. 만일 거리에 널린 검은 시체자루 사진이 테헤란이 아닌 가자에서 나왔다면 가만있었을까.

‘케데헌’의 수상으로 한국을 들뜨게 한 올해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도 같은 기류가 이어졌다. 진보 호소인과 개념 연예인들이 이민세관단속국(ICE)의 총격에 항의하는 뜻에서 ‘ICE를 몰아내라(ICE OUT)’는 핀을 착용했다. 지난해 아카데미상과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선 팔레스타인을 지지한 영화인이 적잖았다. 시키지 않아도 옳은 말 보태기 좋아하던 그들이 이란 학살엔 입을 닫았다. 테헤란에서 머리에 총을 맞고 사망한 여대생 루비나 아미니안(23)의 뉴스가 시상식 전날 보도됐지만, 다들 모르는 듯했다.

뉴섬, 지난 11일에서야 시위대 지지 표명
좌파가 이란 정권의 치어리더 역할을 자처한 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1차 트럼프 정부 막바지였던 2020년 1월 바그다드에서 미군이 드론 공격으로 이란군 사령관 가셈 솔레이마니를 제거했을 때였다. 진보 성향의 작가 라니아 칼렉은 “이란이 링컨, 워싱턴, 그리고 캡틴 아메리카를 한꺼번에 잃었다”고 아쉬워했다. 세상 모든 일에 간섭하는 급진 여성단체 코드핑크도 솔레이마니를 ‘이란의 국민적 영웅’으로 띄웠다. 배우 로즈 맥고언은 트럼프 정부를 ‘테러리스트 정권’이라고 매도했다. 미군 수백 명의 목숨을 앗아간 테러의 배후 솔레이마니의 죽음은 반트럼프 공세의 투사체로 소비됐다.

여기에 이란 반정부 시위대도 좌파의 도식을 흔들었다. 시위대는 테헤란 시내의 거리 표지판 곳곳에 ‘트럼프 스트리트’라는 스티커를 부쳤다. 이슬람 혁명 당시의 반미 감정은 이제 미국과 트럼프를 향한 기대감으로 바뀌었다. 트럼프와 같은 대열에 설 수 없는 좌파에겐 인지부조화를 일으킬 만하다. ‘적의 적은 동지’라는 그들의 구도에서 이란 시위대가 설 자리는 없다.

2020년 이란에서 반정부 시위가 일어나자 트럼프가 자신의 계정에 올린 페르시아어 트윗.
트럼프는 1기 집권기에도 이란 반정부 시위를 지지했다. 2020년 1월 트럼프가 페르시아어로 트윗을 띄웠다. “임기 시작부터 여러분과 함께해왔고, 앞으로도 함께할 겁니다. 여러분의 시위를 면밀히 지켜보고 있습니다.” 1시간만에 ‘좋아요’가 10만 건을 넘었다. 얼마 뒤 20만 건을 넘어 현재 28만6000건에 이른다. 미국의 민주주의수호재단(FDD)은 이를 역사상 최다 ‘좋아요’를 기록한 페르시아어 트윗으로 선정했다.

이란을 대하는 좌파의 원죄 의식은 뿌리깊다. 기억의 범위 안에서 찾자면 1953년 미국이 개입한 이란의 쿠데타를 꼽을 수 있다. 중앙정보국(CIA)의 공작으로 모사데크 정부가 실각하고, 팔레비의 권위주의 체제가 들어섰다. 1979년 이란 청년들이 미 대사관을 습격한 것도 그로부터 나온 반미 의식이 강하게 반영됐다.

1979년 진보 성향의 법학자 리처드 포크가 쓴 ‘호메이니를 믿으며’라는 제목의 뉴욕타임스 기고문. [뉴욕타임스 아카이브]
진보 좌파는 이에 속죄라도 하듯 오래전부터 이란 신정체제를 상찬해 마지않았다. 인권파 국제법학자 리처드 포크(95) 프린스턴대 교수의 글이 자주 인용되는 사례다. 그는 1979년 ‘호메이니를 믿으며’라는 뉴욕타임스 기고에서 이란 혁명을 이슬람의 가장 위대한 순간으로 평가했다. 또 호메이니 정권을 인간적 정부의 모델로 치켜세웠다. 호메이니의 측근은 모두 온건하고 진보적인 인물로 구성돼 있다고도 했다. 실제론 정반대였는데, 호메이니를 직접 만났던 그는 판단 착오를 하고 만다. 그래도 정정 기사를 쓰진 않았다.

