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팝이 그래미 어워즈 본상(General field, 올해의 앨범·레코드·노래·신인상 등 6개 부문) 후보에 오르고 장르 상을 수상하며 K팝의 세계적 위상이 달라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간 국내 대형 기획사를 중심으로 펼쳐진 글로벌 마케팅 공략, 달라진 미디어 환경 등이 K팝 세계화의 밑바탕이 됐다는 분석이다.
올해 그래미 어워즈에서 K팝은 눈에 띄는 결과를 냈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케데헌)’ 주제가 ‘골든’이 ‘베스트 송 리튼 포 비주얼 미디어’ 부문에서 수상했고, ‘골든’, 로제와 브루노 마스가 부른 ‘아파트’, 하이브와 미국 게펜 레코드가 합작해 만든 캣츠아이가 ‘올해의 레코드’ ‘올해의 노래’ ‘신인상’ ‘베스트 팝 듀오/그룹 퍼포먼스’ 등의 후보에 올랐다. 지금까지 K팝이 그래미 어워즈에서 거둔 성과는 방탄소년단(BTS)가 2021년부터 2023년까지 3년 연속 ‘베스트 팝 듀오/그룹 퍼포먼스’ 부문 등의 후보에 오른 게 전부였다.
지금처럼 K팝의 글로벌 영향력이 커진 데엔 2000년 중반부터 국내 대형기획사들을 중심으로 추진된 마케팅 전략이 주효했다는 평가다. SM·JYP·YG엔터테인먼트 등은 꾸준히 해외 무대의 벽을 두드렸다. 이들은 2000년대 중반부터 외국인 멤버를 포함시키는 방식으로 현지화를 시도했다. 이른바 ‘아이돌 2세대’로 불리는 슈퍼주니어, 투피엠(2PM), 투애니원(2NE1) 등이 대표적이다.
BTS로 대표되는 3세대는 한국어가 아닌 외국어로 음반을 발표하거나 소셜미디어로 외국 팬들과 직접 소통하며 팬덤을 키웠다. BTS는 2020년 영어로 낸 신곡 ‘다이너마이트’로 한국 가수 최초로 빌보드 핫 100 1위를 달성했으며, 그 해 11월 그래미 후보로 선정됐다.
4세대부터는 아예 데뷔부터 글로벌 무대를 공략하는 그룹들이 나왔다. 스트레이키즈·에스파 등은 데뷔 음원을 국내외에 동시 발매했으며 해외 인터뷰 등에도 적극 나섰다.
달라진 미디어 환경 역시 K팝에는 기회였다. 소수의 방송사를 통하지 않고도 콘텐트를 유통할 수 있게 한 유튜브 덕에 싸이의 ‘강남스타일’(2012) 뮤직비디오가 세계적 유명세를 떨칠 수 있었다. 2013년 데뷔한 BTS는 그 무렵 널리 퍼지기 시작한 유튜브·인스타그램 등 소셜미디어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글로벌 팬덤을 결집시켰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엔 콘텐트 플랫폼 OTT가 새로운 장을 열어줬다. K팝 아이돌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데헌은, 그간 ‘소수의 팬덤이 만든 현상’으로만 인식됐던 K팝 대중화의 가능성을 보여줬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은 지난달 27일(현지시간) ‘케데헌이 어떻게 미국인들을 케이팝으로 이끌었나’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기존 K팝은 전 세계 음반 판매량이 많은 반면, 미국 내에서 자연스럽게 스트리밍 되는 히트곡을 만들어내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며 “케데헌의 성공은 K팝의 구조적 확장 가능성과 문화적 주류화를 보여주는 실험이자 이정표로 남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K팝의 글로벌 진출은 이제 아이돌 제작·육성 시스템이 통째로 바다를 건너는 방식으로 진행 중이다. 하이브, JYP 등은 유니버설 뮤직 그룹, 리퍼블릭 레코드 등 미 음반사와 합작해 K팝 스타일의 아이돌 그룹을 제작하고 있다. 이번 그래미 신인상 후보로 오른 6인조 걸그룹 캣츠아이도 그렇게 탄생했다.
정덕현 평론가는 “한국인이 한 명밖에 없는 캣츠아이처럼 K팝 ‘K’를 지우려는 시도는 세계화 측면에서 보면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라면서도 “이로 인해 팝과 차별점이 사라지며 K팝이 잊힐지, 반대로 또 다른 장르를 개척할지 과도기에 서있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배국남 평론가는 “장르가 모호하다는 K팝에도 ▶두 개 이상 음악 장르의 혼합 ▶기승전결 구조의 편곡 ▶한국어와 영어 혼용 가사 등 음악적 특징이 있다”며 “이 밖에도 한국 제작사의 육성 시스템 등을 통해 탄생한 그룹이라면 한국인 멤버 없이도 K팝 그룹이라 명명할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다만 “수년 전부터 계속 되던 연습생 인권 침해 문제, 불공정 계약 등 고질적인 문제점 역시 K팝의 글로벌화와 함께 해결해야 할 과제”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