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금·은값 추락의 배경에 중국발 투기가 크게 작용했다는 해석이 나왔다. 케빈 워시 연방준비제도(Fed) 의장 지명은 ‘방아쇠’ 역할을 했을 뿐이고 가격 조정은 이미 투기 거품 속에서 예견돼 있었다는 의미다.
블룸버그는 1일(현지시간) “최근 몇 주간 중국 투기꾼들이 금과 은을 대량 매수하며 상승세를 과열시켰다”며 “중국 투기꾼들이 금과 은 가격 폭락의 발판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매파(통화 긴축 선호)로 분류되던 워시를 Fed 의장 후보로 지목한 지난달 30일 뉴욕상품거래소에서 은 선물 가격은 하루 만에 31% 폭락했다. 금 선물도 트로이온스당 4745.10달러에 마감하며 하루 만에 11% 넘게 하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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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내 투기 과열…금 프리미엄 100달러까지
이를 두고 블룸버그는 “최근 몇 주 동안 상승세는 더욱 광란적으로 변했는데, 이는 개인 투자자부터 대형 펀드에 이르기까지 중국 투기꾼들의 대량 매수세에 힘입은 것”이라며 “가격이 급등하자 추세 추종형 투자(CTA)까지 가세하면서 상승세에 거품을 더욱 키웠다”고 분석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워시 지명 이후 금·은 투자 수요가 달러나 미 국채로 이동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것만으로는 시장 규모가 크고 유동성도 높은 금 가격의 추락을 모두 설명할 수 없다는 전제도 달았다. 세계 최대 헤지펀드인 브리지워터 어소시에츠의 원자재 책임자를 지낸 알렉산더 캠벨은 “중국이 팔았고, 이제 우리는 그 후폭풍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중국에선 투기 수요로 인해 귀금속 가격이 국제 기준치를 넘어서고 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지난달 25일 상하이 시장에서 은 프리미엄은 온스당 5.78달러, 금 프리미엄은 온스당 109.28달러였다. 가격이 치솟으면서 지난달 27일에는 중국 온라인 금 거래 플랫폼 ‘제워루이’가 투자금을 돌려주지 못해 투자자들이 본사로 몰려가 항의하는 시위도 벌어졌다.
중국의 귀금속 사재기 배경엔 미국에 대한 불신이 있다. 최진영 대신증권 연구원은 “지금까지 금과 은을 매입한 주체는 중국과 인도, 러시아 등 중앙은행과 개인 투자자들”이라며 “이들은 미 Fed의 독립성보다는 보호무역주의, 고립주의 등 미 연방정부에 대한 불신 때문에 달러를 비롯한 모든 법정화폐 대신에 금과 은을 매입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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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락 전날 “금 거품 최고조” 경고도
애초 금·은값에 거품이 껴있었단 분석이 나오면서 이번 급락을 예언한 이들도 재조명되기도 했다. ‘돈나무 언니’로 알려진 캐시 우드 아크인베스트 최고경영자(CEO)는 지난달 29일 X에 “현재 시장의 버블은 인공지능(AI)이 아니라 금”이라며 “금 시가총액이 미국 통화공급량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사상 최고치에 도달했다. 이는 상승 끝자락에서 흔히 나타나는 신호”라고 썼다.
금보다 더 큰 충격을 받은 은의 경우 상장지수펀드(ETF) 등 레버리지 투자 비중이 높아 낙폭을 키웠다. 최근 은 가격이 급등하면서 시장에 레버리지가 과도하게 쌓였고, 가격이 꺾이자 마진콜(증거금 추가 납부요구)을 피하려는 강제 청산 물량이 쏟아져 하락을 증폭시켰다는 분석이다.
지난달 30일 세계 최대 규모 은 ETF인 ‘아이셰어즈 실버 트러스트’의 일일 거래대금은 410억 달러로, 애플과 아마존의 하루 거래대금을 합친 것보다 많았다.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일간 거래대금이 20억 달러를 넘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일각에선 1980년 ‘헌트 형제 사건’이 재현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미국 텍사스주 석유 재벌 헌트 형제는 1979년 은 시장 독점을 위해 1년간 전 세계 은의 3분의 1 가까이를 사재기했다. 그 결과 은 가격은 1979년 여름 온스당 10달러에서 이듬해 1월 50달러까지 치솟았다가 3월 당국의 규제로 다시 온스당 10달러까지 폭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