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천국’ 미국에서도 비인기 종목 선수들의 상황은 녹록지 않다. 올림픽에 나갈 실력을 갖춰도 스폰서 없이 활동하는 경우가 많고, 훈련 비용을 스스로 부담할 때도 있다. 동계올림픽 스켈레톤도 그중 하나다. 선수층도 얇아 수시로 충원한다.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에 미국 여자 대표팀으로 출전하는 미스티크 로(Mystique Ro, 32)도 늦깎이 선수다. 고교와 대학 시절 초반에 허들을 주 종목으로 하는 육상 선수였던 로는 노스캐롤라이나의 퀸스대학(Queens University of Charlotte) 재학 중 슬라이딩 스포츠(봅슬레이·스켈레톤)를 처음 접했다. 처음 친구가 봅슬레이를 권할 때만 해도 “그렇게 위험한 걸 탄다고?”라며 깜짝 놀랐지만, 루키 캠프에서 썰매를 접한 후 이내 빠져들었다. 체구(163㎝)가 작다는 이유로 코치가 봅슬레이보다 스켈레톤을 권했다.
“스켈레톤은 인간 펭귄이에요.” 로가 스켈레톤을 대하는 방식이다. 두 팔(flipper)을 딱 부치고 빙판을 도약대 삼아 대양으로 뛰어드는 펭귄처럼 스켈레톤은 썰매에 배를 깔고 누워 정면을 응시하면서 시속 120~130㎞로 얼음 위를 질주한다. 빙판과 턱 사이의 틈은 불과 5㎝. 무시무시한 스피드는 공포로 다가오지만, 썰매에 몸을 맡기고 나면 물속을 유영하는 것과 같다. 눈치만 보고 있다가 가장 용감한 ‘퍼스트 펭귄(First Penguin)’이 바닷속으로 뛰어들면 그것이 무리의 노멀(Normal)이 되는 것처럼 말이다.
그는 스켈레톤 입문 8년 만인 지난해 세계선수권 혼성 계주와 여자 1인승에서 각각 금메달과 은메달을 따냈다. 미국에서 8년 만에 나온 세계선수권 금메달이다. 멀리뛰기, 투척, 허들, 계주, 단거리 달리기, 7종 경기 등 육상으로 단련한 근력에서 나오는 빠른 스타트가 장점이다.
“육상 선수로 10년간 갈고닦은 기술이 스켈레톤에 큰 도움이 됐어요.” 올림픽닷컴과 인터뷰에서 로가 밝힌 “비결”이다. 두 종목 모두 독특한 리듬을 갖고 있는데, 트랙에 접근하는 방식이나 허들 사이의 리듬 그리고 허리를 숙인 채 달리는 어색한 자세 등이 스켈레톤과 닮았다.
외신에 따르면 로는 한국계다. 미 해병대에서 근무한 한국인 아버지 규 로(Kyo Ro)와 흑인 어머니 타마라 사이에서 태어났다. 보기 드문 대가족으로 쌍둥이 동생을 포함해 11남매의 장녀다. 그는 “스포츠는 개성을 드러내고 진정한 내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통로”라고 했다.
청소년기엔 검은 피부와 곱슬머리, 정체성 혼란으로 인해 마음고생도 한 적도 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자신의 장점이자 경쟁력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흑인 여성 스포츠 스타 카멜리타 지터(육상), 세리나 윌리엄스(테니스) 등에게서 영감을 받았다.
“지터가 탄탄한 허벅지와 종아리로 결승선을 통과할 때, 윌리엄스가 강력한 리턴 샷을 날 때 그의 팔 근육을 봤어요. 저도 그들처럼 근육질이었고, 남자처럼 보였고, 남자애들은 저의 그런 외모를 좋아하지 않았죠. 하지만 지터와 윌리엄스 같은 이들은 내가 놀림을 받는 특징들을 갖고 있었지만, 자신이 열정을 쏟는 스포츠에서 최고의 수준이 도달했어요. 그것이 저를 받아들이는 데 계기가 됐어요.”
스켈레톤 혼성 계주는 이번 올림픽에서 처음 선보이는 종목이다. 남 ·녀 선수가 각각 달려 합산한 기록으로 순위를 매긴다. 로는 파트너 오스틴 플로리안과 함께 금메달 사냥에 나선다. 스켈레톤 강국 독일의 아성을 무너뜨릴 수 있는 팀으로 꼽힌다.
스켈레톤은 한국에서 친숙한 종목이다. 2018년 평창 올림픽에서 아시아 썰매 사상 첫 올림픽 금메달을 딴 윤성빈 덕분이다. 이번 올림픽에선 정승기(강원도청)가 입상을 노린다. 여섯 번 출전한 월드컵 중 4경기에서 5위권 성적을 거뒀다. 스켈레톤(Skeleton)이라는 이름은 썰매의 핸들 모양이 사람의 갈비뼈를 닮은 데서 유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