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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중앙] 세계 최초 서울 나들이 온 ‘여인의 초상’과 근대미술 여행

중앙일보

2026.02.01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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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빛으로 빛나는 대표작 ‘키스’로 유명한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Gustav Klimt, 1862~1918)의 작품을 다들 한 번쯤 봤을 텐데요. 그중에서도 잃어버렸다가 23년이 지난 후 되찾아 더욱 화제가 된 걸작 ‘여인의 초상’을 한국에서 만나볼 기회가 생겼어요. 이탈리아 피아첸차의 리치 오디 현대미술관(Galleria d’Arte Moderna Ricci Oddi)과 마이아트뮤지엄이 공동으로 기획한 특별전 ‘클림트와 리치 오디의 기적: 이탈리아 리치 오디 현대미술관 컬렉션’에서죠.
이탈리아 근대미술의 거장들이 선보인 인물화·풍경화 등을 통해 예술 양식과 사조의 흐름을 조망할 수 있는 전시다.

리치 오디 현대미술관의 주요 소장품을 통해 이탈리아 근대미술의 거장들이 선보인 인물화·풍경화·장르화 등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까지 변화한 예술 양식과 사조의 흐름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전시인데요. 페데리코 잔도메네기, 텔레마코 시뇨리니, 안토니오 만치니, 스테파노 브루찌, 프란체스코 파올로 미케티 등 유럽 미술의 거장 및 이탈리아 미술사에서 주목받아 온 주요 작가들의 작품을 포함해 총 70여 점의 작품을 선보입니다. 특히 클림트의 화제작 ‘여인의 초상’이 도난 후 23년 만에 극적으로 재발견된 뒤 이탈리아 외 국가에서 최초로 공개되는 기념비적인 전시죠.
햇살이 드리운 정원에서 젊은 여인의 순간을 포착해 부드러운 자연광과 섬세한 색채 대비가 인상적이다.

이탈리아 피아첸차시에 위치한 리치 오디 현대미술관은 피아첸차 출신 법학자이자 예술 후원가 주세페 리치 오디(Giuseppe Ricci Oddi, 1868~1937)의 개인 수집품을 바탕으로 설립되었어요. 그는 1897년부터 본격적인 작품 수집을 시작했으며, 1924년 자신의 소장품을 위한 전용 미술관 건립을 결심하고 부지를 기증했죠. 이후 건축가 줄리오 울리세 아라타 설계로 옛 수도원 건물이 개조되어 지금의 미술관이 완성되었습니다.
바다와 강, 호수는 빛과 색, 움직임이 끊임없이 변하는 공간으로 화가들에게 자연을 관찰하는 동시에 내면을 비추는 매개가 되었다.

현재 미술관은 약 700점에 달하는 회화와 조각 작품을 소장 중인데, 주로 1830년대부터 1930년대 초 이탈리아 작가들의 작품으로 구성되어 있죠. 수집은 지역과 시대를 아우르며, 북부 이탈리아의 인상주의·상징주의와 마키아이올리 등의 흐름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마키아이올리는 19세기 후반 이탈리아 토스카나에서 활동한 예술가 집단 및 예술 운동으로 당시 이탈리아 미술 아카데미의 구식 관습에서 벗어나 자연광·그늘·색상을 직접 포착하기 위해 많은 그림을 야외에서 그렸죠.
눈이 갠 직후의 밀라노 두오모 광장을 포착한 도시 풍경화. 젖은 도로, 흐릿한 겨울 하늘이 섬세하게 어우러진다.

자연 채광을 활용한 천장 구조와 역사적 건축물의 고풍스러운 분위기가 어우러진 총 19개 실의 전시 공간을 가진 이 미술관은 단순한 개인 컬렉션을 넘어, 개관과 동시에 피아첸차시에 기증됐어요. 공공 미술관으로 운영되며 지역 사회를 위한 교육 및 문화 활동의 중심지로도 기능하죠. 대표적인 소장품으로는 1997년 도난되었다가 2019년 극적으로 발견된 구스타프 클림트의 작품 ‘여인의 초상’이 있으며, 이 외에도 이탈리아 미술사를 대표하는 작가들의 작품이 다수 포함되어 있습니다.

크리스티아노 반티는 현실에 대한 관찰과 빛·색채 연구에 공감하면서 독자적인 화풍을 모색했다.

그 주요 소장품을 볼 수 있는 ‘클림트와 리치 오디의 기적: 이탈리아 리치 오디 현대미술관 컬렉션’은 13개의 섹션을 통해 바다와 베네치아의 풍경, 여성 및 여가 모습 등을 전시해 예술가들이 추구하는 미의 가치와 철학을 살펴볼 수 있어요. 처음으로 만나는 ‘풍경’ 섹션의 대표적인 화가로는 안토니오 폰타네시가 있죠. 그는 풍경을 단순히 모사하는 대상이 아니라 진정으로 인식하고 경험해야 할 존재로 이해했으며, 잔잔한 쓸쓸함과 무한을 향한 그리움을 빛의 섬세한 표현을 통해 나타냈어요. 리치 오디는 폰타네시를 각별히 높이 평가해 80점이 넘는 작품을 수집했죠.

