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시즌 가장 많이 성장한 것 같다." 요시하라 도모코 흥국생명 감독의 '죽순 배구'는 베테랑도 발전시킨다. 프로 15년차 아웃사이드 히터 최은지(34)가 그렇다.
흥국생명은 1일 인천 삼산체육관에서 열린 2025~26 진에어 V리그 여자부 5라운드 페퍼저축은행과의 경기에서 세트 스코어 3-1로 이겼다. 흥국생명(15승 11패·승점 48)은 하루 만에 현대건설(15승 10패·승점 45)을 제치고 다시 2위로 올라섰다.
이날 가장 돋보인 선수는 주포 레베카 라셈(25점)이 아닌 최은지였다. 12득점으로 올 시즌 개인 최다 기록을 올렸고, 공격성공률도 55.0%로 훌륭했다. 가장 중요한 임무인 서브 리시브(효율 50.0%)도 거의 완벽했다. 디그(스파이크를 걷어내는 것)도 14개나 잡았다. 4세트 막바지 23-21 상황에선 상대 주포 조이의 공격을 단독블로킹하기도 했다. 최은지는 "내 한 자리를 지켜야겠다고 생각하고, 타이밍을 신경쓰고 있었다. 운이 좋았다"고 웃었다.
최은지는 지난 시즌만 해도 벤치 멤버였다. 주로 원포인트 서버로 나섰다. 공격 득점은 35점에 머물렀다. 데뷔 4년차인 2014~15시즌 이후 가장 적은 득점이었다. 어머니의 고향인 여수에서 열린 컵대회에서도 거의 뛰지 못했다. 하지만 시즌을 치를 수록 팀내 역할이 커지고 있다. 최근 6경기 연속 선발로 나서고 있다. 페퍼전도 4명의 아웃사이드 히터(OH) 중 유일하게 네 세트를 모두 스타팅으로 뛰었다.
최은지는 아쉬워하는 대신 자신을 채찍질했다. 그는 "컵 대회 때만 해도 '준비가 덜 됐다. 시즌 전체를 보고, 아쉬운 걸 보여주자'고 생각했다"며 "내가 확실한 게 없으니까, (감독님이) 기용을 못 한 거다. 좋은 자극이 됐다"고 했다.
김연경이 은퇴한 흥국생명은 최은지, 정윤주, 김다은, 박민지 4명의 선수가 두 개의 OH 자리를 번갈아 소화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시즌 초반에 조금 혼란스러울 때도 있었다. 최은지는 "고정된 포지션이 아니다 보니까 혼란스럽지 않을까도 생각했다. 감독님이 '여러 옵션을 생각하고 있다'고 설명해줬다. 들어갔을 때 뭘 해야 할지를 생각하면서 연습하다 보니 지금은 괜찮다"고 말했다.
요시하라 감독은 젊은 선수들이 많은 팀을 '죽순'에 비교한다. 죽순은 하루에도 10㎝ 이상 자랄만큼 쑥쑥 큰다. 실제로 올 시즌 하위권으로 꼽힌 흥국생명은 선수들의 성장 속에 상위권을 유지하고 있다. 놀랍게도 베테랑 최은지 역시 올해 기량이 발전했다. 요시하라 감독도 "최은지가 순조롭게 성장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평했다. 최은지는 "올해 가장 많이 성장한 거 같다고 스스로 생각한다. 조금이라도 어렸을 때 이렇게 배구를 생각하면서 해봤으면 좋을까 생각도 했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성장에는 나이가 중요하지 않다"고 했다.
최은지는 "배구에 대한 관점이 예전과 달라졌다. '왜 그렇게 플레이 해야하는지, 상대가 어떻게 나올지'에 대해 감독님이 자세하게 말해주니까 이해도가 높아졌다"고 했다. 흥국생명 특유의 끈질긴 플레이도 그 중 하나다. 최은지는 "예전엔 한번에 득점을 내야 한다는 생각만 했는데, 이제는 안 났을 때도 생각한다. 포인트가 나지 않아도 다음 블로킹과 수비로 대비하는 연습을 하고 있다. 한 번에 끝나면 좋지만, 두 번 세 번 때리면서 동료들과 같이 싸운다"고 설명했다.
변화의 원천은 '돌아보기'다. 최은지는 "감독님이 온 뒤 개인 영상을 많이 보라고 했다. '이럴 땐 어떻게 했어야 하는지'를 매일매일 보라고 강조했다. 비밀이라 자세히 말할 순 없지만, 전술적인 부분에선 약속된 플레이를 많이 하고 있다. 내 경우엔 감독님을 찾아가지 않았지만, 감독님이 '뭐가 부족한지 모르겠으면 찾아와서 물어봐도 된다고 했다'고 말할 정도로 열려 있다"고 했다.
요시하라 감독이 최은지에게 원하는 건 '연결'이다. 서브 리시브를 하거나 수비를 하면서 첫 번째 터치를 하는 횟수가 많기 때문이다. 최은지가 잘 컨트롤 해야 세터가 편해지고, 공격수도 좋은 공을 때릴 수 있다. 최은지는 "감독님은 첫 볼을 많이 강조한다. 감독님이 '잘 하고 있는데 이렇게 하면 더 좋을 것 같다'고 이야기해준다. '이런 걸 원하는구나'라고 명확해지기 때문에 피드백이 된다"고 했다.
든든한 동료인 이나연도 있다. 동갑내기인 둘은 2011~12시즌 IBK기업은행 창단 멤버다. 최은지는 이후 네 팀을 거쳐 흥국생명 유니폼을 입었고, 이나연은 은퇴했다가 '신인감독 김연경'을 통해 다시 코트에 돌아왔다. 최은지는 "어렸을 때부터 오래 같이 해서 말을 안 해도 호흡이 맞는다. 코트에서 서로 의지하고, 이야기를 많이 한다. 특히 나연이가 세터다 보니 순간 선택 미스가 있을 때 흔들리는데, 그때 내가 '나연아 괜찮다'고 이야기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