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K팝이 ‘그래미’의 높은 벽을 뛰어넘을 수 있을까. 1일(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 크립토닷컴 아레나에서 열리는 제68회 그래미 시상식에서 블랙핑크 멤버 로제와 브루노 마스가 부른 ‘아파트’,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 OST인 ‘골든’이 K팝 첫 그래미 수상에 도전한다. K팝 제작 시스템으로 육성한 한·미 합작 걸그룹 ‘캣츠 아이’도 데뷔 1년 만에 신인상 후보에 오르면서 그 어느 때보다 K팝 장르의 수상 기대감이 높아졌다.
30일 미국 뉴스위크는 “전세계적으로 K팝이 큰 인기를 누리고 있지만 지금까지 그래미 상을 수상한 K팝 아티스트는 없었다”며 “올해 ‘골든’을 만든 K팝 아티스트들과 블랙핑크 로제가 후보에 올라 마침내 (무관) 기록을 깬다면 K팝에 큰 전환점이 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로제는 K팝 솔로 가수 중 처음으로 그래미 시상식 무대에 선다.
그래미는 본상 6개 부문과 장르상 89개 부문에서 시상한다. 본상 중 가수가 받는 상인 ‘올해의 레코드’에는 ‘아파트’가, 본상 작곡가 상인 ‘올해의 노래’에는 ‘아파트’와 ‘골든’, ‘신인상’에는 캣츠아이가 이름을 올렸다. 장르상 중에선 ‘베스트 팝 듀오·그룹 퍼포먼스’에 ‘아파트’와 ‘골든’, 캣츠 아이의 ‘가브리엘라’가, ‘베스트 컴필레이션 사운드트랙’에 ‘케이팝 데몬 헌터스’ OST가 올랐다. ‘골든’은 ‘베스트 송 리튼 포 비주얼 미디어’ ‘베스트 리믹스드 레코딩’ 후보에도 올라 총 5개 부문 수상에 도전한다. 또 한국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은 ‘베스트 뮤지컬 시어터 앨범’ 부문 후보에 올라있다. 미국 AP통신은 ‘아파트’를 가장 유력한 ‘올해의 레코드’ 수상후보라고 예측했다. 주요 시상식 예측 사이트 ‘골드 더비’에선 ‘골든’이 ‘올해의 노래’로 본상을 수상하고, ‘아파트’가 ‘베스트 팝 듀오·그룹 퍼포먼스’에서 장르상을 수상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그래미는 빌보드 뮤직 어워드에서 6년 연속 수상한 방탄소년단(BTS)도 수차례 고배를 마신 시상식이다. BTS는 2023년까지 3년 연속 장르상 부문 올랐지만, 수상엔 실패했다. 하지만 올해 K팝 후보들은 BTS와 달리 미국 음반 산업과 협업해 만든 음원으로 후보에 올랐다는 점이 수상에 유리한 요소로 꼽힌다. ‘아파트’ ‘골든’과 캣츠아이의 음원은 미국에서 수십년 역사를 자랑하는 굴지의 레이블인 애틀랜틱·리퍼블릭·게펜 레코드에서 각각 발매됐다. 특히 로제와 협업한 브루노 마스는 그래미 시상식 투표인단이 선호하는 가수이기도 하다.
임희윤 대중음악평론가는 “‘아파트’와 ‘골든’은 지난해 미국 대중에게 가장 많이, 오랜 기간 히트한 곡이라는 점에서 수상 자격은 충분하다”고 말했다. ‘아파트’는 지난해 빌보드 핫100 차트에서 최고 3위까지 올랐고 34주 이상 연속으로 이름을 올리면서 K팝 최장 차트인 기록을 세웠다. ‘골든’은 빌보드 핫100 차트 1위를 8주간 유지하며 빌보드 여성 그룹 역대 2위를 기록했다.
그래미의 투표인단 구성이 다양해졌다는 점도 전보다 유리해진 요소다. 시상식을 주관하는 레코딩 아카데미는 지난해 3800여명의 음악 창작자와 전문가를 신규 회원으로 받아들였는데 이 중 절반이 39세 이하, 58%가 유색인종, 35%는 여성으로 구성됐다고 밝혔다. 한국에선 방시혁 하이브 의장, 방탄소년단 멤버 7명 전원, 프로듀서 피독·지코·범주 등 등이 투표권을 가졌고, 캣츠아이 멤버 6명 전원도 투표 위원으로 위촉됐다. 캣츠아이의 경우 올해 수상 가능성은 높지 않지만, 데뷔 1년 만에 후보에 올랐다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크다는 평가도 나온다. 임희윤 평론가는 “미국 가수도 데뷔 1년 만에 신인상 후보에 오르기는 쉽지 않다”며 “개별 스타가 아닌 K팝이라는 시스템이 미국 시장에서의 지속가능성을 입증한 사례로 볼 수 있다”고 했다.
물론 ‘아파트’ ‘골든’과 경쟁을 벌이는 후보들도 쟁쟁하다. 배드 버니(DtMF)와 빌리 아일리시(와일드 플라워), 레이디 가가(아브라카다브라) 등이 후보에 올라있다. 배드 버니는 스페인어권 최초로 그래미 본상 3개 부문과 장르상 3개 등 총 6개 부문에 오르며 ‘올해의 레코드’ 유력 수상자로 꼽힌다. 빌리 아일리시와 레이디 가가도 7개 부문 후보에 본상과 장르상 각종 부문에서 ‘아파트’ ‘골든’과 경합을 벌인다. 미국 힙합 가수 켄드릭 라마도 유력한 올해의 레코드 후보 중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