옆길로 벗어난 양과 숫양을 몰아가는 어린 목동의 모습을 통해 한낮의 아펜니노 고원 풍경을 사실적으로 담아낸 ‘반항아들’.

‘아펜니노와 그 사람들’ 섹션도 놓칠 수 없습니다. 이탈리아에는 반도를 따라 남북으로 이어지는 아펜니노 산맥이 있는데요. 19세기 피아첸차의 화가들은 아카데미의 관습에서 벗어나 아펜니노 산맥의 거친 자연 속으로 발걸음을 옮겼어요. 그들이 마주한 것은 꾸며진 이상향이 아니라 진실한 자연의 표정이었습니다. 특히 스테파노 브루치는 발 누레 계곡에 머물며 목동과 농부, 산중의 삶을 다큐멘터리적인 정밀함과 따뜻한 시선으로 기록했죠. 그의 작품은 낭만적 환상이 아닌, 자연과 인간이 공존하는 현실의 깊이를 보여줘요. 옆길로 벗어난 양과 숫양을 몰아가는 어린 목동의 모습을 통해 한낮의 아펜니노 고원 풍경을 사실적으로 담아낸 ‘반항아들’을 보면 수평 구도 속에서 인물과 동물의 움직임, 팽팽한 긴장감이 섬세한 원근과 빛의 표현으로 살아납니다. 이처럼 평온한 장면 속에 인간의 의지를 담아내는 능력은 브루치 예술의 중요한 특징으로 평가받았어요.

19세기 풍경화에서 물은 배경이 아니라 감정과 사유를 담아내는 살아 있는 존재로 등장한다.

19세기 풍경화에서 물은 더 이상 배경이 아니라 감정과 사유를 담아내는 살아 있는 존재로 등장해요. 바다와 강, 호수는 빛과 색, 움직임이 끊임없이 변하는 공간으로 화가들에게 자연을 관찰하는 동시에 내면을 비추는 매개가 되었습니다. ‘물의 풍경’ 섹션의 작품들은 바다를 풍경이자 삶의 공간으로 보여주죠. 파도와 하늘, 노동과 휴식, 고요와 움직임이 겹쳐지는 화면들 속에서 물의 풍경은 자연의 리듬과 인간의 감정이 만나는 장소로 펼쳐집니다.
화가들의 시선 속에서 베네치아는 건물의 도시가 아니라 하늘, 빛과 물이 주인공이 되는 풍경으로 다시 태어났다.

조르지오 벨로니는 브레라 아카데미에서 수학한 뒤 리구리아와 토스카나 해안을 계기로 바다를 핵심 주제로 삼은 화가입니다. 그는 바다를 단순한 자연 풍경이 아닌 감각과 사유의 대상으로 바라보며, 빛과 움직임의 변화를 집요하게 탐구했죠. ‘황금빛 반사’는 빛과 바다가 만들어내는 긴장과 리듬을 시적으로 응축한 대표작입니다. ‘베네치아와 시적 화가들’에서는 베네치아의 다채로운 풍경을 만날 수 있는데, 구글리엘모 차르디의 ‘산마르코 광장’은 부드러운 색조와 향수가 가득한 분위기의 작품으로, 차르디 특유의 몽환적인 감수성이 드러나죠.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회화 속 여성은 하나의 고정된 모습이 아니라 다양한 얼굴로 등장한다.

이 전시에서 빼놓을 수 없는 주제가 ‘여성’인데요.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회화 속 여성은 하나의 고정된 모습이 아니라 다양한 얼굴로 등장합니다. ‘신성한 피조물’ 섹션의 작품들은 여성을 이상과 현실, 꿈과 일상 사이를 오가는 존재로 그려 근대 사회 속에서 새롭게 정의되는 여성성을 보여주죠. 베네치아 출신 화가 페데리코 잔도메네기가 그린 여성들은 프티 부르주아 계층으로, 사적인 공간 속에서 소박하고 친밀한 분위기로 담아냈습니다. ‘흰색 칼라를 한 소녀’는 비정형적인 시점과 분할주의를 연상시키는 붓질을 통해 그의 실험성과 색채 감각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에요.

안토니오 만치니는 긴 붓과 철망 격자를 활용한 작업 방식으로 고전적인 무게감과 빛이 만들어내는 효과를 한 화면에 구현했다.

전시를 보다 보면 작품과 잘 어울리는 액자에도 시선이 가는데요. 리치 오디는 가장 좋아했던 작가의 작품과 그에 맞는 액자를 수집했죠. 액자를 먼저 구해두고 그에 맞춰 작가에게 그림을 의뢰했을 정도로 액자에 대한 애착이 컸다고 해요. 작품의 일부인 액자도 주의 깊게 보는 걸 추천합니다.


