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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趙甲濟 칼럼] “개는 주인을 두려워하지만…”

중앙일보

2026.02.01 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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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갑제 언론인, 조갑제닷컴·TV 대표
1970년 봄, 동해안의 공군 레이더 사이트 헌병대. 제대를 석 달 남긴 고참 병장 조갑제(趙甲濟)는 고민에 빠졌다. 한 사병이 늦게 나왔다고 덩치 큰 헌병 하사가 정시에 와서 초소배치 대기 중인 우리에게까지 단체기합으로 턱에 주먹질을 하고 있었다. 퍽 퍽 하는 소리가 가까워지더니 하사가 내 앞에 섰다.

“잠깐, 나는 못 맞는다. 너보다 난 군번이 빨라.”

욕설과 함께 주먹이 날아오는데 내 주먹이 먼저 그의 얼굴을 강타, 뒤로 자빠지게 했다. 헌병대장이 뛰어나와 나를 조사실로 끌고 들어가 신문을 하기 시작했다.

김유신의 대당 결전이 만든 평화
냉전승리 시작은 이승만의 분노
엇갈린 한동훈과 한덕수의 운명
자유 위한 싸움, 평화로 보상받아

“왜 때렸어?”

“부하한테 맞을 순 없잖아요?”

“뭐, 너는 163기고 쟤는 162기야.”

“저는 161기로 훈련소에 들어와 늑막염에 걸려 두 달 입원하는 바람에 163기로 훈련소를 수료했지만 군번은 내가 앞이고 제대도 군번 순이므로 내가 쟤 상사입니다. 군대에서 상사가 부하에게 얻어터지면 됩니까. 더구나 쟤는 병장인데 헌병이라고 가짜 하사 계급장 달고 다니잖아요?”

헌병대장은 말문이 막혀 한참 생각하더니 “알았어. 가 봐”라고 했다.

그때 내가 맞는 쪽을 선택했다면 그 뒤 기(氣)가 꺾인 삶을 살았을 것이다. 주먹으로 지킨 자존심이고 마음의 평화였다.

2024년 12월 3일 밤, 한동훈 당시 국민의힘 대표는 비상계엄이 선포되자마자 ‘즉각적’으로 반응했다. 텔레비전 자막으로 맨 먼저 나온 메시지는 여당 대표의 반대성명이었다. 체포자 명단 맨 앞에 올라 있었던 그가 공무원들에게 불복종을 요구하면서 국회로 달려가는 것을 본 나는 즉시 유튜브에 “오늘 밤중에 계엄 해제가 이뤄져 실패할 것이다”는 영상을 미리 올렸다. 이진관 재판장이 한덕수 전 총리에게 내란중요임무종사죄를 적용, 구형보다 훨씬 무거운 징역 23년형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한 핵심 이유는 “왜 당신은 한동훈처럼 즉각적으로 막는 행동을 하지 않았느냐”는 취지의, 부작위에 대한 처벌의 성격을 띠고 있다. 친위 쿠데타를 막을 수 있는 직위에 있었던 여권의 세 사람 중 한동훈 당시 대표만 조건반사적 헌법수호 행동으로 역사적 사명을 다했고 머뭇거렸던 한덕수와 추경호는 투옥되거나 기소됐다.

우리 민족사에는 결정적 순간에 지도자들이 격정적으로 행동한 사례가 기록으로 남아 있다. 1950년 6월 25일 남침 보고를 받은 이승만 대통령은 무초 주한(駐韓)미국 대사를 불러 “우리는 남녀노소가 다 나와 몽둥이와 돌멩이를 들고서라도 싸울 것”이라 통보했다. 주한미군도 한미동맹도 없는 상태에서, 그것도 1:3(김일성, 모택동, 스탈린) 대치 국면에서 결사항전의 총력전을 선포한 것이다. 다음 날 트루먼 미국 대통령은 화답이라도 하듯이 애치슨 국무장관에게 “딘, 우리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저 개자식들을 막아야 합니다”라고 했다. 미군 파병과 7함대의 대만해협 파견을 즉각적으로 결단한 것이다(대만은 한국전 때문에 살았다). 한국전을 계기로 일본은 경제 부흥을 이루고 서독은 재무장, 나토는 군사동맹체로 강화되었으며 미국은 군사비를 네 배로 늘려 본격적인 대소(對蘇) 군비경쟁을 개시했다. 40년 뒤 총 한 방 쏘지 않고 소련은 무너진다. 이승만과 트루먼의 ‘즉각적’ 분노 표출이 냉전에서 자유세계가 이기는 원동력이었다.

서기 660년 당의 소정방(蘇定方)은 13만 군대를 끌고 와서 신라군과 함께 백제를 멸망시킨 뒤 내친 김에 신라군을 공격해 한반도를 먹으려고 했다. 정보를 입수한 태종무열왕이 대책회의를 여는데 김유신이 한 말이 삼국사기 열전(列傳)에 적혀 있다.

“개는 그 주인을 두려워하지만 주인이 다리를 밟으면 무는 법입니다.”

소정방은 신라의 결전 의지에 놀라 백제 왕 등 포로들을 사로잡아 돌아갔다. 김춘추, 김유신, 문무왕이 지휘한 신라군은 당군(唐軍)과 손잡고 백제·고구려·일본군을 차례로 배제한 뒤 당이 신라마저 삼키려 하니 7년간 세계제국을 상대로 결전, 한반도에서 밀어냄으로써 최초의 민족통일 국가를 만들었다. 한반도가 중심을 잡으니 당·신라·일본도 불교 문화를 공유하면서 동북아가 약 300년의 평화와 번영을 누린다. 세계사적, 문명사적 대전환이었다.

대한민국 국군은 건국의 초석, 호국의 간성, 근대화의 기관차, 민주화의 울타리 역할을 수행하며 휴전 이후 73년 간 이어지고 있는 평화를 지켜냈다. 윤석열 피고인은 이 위대한 국군 장교단을 병정놀이 같은 계엄으로 구렁텅이에 빠뜨렸으나 헌법이 명령하고 있는 ‘평화적 자유통일’은 신라의 삼국통일처럼 동북아에 항구적 평화를 선물하여 민족사 제2의 황금기를 열 것으로 기대된다. 국군에 부여된 ‘자유통일 뒷받침 무력’이란 헌법적 사명은 포기할 수 없다. 자유와 자주를 지키기 위한 싸움은 평화로 보상 받는다는 게 민족사의 교훈이다.


조갑제 언론인, 조갑제닷컴·TV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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