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계와 일부 언론이 수년째 인용해 온 대한의사협회(의협) 의료정책연구원의 이 주장은 가짜뉴스라는 학술적 분석이 나왔다. 수사 단계에 있는 피의자 수를 검사가 재판에 넘긴 피고인 수로 잘못 해석한 통계였다는 것이다. 형사 사건은 무혐의 등으로 수사가 종결될 수도 있기 때문에 피의자 수가 피고인 수보다 많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이 수치는 의료 사고에 따른 '사법 리스크'가 한국 필수의료 붕괴를 불러왔다는 주장의 핵심 근거로 활용돼왔다. 생명을 다루는 필수의료 특성상 의료 소송에 노출된 의사들이 형사 책임을 두려워해 필수과 선택을 꺼린다는 논리다.
박성민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법학 박사, 변호사)는 지난해 12월 대한의료법학회에 발표한 논문에서 이 잘못된 통계가 어떤 과정을 거쳐 확산했는지를 추적했다. 공신력 있는 기관에서 나온 가짜뉴스가 언론과 학계, 정책 논의 과정은 물론 의료계에 미친 파장은 작지 않았다.
박 교수는 지난 30일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의대생과 전공의들이 허위 정보 때문에 과도한 공포심을 갖고 필수의료를 회피할 위험을 방치해서는 안 된다"라며 "가짜뉴스라는 사실이 분명히 알려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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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 日 3명 기소? 가짜뉴스…널리 알려져야"
'의사가 매일 2~3명씩 기소된다'는 주장은 2024년 의·정 갈등 국면과 맞물려 의료진의 처벌 위험이 과도하다는 논리를 뒷받침하는 근거로 퍼져 나갔다. 이 주장의 출처는 의협 의료정책연구원의 2022년 발간한 『의료행위의 형벌화 현황과 시사점』보고서다. 해당 보고서는 2013~2018년 한국에서 검찰이 의사를 업무상과실치사상죄로 기소한 건수가 연평균 745.8건에 달한다고 밝혔다.
당시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공익법무실습에서 학생들을 지도했던 박 교수는 이 수치를 접하고 '숫자가 너무 많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그는 수업 중 학생들에게 "뭔가 이상하니 한 번 찾아보자"고 제안했지만, 실제 통계를 확인하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몇 명의 의사가, 어떤 사유로 기소됐고 형사 재판을 받았는지 보여주는 수사기관이나 법원 자료를 구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러다 지난해 8월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의협 보고서의 수치가 '기소 건수'가 아니라 '피의자 수'를 가리킨다는 중대한 오류를 짚었다. 이를 계기로 박 교수는 해당 수치가 언론과 학술 논문, 국회 토론회 등 공론장을 거쳐 확산하는 과정을 본격적으로 살펴봤다. 박 교수는 "사실 아닌 정보가 사회에 유통된 뒤 '아니면 말고' 식으로 남는 구조는 매우 위험하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연구"라고 설명했다.
의협 연구가 의료사고처리 특례법 제정 등 제도 변화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는 단정하기 어렵다. 그러나 해당 정보가 가짜뉴스라고 널리 알려져야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는 게 박 교수의 설명이다. 박 교수는 "의대생이나 전공의들이 필수 의료를 선택할 때 형사처벌 위험을 과도하게 인식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의료계는 송치나 기소로 이어지지 않더라도 고소·고발로 인해 의료진이 수사 과정에서 겪는 심적 부담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박 교수는 "의사에게 형사 리스크가 전혀 없다는 게 아니라 실제보다 과장돼 인식되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연구"라며 "하루 2~3명이 기소된다는 것과 2~3명이 고소당한다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라고 말했다.
박 교수는 의사 기소 건수라는 숫자보다 중요한 것은 의료 사고의 사실관계라고 강조했다. "왜 치료받던 환자가 죽거나 상태가 더 악화했는지가 핵심"이라는 것이다. 그는 대표적인 사례로 2019년 편도선 제거 수술을 받은 뒤 뇌사 상태에 빠졌다가 숨진 고(故) 김동희(2020년 사망 당시 만 4세)군 사건을 들었다. 2023년 서울서부지검은 김군이 응급실 여러 곳을 전전하는 과정에서 의료진의 과실이 있다고 보고 의사 5명을 재판에 넘겼다. 김군이 사망한 지 1204일(3년 3개월) 만이다.
박 교수는 "죽지 않을 수 있었던 아이가 사망했고, 검찰 수사를 통해 그 경위가 밝혀진 사건"이라며 "만약 (의료사고 관련)법이 바뀌어 의료사고에 대한 수사가 어려워진다면 의료사고 피해자는 어디에 호소해야 하느냐는 의문이 남는다"고 말했다. 면책 등 의료진의 소송 부담을 완화하는 쪽으로 법과 정책이 바뀌더라도 의료사고를 당한 환자와 그 가족이 사실관계를 확인할 수 있는 제도를 함께 고민해야 한다는 뜻이다.
박 교수의 논문을 둘러싼 환자 단체와 의료계의 시각 차이는 뚜렷하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는 "허위로 드러난 의사 형사기소 관련 정보를 기초로 의료사고 형사처벌을 면제하는 정책과 입법을 추진해서는 안 된다"고 촉구했다. 반면 의협 의료정책연구원은 "의료 과실을 범죄로 만드는 구조를 외면한 채 가짜뉴스라는 낙인으로 논의를 종결하는 방식은 제도 발전과 환자 이익 모두에 기여하기 어렵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