전시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클림트의 ‘여인의 초상’이에요. 리치 오디 현대미술관의 대표작 ‘여인의 초상’은 우아한 겉모습 이면에 극적인 반전을 품고 있죠. 20세기 초 빈 미술계를 이끌었던 클림트는 화려한 장식과 심리적 깊이가 돋보이는 여성 초상화로 명성을 떨쳤습니다. 특히 신원이 밝혀지지 않은 모델들을 그린 ‘세련된 여인들’ 시리즈는 당시 독보적인 스타일의 아이콘이었죠. ‘여인의 초상’ 역시 이 계보에 속하는 듯하지만 훨씬 복잡한 사연이 숨겨져 있습니다.

캔버스 위에 또 다른 그림이 덧입혀진 ‘이중 초상’으로 유명한 구스타프 클림트의 ‘여인의 초상’이 잃어버렸다가 23년이 지난 후 되찾은 뒤 이탈리아 외 국가에서 최초로 공개된다.

사실 이 그림은 캔버스 위에 또 다른 그림이 덧입혀진 ‘이중 초상’이에요. 1910년경 그려진 원작은 ‘백피쉬(Backfisch·풋내기 소녀)’라 불리던 작품으로, 챙이 넓은 모자와 어깨 아래로 흘러내린 푸른 숄을 두른 대담한 모습이었습니다. 이 소녀의 정체에 대해서는 1911년 스스로 생을 마감한 빈의 여인 리아 뭉크라는 설이 유력해요. 유가족이 요절한 딸을 기리기 위해 클림트에게 의뢰한 초상화라는 겁니다. 하지만 클림트가 그녀의 이름을 명시하지 않았고, 의뢰인인 유가족조차 이 작품을 소유한 기록이 없어 그 정체는 여전히 미스터리죠.


1916년경 클림트는 판매되지 않은 이 작품을 당대의 취향에 맞춰 과감히 수정했습니다. 모자를 지우고 어두운 스톨 대신 밝은 꽃무늬 숄을 입혀 인물을 보다 부드럽고 몽환적인 분위기로 탈바꿈시킨 거죠. 작품의 여정 또한 극적입니다. 클림트 사후 여러 수집가를 거쳐 1925년 리치 오디의 컬렉션이 됐는데, 1997년 액자만 건물 채광창 옆에서 발견되고 그림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어요. 그로부터 23년 후인 2019년 12월, 이 그림은 다시 미술관에서 발견됩니다. 미술관 정원사들이 건물 벽을 뒤덮은 담쟁이덩굴을 제거하던 중 우연히 찾아낸 거죠. 감정 결과 진품으로 확인되었지만, 누가 그림을 훔쳤고 어떻게 다시 돌아오게 되었는지는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아 있어요. 발견 시점이 크리스마스를 약 2주 앞둔 때였던지라 이 사건은 ‘크리스마스의 기적’으로도 불립니다. 지워진 밑그림과 다시 그려진 얼굴, 그리고 사라졌다 돌아온 시간은 이 작품을 단순한 초상화를 넘어 하나의 거대한 서사로 완성하고 있어요.

인상주의부터 모더니즘의 영향을 받아 그려온 각각의 주제와 색채, 빛의 흐름을 쫓아가다 보면 이탈리아 근대미술의 매력에 깊이 매료된다.

작품에 얽힌 이야기가 풍성하다 보니 작품에 대한 관심도 뜨거웠죠. 사진을 찍기 위해 줄을 선 관람객들의 모습도 쉽게 볼 수 있고, 이 작품 하나만을 위해 전시를 관람하는 사람들도 많다고 해요. 비교적 가까이에서 감상할 수 있도록 설치된 다른 작품들과 달리, ‘여인의 초상’은 리치 오디 미술관의 요청에 따라 보안을 위해 방탄유리로 된 패널 속에 별도 설치되어 있습니다. 도난 사건 이후 이탈리아 외 국가에서 최초로 공개돼 그 의미가 큰데요. 다른 나라도 아닌 한국에서, 미스터리한 명화를 직접 볼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이므로 직접 확인해 보길 바랍니다. 무엇보다 한국에서는 이름이 다소 생소한 이탈리아 화가들이지만, 인상주의부터 모더니즘의 영향을 받아 그려온 각각의 주제와 색채, 빛의 흐름을 쫓아가다 보면 이탈리아 근대미술의 매력에 깊이 매료될 거예요.


‘클림트와 리치 오디의 기적: 이탈리아 리치 오디 현대미술관 컬렉션’
기간 3월 22일(일)까지(2월 17일 휴관)
장소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 518 섬유센터빌딩 B1층 마이아트뮤지엄
관람 시간 오전 10시~오후 7시 40분(입장 마감 오후 7시)
관람료 성인 2만5000원, 청소년 1만8000원, 어린이 1만6000원



한은정([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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