포크의 진단과 달리 이란 정권은 결코 진보적이지 않다. 그런데도 좌파는 과격한 이슬람주의의 비자유주의적 교리를 다양성이라는 우산으로 감쌌다. 이를 합리화하기 위해 자유 평등 인권이라는 기본가치를 서구적 특수성으로 상대화시켰다. 세속주의, 정교분리, 법 앞의 평등과 같은 민주주의의 핵심 규칙마저 서양의 취향쯤으로 격하시키기도 했다. 이란 신정체제의 존재 이유를 정당화시키기 위해 논리의 곡예를 탄 것이다.

미국의 이란계 활동가 마리암 메마르사데기(53)는 “신정체제에 맞선 이란 자유주의자들이 서구의 외면을 받고 있다”고 했다. 폴란드의 연대노조, 남아공의 반아파르트헤이트 운동과 유사한 가치관에도 불구하고 서구 언론과 지식인은 철저히 무관심하다는 주장이다. 보수 매체 내셔널 리뷰는 이를 두고 ‘진보의 침묵을 배경 삼아 학살되는 이란인’이라고 썼다. 자유주의에 대한 배신이나 다름없는 좌파 오리엔탈리즘은, 테헤란의 살풍경만큼이나 가혹하다.

정치학자 조지프 나이(1937~2025)는 외교정책의 도덕성을 판단할 때 의도·수단·결과라는 세 차원의 통합이 필요하다고 봤다. 좌파에겐 과연 그럴 의도라도 있나. 외려 해묵은 제국주의 비판을 재생하기 위해 이란인의 고통을 방관하는 건 아닌지.

미국 민주당에 이슬람 유권자는 ‘집토끼’
이란 정권에 미온적인 민주당은 국내 무슬림 유권자를 집토끼로 생각한다. 2025년 퓨리서치가 미국 무슬림의 정치성향을 조사한 결과, 민주당이 53%로 공화당(42%)을 앞섰다. 전체 미국인 조사에선 똑같은 46%로 집계됐으니, 그들이 민주당에 압도적으로 기운 건 아니다. 문제는 가치관의 차이다. 동성애를 규제해야 한다는 데 찬성하는 응답이 무슬림에서 55%에 달한 반면, 민주당원의 경우 13%에 불과했다. 전체 미국인의 찬성비율은 30%였다. 이 사안이 불거질 경우 집토끼는 달아날 수도 있다는 의미다.

미시간의 소도시 햄트래믹에서 실제 그런 일이 벌어졌다. 진보 진영은 다양성을 명분으로 무슬림 이민자들의 정계 진출을 적극 지원했다. 진보 연대의 일원으로 끌어들이기 위해서였다. 2015년 무슬림이 시의회 과반을 차지한 데 이어 2022년엔 시장과 경찰서장도 배출해 도시의 입법과 행정권을 거머쥐었다. 진보 진영은 환호했으나, 틈은 이미 벌어졌다. 2023년 시가 공공장소에서 성소수자들의 무지개 깃발을 금지한 데다, 2024년 아메르 갈리브(47) 시장이 트럼프를 지지한 게 결정적이었다. 진보 진영은 “배신”이라며 소송을 제기했으나 버스 떠난 뒤 손 흔드는 격이었다. 아쉬울 땐 서로 손잡을 수 있지만, 가치의 균열은 숨길 수 없다.

그럼 좌우를 불문하고 미국인들은 도대체 중동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팬데믹 직전 민간업체 시빅 사이언스가 미국인 3624명에게 물었다. “학교에서 아라비아 숫자를 가르쳐야 합니까 ?” 조사 결과 ‘노’가 58%에 달했다. ‘예스’는 29%였다. 아라비아라는 이름에 대한 반사적 거부감 탓이다. 또 비슷한 시기 폴리티코의 조사에 따르면 세계지도에서 이란의 위치를 짚어낸 유권자는 23%에 그쳤다. 이란을 아랍의 일부로 혼동하는 이들도 허다하다. 이 정도의 무지를 바탕으로 이란을 지지하느니, 마느니 한다는 건 신념의 표명이 아니라 몰이해의 고백이다.

◆트럼프 시대의 미국에선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요. 남윤호 미주중앙일보 대표가 현지에서 전합니다.

남윤호 미주중앙일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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