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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이 시게토의 마켓 나우] 정부가 아니라 시장이 재정 건전성 지킨다

중앙일보

2026.02.01 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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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이 시케토 옥스퍼드 이코노믹스 일본 대표·전 일본은행 국제국장
일본 다카이치 정부가 확장적 재정 정책을 추진하기 위해 재정 준칙의 수정을 검토하자, 오래된 질문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국가 재정을 규칙으로 통제할 수 있을까.

경제학자들은 준칙 완화가 재정 건전성을 훼손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재정 규율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졌다는 점에서 이런 논쟁 자체는 반갑다. 다만 논의의 출발점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재정 준칙의 힘을 과신하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다.

세계 곳곳에서 ‘재정 팽창이 국채 금리의 안정성과 정부 신뢰를 위협한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특히 헤지펀드들이 통화스와프를 활용해 국경을 넘나드는 국채 투자를 빠르게 늘리면서, 한 나라의 채권시장 불안이 글로벌 금융시장으로 번질 가능성도 훨씬 커졌다.

국제사회의 주류 견해는 분명하다. 재정 준칙은 재정 건전성 유지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현재 대부분의 국가는 어떤 형태로든 재정 준칙을 채택하고 있다. 준칙이 제약하는 재정 변수의 수도 늘어났다. 평균적으로 2012년 2.6개였던 재정 변수는 2024년에는 3.4개로 증가했다. 규칙은 더 정교해졌고, 종이 위의 재정 규율은 한층 단단해 보인다.

김지윤 기자
현실은 기대에 부응하지 않는다. 선진국 21개국과 신흥국 32개국의 1999년 이후 상황을 분석한 연구에 따르면, 재정 준칙을 도입했다고 해서 반드시 더 나은 재정 성과를 거두는 것은 아니다. 일본 사례는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일본의 기초재정수지 균형 달성 목표는 수년째 연기되고 있지만, 준칙 자체는 여전히 존재한다.

더 흥미로운 대목은 도입 전후의 변화다. 각국의 기초재정수지를 보면, 준칙 도입 이전 3년 동안은 GDP 대비 평균 1.1% 개선됐지만, 도입 이후 2년 동안은 오히려 같은 폭으로 악화됐다. 팬데믹 같은 대형 충격 이후에는 재정 준칙을 가진 나라에서 재정수지 악화가 더 두드러졌다. 규칙이 위기의 완충장치 역할을 했다고 보기 어렵다.

왜 이런 역설이 반복될까. 많은 정부는 재정 상황이 좋아진 뒤 그 성과를 기념하듯 재정 준칙을 도입한다. 준칙이 기초수지 개선 노력에 일정 부분 기여하는 것도 사실이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정부는 개선된 재정 평판을 발판 삼아 다시 지출을 늘리고, 그 순간 준칙이 만들어낸 긍정적 효과는 빠르게 사라진다.

결론은 냉정하다. 재정 건전성을 지켜주는 것은 정부가 스스로 세운 규칙이 아니라, 장기금리와 환율이라는 시장의 징계일지 모른다. 재정 준칙이 실패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시장은 예외를 허용하지 않지만, 정치는 언제나 예외를 만든다.

나가이 시게토 옥스퍼드 이코노믹스 일본 대표·전 일본은행 국제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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