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들어 사상 최고치를 갈아치우던 코스피가 2일 전 거래일 대비 274.69포인트(5.26%) 하락한 4949.67에 마감했다. 이날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코스피가 5000선 아래로 내려온 것은 지난달 26일 이후 5거래일 만이자, 하루 기준 역대 최대 하락 폭이다. 코스닥 지수도 51.08포인트(4.44%) 내린 1098.36으로 마쳤다.
미국의 연방준비제도(Fed) 차기 의장으로 케빈 워시 전 Fed 이사 지명을 계기로 통화정책의 불확실성이 커졌고, 금ㆍ은 가격 급락에 따른 마진콜(추가 증거금 요구) 여파가 아시아 증시 전반의 약세로 번졌다.
이날 코스피에서 약 227조원, 코스닥에서 28조원 등 국내 증시에서 255조원에 이르는 시가총액이 증발했다. 이날 새해 첫 ‘매도 사이드카’도 발동됐다. 오후 12시31분 코스피200 선물이 전 거래일 대비 5% 이상 하락한 상태가 1분 넘게 지속되며 프로그램 매도 주문이 일시 정지됐다. ‘한국형 공포지수’로 불리는 코스피200변동성지수(VKOSPI)는 46까지 오르며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5년10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 수치가 40을 넘으면 시장이 불안 상태로 빠져들었다는 징후로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개인투자자는 오히려 이날 급락한 삼성전자(-6.29%)·SK하이닉스(-8.69%)를 중심으로 유가증권시장에서 4조5873억원 ‘사자’에 나서며 ‘역대 최대 순매수’ 기록을 갈아치웠다. 이른바 ‘동학개미운동’이 정점에 달했던 2021년 1월 수준을 뛰어넘었다. 외국인과 기관은 각각 2조5323억원·2조2128억원을 순매도했다.
한국 뿐 아니라 일본 닛케이225가 이날 1.25% 하락 마감했고, 중국 상하이·홍콩 항셍·대만 가권 등이 1~2% 내리며 동반 약세를 보였다.
매파 성향의 케빈 워시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이사가 차기 연준 의장으로 낙점됐다는 소식이 불안 요소로 작용했다. 연초 이후 코스피·코스닥이 한 달 만에 20% 넘게 급등하며 상승 피로감이 누적된 가운데, "워시 지명이 차익실현 명분을 쥐어준 셈"(신한투자증권 이재원)이란 평가가 나온다.
여기에 간밤 미국 선물시장에서 금·은 등 귀금속 가격이 급락한 점도 아시아 증시 하락의 촉매로 작용했다. 최근 시카고상품거래소(CME)는 은 선물 증거금을 기존 9% 수준에서 15%까지 단기간에 인상했다. 고(高)레버리지 포지션(빚을 많이 내 투자한 거래)을 유지해온 투자자에 추가 증거금을 내라는 요구가 나왔고, 이를 마련하기 위한 매도세가 주식과 지수선물, 암호화폐 시장으로 번졌다는 것이다.
서상영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아시아 시장 급락의 출발점은 경기나 기업의 기초체력이 아니라 금과 은의 급락으로 촉발된 담보 부족과 레버리지 구조의 붕괴로 추정된다”며 “특히 그동안 상승이 컸던 반도체 종목 중심으로 외국인의 공격적인 매도세가 지수 하락을 확대했다”고 분석했다.
특히 한국은 수출 대형주 비중이 높은 코스피와 성장ㆍ기술주 중심의 코스닥이 직격탄을 맞았다. 최근 미국 기술주 실적 발표를 계기로, 인공지능(AI)에 대한 천문학적인 투자 대비 수익성에 대한 의문이 커진 점도 투자 심리를 위축시켰다는 해석도 나온다.
다만 한지영 키움증권 연구원은 “지수 상승 속도 부담이 큰 구간에서 숨 고르기성 조정 가능성은 열어두는 게 맞지만, 하루 4~5% 하락은 과도한 측면이 있다”며 “이 시점에 ‘패닉 셀링’에 동참하는 것은 실익이 크지 않다”고 짚었다.
이날 미국 달러 대비 원화 환율(원ㆍ달러 환율)은 1464.3원에 마감했다. 외국인 주식 매도 등의 영향으로 전 거래일보다 24.8원 상승(원화값 하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