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서비스가 나올 때마다 강력하게 반발하며 퇴출을 외쳐 온 택시업계가 현대자동차·카카오모빌리티 등 주요 모빌리티 기술 기업에 손을 내밀었다. 자율주행이라는 거대한 기술적 흐름을 더 이상 외면하기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미국과 중국 중심으로 확산하는 로보택시(자율주행 택시) 서비스가 국내에서도 자리잡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법인택시 단체인 전국택시운송사업조합연합회(이하 택시연합회)는 2일 현대차와 카카오모빌리티, 오토노머스A2Z, 휴맥스모빌리티 등과 함께 ‘법인택시 면허’ 기반 자율주행 전환을 위한 업무 협약을 체결했다. 협약의 골자는 국내 자율주행 기술과 인프라를 바탕으로 택시 면허 기반의 자율주행 서비스를 만드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자율주행 택시 호출 플랫폼과 관제 시스템을 구축하고, 차량관리와 사고 조사 체계 등을 마련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번 협약은 택시업계가 지난해 9월 플랫폼·자율주행 업계에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2010년대 이후 한국은 기술 기업들이 운송서비스 혁신에 뛰어들 때마다 택시업계 극렬한 반대에 부딪혀 퇴출되면서 ‘모빌리티 혁신의 무덤’이라고까지 불렸다. 2013년에 국내에 진출한 승차공유 서비스 우버는 2015년에 퇴출됐다. 2018년 쏘카가 선보인 기사 포함 렌터카 서비스 ‘타다’는 2020년 3월 이른바 ‘타다금지법’(여객자동차법 개정안) 국회 통과 직후 서비스를 접었다. 국내 1위 택시 호출 플랫폼 카카오모빌리티도 ‘콜 차단하기’ 등으로 당국의 수사를 받는 탓에 제한된 서비스만 하는 상황이다.
기세등등했던 택시업계가 모빌리티 플랫폼에 손을 내민 건 크게 2가지 이유에서다. 우선 미국과 중국이 글로벌 자율주행 시장에서 주도권을 강화하면서 한국 시장도 외국 기업에 내줄 수 있다는 위기감이 확산했다. 현재 구글 웨이모는 미국 6개 도시에서 로보택시 서비스를 운영 중이며, 올해 영국 런던과 일본 도쿄 등으로 진출한다. 중국 바이두도 미 차량 공유 업체 ‘리프트’와 협력해 올해 독일과 영국 등에서 로보택시 서비스를 시작한다.
하지만 한국에선 무인 자율주행 레벨4 실증 허가를 받은 기업은 스타트업 라이드플럭스 한 곳 뿐이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해 7월 기준 자율주행차 누적 실증거리는 미국 웨이모가 1억 6000만㎞, 중국 바이두는 1억㎞다. 한국은 관련 기업 전체를 합해도 1300만㎞ 가량이다. 해외 기술 기업들이 국내에 진출하면 택시업계도 더이상 버티기 힘들다는 위기감이 이번 협업을 끌어냈다는 분석이다. 박복규 택시연합회 회장은 “자율주행은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라며 “국내 체계와 시스템을 무시하고 외국계 기업의 기술을 맹목적으로 추종해서는 어려움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갈수록 심각해지는 택시 기사 구인난도 원인이다. 법인택시 가동률은 서울의 경우 2019년 50.4%에서 2024년 34.1%로 떨어진 뒤 30%대에 머물고 있다. 10대 중 7대 택시가 놀고 있는 상황에서 면허를 놀리느니 차고지·정비 시설을 자율주행 상용화에 활용하는 게 낫다는 판단이 깔린 것으로 풀이된다. 자율주행 업계 한 관계자는 “미국 웨이모나 중국 바이두가 한국에 들어오면 한국 택시 업계와 기업이 직격탄을 맞는다는 사실을 양측이 명확하게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택시 면허를 활용해 자율주행 택시를 운영한다는 방안에 회의적인 시각도 있다. 한 국내 모빌리티 업계 관계자는 “택시 면허로 자율주행 택시를 운영하면 비용이 많이 들어 현실성이 떨어진다”며 “자율주행으로 렌터카·대리운전 시장도 업권을 침해받는 상황인데, 택시만 재산권을 보장해주는 것도 논리에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