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정부에서 잘나가는 한 고위 공직자에게 같은 기관 소속 A과장의 안부를 물었더니 돌아온 말이다. A과장은 보수 주류와는 거리가 먼 호남 출신이지만 업무 능력을 인정받아 윤석열 정부 때 동기들보다 빠르게 승진해 요직에 앉았었다. 그 승진은 이제 주홍글씨가 되어 A의 공직 생활은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렵게 됐다. “그 친구가 직접 문제가 되는 행동을 했다는 증거는 나오지 않았어요. 워낙 에이스라 어디에라도 쓰고 싶지만 친윤으로 분류돼 어쩔 수가 없어요.” 고위 공직자의 말에선 안타까움마저 느껴졌다.
대통령은 송미령·이혜훈 발탁
부처선, 전 정부 승진자 줄 좌천
내란 종식, 선 정해야 성과 가능
내란 기여 공무원을 적발하겠다며 두 달 시한으로 진행된 부처별 ‘헌법 존중 정부혁신 TF’ 활동은 1월 중순 마무리됐지만, 뒤늦게 인사철을 맞은 각 기관에서는 A와 비슷한 처지에 놓인 공무원들 소식이 쏟아진다. “능력은 있지만….” 특히 검찰에선 전 정부에서 특별한 혜택을 보지 못했더라도, 과거 어느 시점에 윤석열 전 대통령이나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와 근무연이 있었다면, 대부분 승진 배제 또는 좌천 대상이다. 이재명 정부 노선에 적극 동의한다는 것만으로는 낙인을 벗을 수 없다.
12·3 비상계엄 이후 더불어민주당의 무더기 고발과 감사청구로 1년 넘게 ‘수사중’이거나 ‘감찰중’에 놓인 각 부처 늘공(직업 공무원)들도 적지 않다. 이들 중 상당수는 문재인 정부가 검찰을 앞세워 저인망식으로 걷어내려던 국정농단 연루 공무원이나 윤석열 검찰이 문재인 정부를 등질 때 희생양으로 삼았던 탈원전 관련 공무원들처럼 언젠가 ‘죄가 없었다’고 밝혀질 것이다. 커리어는 결딴나고 자신과 가족의 몸과 마음이 만신창이가 되었을 때 쯤.
민주당의 마구잡이 고발을 대거 떠안은 고위공직자 수사처 등의 사정을 잘 아는 사정기관 관계자는 “압수수색에 소환 조사까지 하고 나니 도저히 공수처 수사 대상인 윗선까지 엮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며 “결국 국가수사본부에 넘겨야 하지만, 국수본에는 이미 3개 특검이 떠넘긴 사건만 수백 건 대기중”이라고 말했다. 번역하면 당사자가 무죄를 확신해도 사표조차 수리되지 못한 채로 수년 더 표류해야 하는 엘리트 공무원이 부지기수라는 얘기다. 상당수는 혐의 자체가 내란과는 무관할 뿐더러 윤 전 대통령과 말도 섞어볼 수 없는 직급이지만, 조직과 업무에 누적된 기여가 적잖은 각 부처 에이스들이다.
이들의 사회적 생사를 결정해야할 또 다른 늘공, 사정기관 공무원들의 처지도 이해는 된다. 살벌함이 아직 가득한 여권의 분위기를 감안할 때, 이들이 ‘증거가 없으면 무죄’라는 법치적 관념으로 ‘전 정부 관련’ 사건을 무혐의 처분이나 항소 포기로 종결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자신들의 다음 인사에 문제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이쯤에서 떠오르는 얼굴은 이재명 대통령이다. 자신을 표적으로 사방에서 날아오는 사정의 화살 앞에서 억울함에 북받쳤던 이재명, 계엄 결정 국무회의에 참석했던 송미령을 장관에 유임시키고 윤어게인에 빠졌던 이혜훈을 초대 기획예산처 장관에 임명하려던 이재명이 동시에 떠오른다. 먼지털이식 수사와 증거 부족의 기소가 당사자와 그 가족의 존재를 얼마나 심각하게 침해하는지 가장 잘 아는 사람도 이 대통령이고, 내란에 직접 관여하지 않았고 능력만 있다면 과거를 묻지 않겠다고 마음 먹은 사람도 이 대통령이다. 그는 피해 의식에 갇힌 개인이기보다는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다고 선언했다.
이 대통령은 최근 국무회의에서 본인이 지적한 문제들에 대한 행정 작용이 지연되는 것에 대한 답답함을 수차례 토로했다. 그러나 정권이 바뀌면 적극 행정이 언제든 직권남용으로 둔갑할 수 있는 환경에서 공무원들이 ‘민생 회복’과 ‘산업 발전’ ‘국익 수호’에 몰입하기란 불가능하다. 문재인 정부가 국민의 눈높이에서 실패한 정부로 판명난 것은 상당 부분 3년이 넘는 적폐청산으로 공직사회를 동토로 만든 결과였다. 그 시절 공무원들의 생사를 가른 건 연줄이나 눈치였지, 능력과 성과가 아니었다. 지금 그런 ‘개혁’이 되풀이되고 있다.
일이 되길 바란다면, 공무원들이 본연의 소명인 공공의 이익을 위해 다시 뛰길 바란다면, 이제 그들의 수장은 ‘내란 종식’의 기준과 방법, 그리고 범위를 재정립해야 한다. 최소한 사정기관들이 증거가 없는 사건에 대한 수사와 감사를 과감히 무혐의로 종결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해 주고, 죄가 없다고 판단된 사람은 다시 능력과 성과를 기준으로 등용할 수 있다는 보다 강한 신호를 보내야 한다. 그래야 분통 터지는 일이 줄어든다. 대통령도 국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