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들르는 일용품 가게 이 여사님이 며칠 후 일을 그만둔다며 종이 봉지에 담긴 군밤을 건넸다. 고향 집 뒷산에서 딴 밤이라고 했다. 좌우 엄지로 껍질을 벌렸다. 따뜻함이 배어 있는 진노랑 밤알은 향도 맛도 일품이었다.
이 여사가 일을 마치던 날 커피 한잔을 대접했다. 그녀는 오른손으로 잔 손잡이를 쥐고, 왼손으로는 잔 바닥을 감싼 채 할아버지로부터 들은 고향 공주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밤 유명한 공주, 참나무도 많아
땔감 풍부해 도자기·철 생산 발달
철은 인류의 정신문화 싹트게 해
“어릴 적 뒷산에서 주어온 밤을 보신 할아버지는 흐뭇한 표정으로 동네 역사를 들려주셨어요. 1905년생 할아버지는 호박단추가 달린 연한 옥색 한복에 털신을 신고 마루에 걸터앉으셨지요. 오래된 은비녀를 꼽은 할머니는 빛 바랜 회색 한복에 낡은 ‘세타’를 입고 계셨고요. 초등학교 5학년생인 저는 두 분 사이에 앉았어요. 할아버지가 말씀하시는 동안 할머니는 저에게 아껴둔 오색 무지개 색 사탕 두어 개를 쥐여 주셨지요.”
이 여사의 할아버지 이야기는 고려 시대로 올라갔다. 유치원에서 일한 적 있다는 그녀의 스토리텔링은 먼 과거를 현재로 불러왔다.
“공주 일대는 참나무가 많습니다. 그곳 참나무는 장작과 숯이 되어 대장간이나 가마에서 썼답니다. 힘든 일을 마친 대장장이나 도공은 삭신이 쑤시면 지네를 잡아 쇠무릎이라는 약초와 함께 달여먹고 몸을 일으켰지요. 오죽했으면 옛날 동네 이름이 ‘학도 울면서 날아가는 마을’이라는 뜻의 ‘명학소(鳴鶴所)’가 되었을까요. 그들의 고달픈 삶은 ‘망이 망소이의 난’으로 이어지기도 했지만 조선에 들어와서도 나아지지 않았답니다. 임진란 때는 도공들이 일본으로 끌려가기도 했지요. 그중에는 일본 도자기의 시조로 불리는 이삼평이라는 분도 있었답니다.”
이 여사의 이야기를 듣고 세월에 씻겨간 그들의 자취를 찾아 공주 일대를 돌아보았다. 참나무 가지 사이로 ‘쐐’ 한 골바람이 스칠 때 문득 한 분이 떠올랐다. 철(鐵)의 문명사적 궤적을 추적한 권오준 박사였다. 공주에 왔다고 하자 그는 “옛날에는 그곳이 첨단산업단지였으니 잘 보고, 듣고, 묻고 와!”라고 했다.
며칠 후 권 박사는 그곳이 왜 첨단산업단지였는지 설명해주었다. “도자기와 철은 공통점이 있어요. 열처리를 거쳐야 나오는 제품들이지. 먼저 도자기는 도기와 자기로 나뉘는데 장독 같은 도기는 섭씨 1000도 정도, 겉이 매끈한 자기는 약 1300도에서 만들어지지요. 당시 자기 만드는 열처리 기술을 가진 나라는 중국과 조선 정도였어요. 열처리는 비장의 기술이었거든. 중세 유럽에서는 사신을 보낼 때 도자기를 선물했어요. 은연중 자국의 열처리 기술을 상대국에 과시하기 위해서였겠지.” 권 박사로부터 나무와 도자기, 철로 이어지는 기술의 역사를 들으며 철이 인류에게 기여한 것 중 한 가지만 꼽는다면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의 대답은 뜻밖이었다. “철은 인류에게 철학을 선물했지.” 의아한 표정을 짓자 그는 자세한 설명을 마다치 않았다. “인류가 소를 가축으로 삼은 것은 기원전 8000년이지만 기원전 1000년에 이르러서야 소에게 철 보습을 갖춘 쟁기를 끌게 했어요. 그때부터 농업생산량이 비약적으로 늘었지요. 배고픔을 면하게 된 인류는 학습과 토론을 할 여유가 생기지요. 그 결과 기원전 5세기부터 석가모니·공자·소크라테스·예수가 나오지요. 철학자 칼 야스퍼스는 그 시대를 인류 정신문화의 전환기를 의미하는 ‘축(軸)의 시대’라고 했어요.”
권 박사의 담론을 들은 후 “올해가 말띠인데 말과 연결된 철 이야기도 있을까요?”라고 묻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 “소가 철 보습을 이용한 우경(牛耕)으로 인류의 정착을 도왔다면, 말은 등자(鐙子)라는 철제기구를 통해 영토 확장에 기여했지요. 등자는 말을 탈 때 발을 걸치는 발걸이인데 등자에 발을 고정시킨 기사(騎士)는 말 위에서 몸을 돌려 뒤에서 오는 적도 공격할 수 있었어요.”
권 박사의 철과 인류 문명사에 대한 설명은 ‘전체를 하나로 꿰다’는 공자의 말 ‘일이관지(一以貫之)’를 연상시켰다. 요즘 철강업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한다. 모든 어려움을 돌파하는 하나의 방책이 있을지 모른다.