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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부동산 시장이 입으로 잡히나

중앙일보

2026.02.01 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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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은화 내셔널부 기자
“정부를 이기는 시장은 없다.” 최근 회자되는 이재명 대통령의 말이다. 부동산 양도세 중과 유예를 연장할 뜻이 없다는 발언에 앞서 내놓은, 일종의 선전포고다. 발언의 강도는 갈수록 세지고 있다. 지방선거 이후 정부와 시장이 어떤 싸움판을 펼칠지 상상이 된다. 하지만 과거 승패를 따질 것도 없이, 해서는 안 되는 싸움이다. 이를 보여주는 통계가 있다.

‘113만4063가구 vs 11만3789가구.’ 국토교통부 주택건설실적 통계에 따르면 2005년부터 2024년까지 20년간 서울시에 공급된 주택 수다. 앞의 숫자는 민간, 뒤의 숫자는 공공 물량이다. 전체 공급의 91%를 민간이 책임졌고, 공공은 9%에 그쳤다. 공공이 민간과 싸워서는 안 되는 이유이자, 싸울 수조차 없는 이유다.

공공은 양질의 임대주택 공급을 비롯해 제 역할을 하면 된다. 그간 주거환경개선을 비롯해 기여가 적었던 만큼 역할을 확대하는 것도 필요하다. 다만 민간의 공급 기능도 함께 작동해야 한다. 민간은 통제의 대상이 아니라 공급의 파트너다.

지난달 22일 서울 송파구의 한 공인중개사무소의 모습. [뉴스1]
이런 점에서 지난달 29일 발표한 정부의 공급대책은 우려스럽다. ‘공공 주도’에만 집중됐다. 과연 공공이 서울 주택 공급의 91%를 담당해 온 민간의 몫까지 감당할 수 있을까. 현실은 녹록지 않다. 마땅한 부지가 없다. 특히 서울의 경우 이번에 발표한 부지의 상당수가 문재인 정부 시절 이미 발표됐던 ‘재탕 부지’라는 지적이 나온다.

문 정부 당시 신규 택지를 물색하던 과정에서 김현미 전 국토교통부 장관은 “요즘 돌아다니며 남는 땅이 있느냐고 묻는 게 일”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렇게 찾아낸 곳이 태릉CC, 용산국제업무지구를 비롯한 국공유지와 노후 청사 복합개발 부지였다. 그러나 주민 반발 등으로 실제 공급으로 이어진 사례는 많지 않다.

의욕적인 공공과 달리 민간의 공급 여건은 오히려 악화되고 있다. 10·15 대책 이후 대출 규제가 강화되면서 재건축·재개발 사업장의 이주비 대출이 막혔다. 서울시가 올해 이주를 앞둔 사업장 43곳을 전수조사한 결과, 91%가 이주비 마련이 어려워 사업에 난항을 겪고 있었다. 서울시는 이런 현실을 정부에 여러 차례 전달했지만, 정책에는 반영되지 않았다고 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승패를 가르는 정책이 아니다. 시장을 상대로 한 정부의 선전포고는 한 편의 박수를 받을 수 있어도 집을 짓진 못한다. 정부는 민간 사업장을 향한 적대감을 거두고 공급의 길을 열어줘야 한다. 정부가 시장과의 싸움에 집착할수록 그 대가를 치르는 쪽은 늘 같다. 집을 기다리는 서민들이다.





한은화([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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