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1일 오후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뮤지엄 전시 1관 앞에는 긴 줄이 늘어섰다. 전시 마지막 날, ‘장 미셸 바스키아: 과거와 미래를 잇는 상징적 기호들’ 특별전을 놓치지 않으려는 인파였다. 이날 하루에만 4612명이 바스키아를 만났다. 중앙일보 창간 60주년을 맞아 지난해 9월 23일 개막한 바스키아 특별전이 130일 만에 막을 내렸다. 총 25만 명이 다녀갔다.
바스키아의 회화와 드로잉 70여 점, 국내 최초로 공개되는 바스키아의 창작 노트 8권 등이 한자리에 모였다. 2013년 런던 크리스티 경매에서 933만7250파운드(약 176억원)에 경매된 1983년작 ‘뮤지엄 시큐리티(브로드웨이 붕괴)’, 2020년 12월 뉴욕 필립스 경매에서 1150만 달러(약 166억원)에 팔린 ‘왕이라 불린 에이원의 초상’(1982), 1988년 세상을 떠나던 해 그린 자화상 ‘에슈(Exu)’, 바스키아 작품 중 가장 큰 ‘살과 영’(1983), 리움미술관에서 빌려온 ‘무제(검은 인물)’ 등이다.
해외 미술품 전시는 대개 한 미술관에서 빌려오는 경우가 많다. 빈센트 반 고흐의 대표 소장처인 네덜란드 크뢸러 뮐러 미술관에서 가져온 작품들로 꾸린 서울 예술의전당의 ‘불멸의 화가 반 고흐’(2024년 12월~2025년 3월)가 그 예다. 한 곳의 컬렉션으로 구성하면서 운송비도 줄일 수 있다. 그러나 바스키아의 경우 ‘대표 소장처’랄 곳이 없다. 바스키아가 활동했던 뉴욕의 대표 미술관인 현대미술관(MoMA)에도 그의 유화가 한 점도 없다.
이번 전시는 9개 나라의 개인·기관 소장가들의 작품을 한데 모았다. 9월 전시 개막을 앞두고 대한항공의 10개 화물 노선으로 크레이트(미술품 운반 전용 상자) 63개가 들어왔다. 전시의 총 보험가액은 약 1조4000억원 정도, 전시 총괄감독인 숨 프로젝트 이지윤 대표는 “보험사에서 ‘여태껏 한국에서 열린 모든 전시 중 최고가’라고 했다. 그만큼 다시 열리기 어려운 전시”라고 말했다. 바스키아 작품을 이렇게 한번에 보기 어렵기에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매기 강 감독, 건축가 유현준, BTS의 RM, 배우 김혜수, 로봇공학자 데니스 홍 UCLA 교수, 크리스티 CEO 보니 브레넌 등 미술계 관계자 및 애호가들의 발길이 전시 기간 내내 이어졌다.
동시대 미술계에서도 낯선 존재였던 바스키아에 한국은 일찍부터 반응했다. 바스키아가 세상을 떠난 지 3년 뒤인 1991년 국립현대미술관과 경주 선재미술관(지금의 우양미술관)에서 ‘워홀과 바스키아의 세계’라는 전시가 열렸다.
정준모 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실장은 “바스키아를 중요 미술가 반열에 올린 뉴욕 휘트니미술관 회고전보다 1년 앞서 열린 이 전시가 한국의 청년 작가들에게 큰 충격을 줬다”고 돌아봤다. 그는 “이번 전시에서는 국내 첫 공개된 그의 창작 노트 8권을 주목했다”며 “이를 통해 바스키아가 낙서 같은 그림을 그린 ‘길거리 천재’가 아니라 철저하게 계산된 언어와 기호를 통해 포스트모더니즘 미술의 핵심을 꿰뚫은 전략가였음을 알게 했다”고 말했다.
서울에서 열린 전시인 만큼 바스키아의 창작 노트와 함께 훈민정음 해례본, 반구대 암각화, 추사 김정희가 숨지기 사흘 전 쓴 마지막 글씨 ‘판전(板殿)’ 등이 함께 전시돼 ‘인간에게 쓰고 그리기란 무엇인가’를 질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