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차기 연방준비제도(Fed) 의장 후보로 케빈 워시 전 Fed 이사를 지명하면서, Fed의 독립성이 다시 시험대에 올랐다. 워시는 과거 Fed 내 대표적인 매파(통화 긴축 선호)로 꼽혔지만, 최근에는 금리 인하 필요성을 공개적으로 언급해 실용주의로 돌아섰다는 평가를 받는다. 시장에서는 그가 ‘매의 탈을 쓴 비둘기(통화 완화 선호)’로 변모할지에 주목하고 있다.
1일 로이터와 파이낸셜타임스(FT) 등 외신들은 워시에 대해 “Fed의 정책 신뢰와 독립성을 중시하는 정통 중앙은행가이자 실용주의자”라고 논평했다. 특히 2010년 11월 Fed가 2차 양적완화(QE)를 결정했을 당시 이사회 멤버 가운데 유일하게 공개적으로 반대표를 던진 인물이란 점을 이유로 들었다.
워시는 2006년 조지 W.부시 행정부에서 Fed 이사로 임명돼 글로벌 금융위기와 이후 통화정책 전환기를 직접 경험했다. 초저금리와 양적완화 기조를 밀어붙인 벤 버냉키 당시 의장과의 시각차도 뚜렷했다. 그가 2011년 임기를 7년이나 남겨둔 채 Fed를 떠난 배경으로도 완화적 통화정책에 대한 이견이 거론됐다.
하지만 최근 몇 년간 워시의 발언은 변화의 조짐을 보인다. 그는 지난해 7월 CNBC 인터뷰에서 “Fed가 항상 늦게 대응하고 있다”며 “금리 결정이 경기 변화에 뒤처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10월 폭스비즈니스 인터뷰에서는 “30년 만기 주택담보대출 금리가 가계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으로 내려올 필요가 있다”며 “이를 위해 기준금리 인하가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11월 월스트리트저널(WSJ)에 기고한 칼럼에서는 “인플레이션이 정책 선택의 결과”라고 지적하며 “비대해진 연준 대차대조표를 축소할 경우 기준금리를 더 낮게 유지할 수 있는 여력이 생긴다”고 주장했다.
특히 워시는 통화량을 먼저 줄여 물가 기대를 낮춘 뒤 금리를 인하할 수 있다는 ‘선 긴축 후 인하’ 전략을 강조해왔다. 최근에는 인공지능(AI) 확산이 생산성을 끌어올려 물가 압력을 완화할 수 있다는 점도 주요 근거로 제시하고 있다.
이런 워시의 입장 변화에 Fed의 독립성 훼손으로 이어질 것이란 우려도 제기된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는 워시에 대해 “매파라기보다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입장을 바꾸는 인물”이라며 “트럼프 대통령 당선 이후 금리 인하로 입장을 선회했다”고 지적했다.
제롬 파월 현 Fed 의장이 금리를 내리지 않는다며 공개 비판해온 트럼프 대통령은 벌써 워시를 압박하는 모양새다. 이날 WSJ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31일(현지시간) 알팔파 클럽의 비공개 만찬 연설에서 “워시가 금리를 인하하지 않으면 소송을 제기하겠다”고 말했다. 이후 에어포스 원 기내에서 관련 질문을 받은 트럼프 대통령은 “농담이었다”며 “워시로부터 금리 인하와 관련한 어떤 약속도 받지 않았다”고 수습에 나섰지만, Fed의 독립성 훼손에 대한 시장의 의구심은 가시지 않았다.
WSJ은 “경제 데이터가 연준이 금리를 인하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면 워시는 트럼프 요구를 거절할 수 있을까”라고 반문하며 워시가 트럼프 대통령을 실망시킬 경우 파월 의장에게 했던 방식으로 압박을 가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반면 월가에서는 워시에 대한 긍정적 평가도 적지 않다. 모하메드 엘에리언 알리안츠그룹 고문은 “워시가 깊은 전문성과 소통 능력을 갖춘 인물이라며 Fed 개혁과 현대화에 적합하다”고 평가했고, 레이 달리오 브리지워터 창업자 역시 “워시가 지나친 완화와 과도한 긴축의 위험을 모두 이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시장의 반응도 이런 해석과 크게 다르지 않다.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주요 글로벌 투자은행들은 Fed가 올해 6월부터 연내 두 차례 기준금리를 각각 0.25%포인트 인하할 것이란 전망을 유지하고 있다. 국제금융센터는 “정책 성향이 소폭 비둘기파로 기울 수는 있지만, 경제 여건과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합의 구조상 급격한 금리 인하는 어려울 것”이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