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중소기업중앙회가 외국인 근로자를 고용 중인 310개 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48.7%가 외국인 근로자의 사업장 변경 제한을 ‘현행 3년 유지’해야 한다고 답했다. 기업들은 이직 규제가 풀린다면 중소업체가 인력난 심화를 겪을 것이며, 이는 곧 심각한 경영 위기로 이어질 것이라고 한다. 어렵게 데려와 일을 가르쳐 놓으면 더 좋은 조건을 찾아 떠나버릴 것이라는 이탈의 공포가 우리 사회의 정책적 판단을 지배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가장 중요한 질문을 빼놓은 채 대화를 이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들은 왜 떠나려고 하는가?”라는 질문 말이다.
당장 급하다고 외국인 차별
중소기업 49%, 이직 제한 찬성
국경에서 멈춰선 인권 감수성
이동은 변덕이 아니라 생존의 호소이기 때문이다. 내가 상담을 했던 베트남 청년 ‘민(가명)’은 경기도의 한 금속 가공 공장에서 일했다. 그는 입국 후 2년 동안 단 한 번도 이직을 생각해 본 적이 없다고 했다. 하지만 그가 나를 찾아왔을 때, 그의 손은 상처투성이였고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약속했던 수당은 차일피일 미뤄졌고, 곰팡이가 가득한 샌드위치 패널 숙소는 겨울의 추위를 전혀 막아주지 못했다. 위험한 기계 앞에 서면서도 제대로 된 안전 교육 한 번 받지 못했다는 그의 말에 나는 가슴이 미어졌다. 민씨가 원한 것은 더 많은 돈이 아니었다. 그저 인간답게 일할 수 있는 최소한의 환경이었다. 하지만 현행 고용허가제는 사업주가 동의해주지 않는 한 그를 그 지옥 같은 현장에 묶어둔다. 이번 조사에서 기업들이 호소한 인력난 심화라는 명분 뒤에는, 버티다 못해 쓰러져가는 이들의 침묵이 숨겨져 있다. 이들에게 이직은 가벼운 변심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마지막 선택이다.
한국인 청년들이 3D 업종을 기피하는 이유와 이주노동자들이 이직을 원하는 이유는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낮은 임금, 열악한 복지, 그리고 미래가 보이지 않는 일터를 떠나고 싶은 것은 보편적인 인간의 본성이다. 그런데 유독 이주노동자에게만 이동의 자유를 빼앗아 인력난을 해결하겠다는 것은 공평하지도, 해결 방법이 되지도 않는다. “사람이 부족하니 이동을 금지하자”는 논리는 민주주의 국가인 대한민국에서 오직 이주노동자에게만 통용되는 슬픈 예외다.
만약 정부가 “중소기업 인력난이 심각하니 내국인 근로자들도 3년 동안은 이직을 금지하겠다”고 발표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아마 온 나라가 뒤집어질 것이다. 직업 선택의 자유는 우리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 중의 기본권이기 때문이다.
국가인권위원회와 국제노동기구(ILO)는 한국의 고용허가제가 강제 노동의 소지가 있다고 거듭 경고해 왔다. 이주노동자 역시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지킬 권리가 있으며, 부당한 대우를 받을 때 일터를 옮길 수 있는 권리는 그 존엄을 지키는 최소한의 장치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법과 제도는 국적이라는 잣대로 이 소중한 가치를 차별적으로 적용하고 있다. 한국 사회의 인권 감수성이 국경선 앞에서 멈춰 서 있는 셈이다.
중소기업의 어려움을 모르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사람을 강제로 붙잡아 두는 방식으로는 결코 숙련도도, 생산성도 높일 수 없다. 몸은 공장에 갇혀 있을지 몰라도, 마음이 떠난 노동자가 어떻게 정성을 다해 제품을 만들 수 있겠는가. 갈등과 불신이 가득한 현장에서 혁신이나 성장을 기대하는 것은 욕심이다.
진정한 해결책은 외국인 근로자들이 떠나지 않아도 되는 이유를 만드는 것, 정당한 임금을 지불하고, 안전한 환경을 제공하며, 그들을 우리 사회의 일원으로 존중하는 문화가 정착되는 것이어야 한다. 외국인 근로자와 가족처럼 지내며 좋은 환경을 제공하는 공장들은 이직률 걱정 없이 숙련된 노동력과 함께 성장하고 있다.
이주노동자는 한국 경제의 빈틈을 메우는 소모품이 아니다. 현장에서 들리는 “더는 못 버티겠어요”라는 비명이 “여기서 더 일하고 싶어요”라는 희망으로 바뀌어야 한다.
발을 묶는 제도가 아니라 마음을 얻는 정책이 필요하다. 사람이 남고 싶어 머무는 일터, 국적에 상관없이 땀 흘린 만큼 존중받는 현장. 그 상식적인 풍경이 대한민국 중소기업의 미래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사람이 머물지 못하는 땅에는 산업도, 미래도 머물 수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